주간동아 1076

2017.02.22

국제

21세기 ‘차르’ 푸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무한질주…내년 대선도 떼놓은 당상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2-17 16: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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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실시될 대통령선거(대선)에 출마하면 당선할 수 있을까. 다소 성급하기는 하지만,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 대부분은 푸틴 대통령이 승리할 것이 분명하다고 내다본다. 그 이유는 푸틴 대통령에게 맞설 수 있는 정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유일한 정적이라는 얘기를 들어온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1)가 2월 8일 재판에서 횡령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내년 대선 출마가 어렵게 됐다. 러시아 중부 키로프 시 레닌스키 법원은 나발니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나발니가 2009년 키로프 주정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주정부 산하 산림 채벌 및 목재 가공 기업인 키로프레스 소유의 목재 1만㎥, 시가 1600만 루블(당시 약 5억6000만 원)어치를 빼돌려 유용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러시아 선거법에 따르면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반푸틴 저항 운동의 상징적 인물, 나발니

    나발니에 대한 재판은 일종의 ‘정치적 징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의 유명 인터넷 블로거인 나발니는 2011년부터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야권시위를 이끌며 반(反)푸틴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특히 나발니는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을 ‘사기꾼과 도둑들의 당’이라고 부르며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 등 거대 국영기업과 정치권의 부패 커넥션을 블로그에 실명으로 올려 비판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27%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일약 야권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크렘린궁은 그를 최우선 경계 대상으로 삼고 옥죄기 시작했다.

    러시아 연방 검찰은 나발니가 키로프레스의 무보수 고문으로 활동할 때 거래를 중개하는 과정에서 일부 대금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며 그를 구속했다. 이후 레닌스키 법원은 1심 판결에서 나발니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당시 판사의 판결문이 검사의 공소장과 조사 하나도 다르지 않아 정치 재판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2심 법원인 키로프 주법원은 항소심에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나발니는 재판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가입한 유럽인권재판소에 항소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나발니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나발니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러시아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이 사건을 처음 재판이 이뤄진 레닌스키 법원에서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나발니는 지루한 법정 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나발니는 “파기환송심은 2013년 1심 판결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라면서 “유죄 판결을 인정할 수 없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나발니는 또 내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발니가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발니에 대한 재판은 ‘제2의 호도르콥스키 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때 러시아 최고 석유재벌이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하다 2003년 체포돼 사기와 탈세 및 횡령 혐의로 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옛소련 시절 공산당 지도부는 정치적 반대자나 반체제 인사를 형사범죄자란 오명을 뒤집어씌워 처벌했는데, 푸틴 대통령도 지금까지 이런 수법을 사용해왔다.

    나발니의 신세는 그나마 암살된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보다 낫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란 얘기를 들었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주장해온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다리 위에서 차량에 타고 있던 괴한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넴초프를 살해한 남부 캅카스 지역 출신인 아주르 다다예프 등 5명을 체포해 기소했지만 범행을 기획하고 지시한 배후 인물로 지목된 체첸공화국 내무군 소속 장교인 루슬란 무후디노프를 아직까지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유족은 이들의 범행 동기 등이 불명확한 데다 진짜 배후세력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넴초프 피격 사건은 2003년 4월 자유러시아당 공동당수였던 세르게이 유셴코프 피격 사건과 비슷하다. 당시 유셴코프 당수는 모스크바의 자택 인근 도로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는 하원인 두마의 보안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었으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이자 러시아 최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의 비리를 조사하고자 구성된 이른바 ‘코발레프 위원회’의 부의장이었다. 유셴코프의 사망으로 코발레프 위원회는 해산됐고, FSB에 대한 조사는 종결됐다. KGB 요원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FSB 국장을 지냈다. 푸틴 대통령이 지금까지 집권하는 동안 이처럼 암살되거나 독극물 중독으로 숨진 정치인, 언론인, 인권운동가는 수십 명에 달한다. 이들의 정확한 피살 동기가 밝혀진 적은 없다.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정적인 인민자유당 미하일 카시야노프 당수는 지난해 4월 개인비서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나탈리야 펠레바인과 성관계를 갖는 동영상이 방송을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돼 사실상 정치적으로 매장됐다. 카시야노프 당수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총리를 맡았지만 당시 최대 석유기업이던 유코스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탄압을 비판했다 괘씸죄로 해임된 후 야당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FSB에 무소불위 권한 부여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임기 4년의 대통령직을 연임하고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에 따라 총리로 물러났다 2012년 헌법 개정으로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푸틴 대통령이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특히 그는 강력한 통치를 위해 FSB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다. FSB 국장은 장관급이자 현역 육군대장 신분이며, 자체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고, 법적으로 다른 기관의 감독을 받지 않는다. FSB는 또 범죄를 저지를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영장 없이 무조건 소환해 조사할 권한도 있다. FSB는 이런 특권을 이용해 푸틴 대통령의 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거나 탄압해왔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세력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의회도 통합러시아당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지난해 9월 하원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은 전체 450개 의석 가운데 개헌선을 훨씬 뛰어넘는 343석을 차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자신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권력 실세를 단계적으로 물갈이해왔다. 이에 따라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 등 크렘린궁을 비롯해 주요 부서를 장악해온 푸틴의 KGB와 FSB 시절 동료 및 측근 인사가 대거 물러났다. 푸틴 대통령은 그 대신 충성심을 보여온 신진인사들을 기용해 새로운 친위세력을 구축하는 등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사라진 ‘차르(황제)’가 100년이 지나 푸틴이란 이름으로 재림(再臨)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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