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17) 쑹슈옌(宋秀岩)

전국 유일 홍일점 省長 ‘질주하는 여걸’

탁월한 업무능력 올해 칭하이 성장에 올라 … 제2의 중국 철녀 행보에 주목

전국 유일 홍일점 省長 ‘질주하는 여걸’

전국 유일 홍일점 省長 ‘질주하는 여걸’
쑹슈옌(宋秀岩·53·사진) 칭하이(靑海)성 성장은 올해 초 선출된 중국의 지방 지도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전국 62명의 당서기와 성장 가운데 홍일점으로 1983년부터 7년간 장쑤(江蘇)성 성장을 지낸 구슈롄(顧秀蓮·72)에 이어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후 두 번째 여성 성장이다.

물론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성 단위 주석자리엔 충칭(重慶)시의 싱위안민(邢元敏·60), 산시(山西)성의 진인후안(金銀煥·56), 장쑤(江蘇)성의 장롄전(張連珍), 푸젠(福建)성의 량치핑(梁綺萍·61), 후베이(湖北)성의 쑹위잉(宋育英·60) 등 5명의 여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여성 안배 차원인 데다 실질적 권력을 가진 성장과 정치자문기구인 정협은 천양지차다.

쑹 성장의 지도자적 자질은 어릴 적부터 나타났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철로국 랴오양(遼陽) 분국의 조리 역장을 하던 부친이 칭하이성의 란저우(蘭州) 철로국 시닝(西寧) 분국에 소속된 한 역의 역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시닝 철로1중으로 학교를 옮긴 그는 6개 반 반장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문화대혁명 시절이던 1971년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닝철로분국 신호통신구 업무보고원으로 배치됐다. 여섯 명의 보고원 중 업무성적이 가장 뛰어났던 그는 곧바로 영도반에 진입한 뒤 얼마 안 돼 신호통신구 지부 서기가 됐다. 1976년 6월 시닝철로분국의 선전부 간사로 임명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저 어린 여성동지 소속이 어디야?” 어느 날 그의 조리 있고 당찬 발언을 듣고 감동받은 마완리(馬万里) 칭하이성 상무부서기는 1983년 1월 28세의 젊은 그를 칭하이성의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부서기로 승진시켰다. 부(副)과장급에서 부(副)청장급으로 수직상승한 것. 게다가 당시 서기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는 성의 공청단 부서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서기 자리에 올랐다.

성 공청단 서기였지만 쑹은 중학교 졸업장밖에 없었다. 1985년 9월 그는 30세의 나이로 뒤늦게 중국청년정치학원(현 공청단 중앙단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았다. 이때의 2년간 교육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그에게 이론적 분석능력까지 길러줬다.



하지만 그의 관직길은 되레 파란을 겪게 된다. 1989년 초 공청단 서기였던 그는 공청단 칭하이성 제8차 대회에서 서기 후보로 나갔다가 낙선했다. 보기 드문 현직 서기의 낙방이었다. 그에게는 이때가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어린 나이에 너무 잘나간 게 화근이었다. 그는 하이둥(海東) 지(地·중국 행정단위로 시(市) 중의 하나) 공청단 부서기로 배치됐다. 직급도 정(正)청장급에서 부(副)청장급으로 강등됐다. 과장급에서 청장급으로의 수직상승도, 청장급에서 부청장급으로의 강등도 칭하이성에서는 그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도자적 자질 발휘

그런 쑹슈옌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해 하이둥 관할의 화룽(化隆)현 즈자(支)향에 우박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2000무(畝·1무는 약 1마지기)의 농작물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는 곧장 현지로 달려가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울부짖는 농민들에게 호주머니 돈까지 털어 나눠줬다. 그리고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어 30만 위안(약 4073만원)의 구조자금을 조달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민심을 얻는 데도 성공했다. 쑹은 곧바로 상무부서기로 승진했다. 1992년 4월 그가 시닝의 노동인사청 부청장으로 돌아올 때 직원들은 울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뒤늦게 다시 청장급으로 올라왔지만 그는 청장급 중에서 여전히 어린 편이었다. 노동인사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손대지 못하던 노동청의 대대적인 인사개혁에 착수했다. “더 이상 소개 봉투를 들고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전국 유일 홍일점 省長 ‘질주하는 여걸’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의 건설 현장. 쑹슈옌이 성장으로 취임한 이후 칭하이성의 지역 총생산은 2년 연속 고속 성장을 기록했다.

후진타오 주석도 각별한 관심과 배려

계획경제 시대 인사 배치는 가장 큰 권력이었다.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인사부의 지령 하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비를 위해 소개 봉투를 들고 오는 것도 근절했다.

그러자 위아래로부터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에서 계획경제 시대의 ‘철밥통’을 깨버린 것은 곧바로 여러 효과를 나타냈다. 또 중앙정부 역시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노동인사 방식을 시장경제에 맞게 고쳤다. 지런펑(紀仁鳳) 노동·사회보장부 청장은 “쑹 성장의 인사개혁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칭하이성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인사개혁 후 그는 칭하이성 통계국을 거쳐 성위의 통전부(통일전선공작부)와 조직부로 옮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인사와 조직, 선전과 통일전선 부문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것이다.

이처럼 그가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경력을 쌓게 된 데는 공청단에서 알게 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쑹 성장이 공청단 칭하이성 부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후 주석은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다. 후 주석이 부장급(장관급)인 공청단 제1서기로 있을 때 그는 공청단 산하 간부학교인 청년정치학원에서 전문대 과정을 이수했다. 후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당교 교장을 할 때 그는 중앙당교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쑹 성장은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과 리위안차오(李源潮), 류옌둥(劉延東), 왕양(汪洋)과 함께 후 주석을 필두로 하는 ‘퇀파이(團派·공청단파)’의 핵심 멤버다.

1998년 4월 그는 칭하이성의 부서기에 당선됐다. 2004년 12월엔 칭하이성 대리성장에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1월 칭하이성 성장으로 정식 선출됐다. 2005, 2006년 칭하이의 지역총생산(GRDP)은 각각 5억4332만 위안, 6억4158만 위안으로 매년 16.6%, 18.1%씩 고속 성장했다. 후 주석의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쑹의 남편 리징롄(李景連)은 당초 신호통신구에서 일하는 신호공이었다. 2005년 현재 남편은 시닝 철로운전기사 학교의 당위 서기다. 쑹은 성장이 됐지만 보모를 두지 않고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식구들의 식사를 챙긴다.

지방 지도자 가운에 유일한 홍일점인 그가 ‘중국의 철녀(鐵女)’ 우이(吳儀)와 같은 중앙 영도자 반열에 오를지 주목된다.

쑹슈옌 프로필



·한족(漢族·여)

·1955년 10월생

·조적(祖籍) 톈진(天津), 출생지는 랴오닝(遼寧)성 랴오양(遼陽)

1978년 11월 공산당 입당

1971.10~1976. 6 란저우(蘭州)철로국 시닝(西寧)철로분국 신호통신구

업무보고원 및 업무보고 영도반 근무, 공청단 지부 서기

1976. 6~1981. 8 란저우철로국 시닝철로분국 선전부 간사

1981. 8~1983. 1 란저우철로국 시닝철로분국 선전부 부부장

1983. 1~1983. 12 공청단 칭하이(靑海) 성위 부서기, 공청단 제11기 중앙위원

1983. 12~1989. 2 공청단 칭하이 성위 서기

1985. 9~1987. 7 중국청년정치학원(현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단교)

전문대 과정 졸업

1987. 11 공청단 제12기 중앙위원

1989. 2~1992. 4 칭하이성 하이둥(海東) 지(地)위 부서기

1992. 4~1993. 11 칭하이성 노동인사청 부청장, 당조(黨組)성원

1993. 11~1995. 6 칭하이성 통계국 국장, 당조(黨組)서기

1993. 8~1995. 12 중앙당교 통신대학 영도간부반 경제관리과 졸업

1995. 6~1995. 11 칭하이 성위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1995. 11~1998. 4 칭하이 성위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성위 조직부 부장

1998. 4~2002. 5 칭하이성 제9기 성위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부서기

2002. 5~2004. 12 칭하이성 제10기 성위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부서기

2004. 12~2005. 1 칭하이성 부성장, 대리성장

2005. 1~2007. 5 칭하이성 성장

2007. 5~2008. 1 칭하이성 성장 겸 성위 부서기

2008. 1~현재 칭하이성 성장

제11, 12기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

제15, 16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7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제10기 전국인민대표




주간동아 2008.03.25 628호 (p58~60)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3

제 1213호

2019.11.08

매장 차별화와 플랫폼 서비스로 ‘한국의 아마존’을 시험하는 편의점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