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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②|昌의 대권 삼수

이회창 대군단 갖고도 2전2패 단기필마로 첫 승 가능할까

‘대쪽’ 이미지 꺾어가며 출사표 … MB 꺾을 ‘한 방 說’ 실체 있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회창 대군단 갖고도 2전2패 단기필마로 첫 승 가능할까

이회창 대군단 갖고도 2전2패 단기필마로 첫 승 가능할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04년 10월8일 단암빌딩(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2105호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돕던 이종구 전 특보가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 위치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은 이 전 특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원래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 원칙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거듭 말하건대, 정치 재개 운운하는 건 쓸데없는 오해와 추측이다. 패러다임이 변했으며 주변 환경도 바뀌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계를 떠난 분이다.”

단암빌딩의 이 전 총재 사무실은 20평 남짓. 이삿짐회사 창고에 보관해뒀던 부국팀(2002년 대선 때 이 전 총재의 외곽캠프) 집기로 사무실을 꾸렸는데, ‘GDK186N’(내선전화를 연결하는 장치로 기업에서 직원들의 전화를 연결하는 데 사용된다)이라는 전화교환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뭐 이런 것까지 취재하려고 해. 부국팀에서 쓰던 건데 버리기 아까워서….”

3년 전부터 기회 노리고 지난해 말부터 본격 행보



이 전 특보는 GDK186N을 손으로 가리며 말끝을 흐렸다. 단암빌딩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 사무실은 21층이지만 측근들은 단암빌딩의 다른 층에서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가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기 시작한 때는 2004년 10월 단암빌딩으로 출근하면서부터다. 정중동(靜中動). 단암팀은 물밑에서 기회를 노렸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눈물을 훔치면서 “정치계를 떠나고자 하며,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원칙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아름다운 원칙’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그런 그가 약속과 원칙을 깨고 우회로를 통해 대선에 출마한 것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대쪽’이 아니라 ‘갈대쪽’이라며 그를 깎아내렸다.

‘전 총재’를 버리고 ‘후보’를 선택한 그는 ‘처절함’ ‘비장’ ‘두려움’ ‘번민’ ‘고통’이라는 단어로 그간의 고심을 내비친다. 한나라당은 ‘민주주의 파괴자’ ‘대통령병 환자’라며 그를 공격한다. 이명박(MB) 후보 캠프의 한 인사는 “이 전 총재의 오비추어리(부고기사)에 오점이 남게 됐다”고 비꼬았다. 그렇다면 이 전 총재는 왜 “생애를 걸고”(이흥주 특보) 출마를 결심했을까?

‘이 후보’는 최근 이름난 보수 논객인 언론인 K씨를 만났다. K씨가 이 전 총재에게 ‘명분’을 물었지만, 그는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K씨가 이 후보를 ‘만난 뒤’ 쓴 칼럼에서 이 후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회창 씨가 세론(世論)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의 출마는 상식이 아닌 다른 초(超)상식의 잣대로 가늠해볼 수밖에 없다. 이씨는 근자에 몇 지인(知人)에게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정권교체의 질(質)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은 이명박 후보의 정권교체자로서의 자질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범여권은 이명박 씨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선거판에 흔히 나도는 유언비어성, 모략성 제스처라고 믿는다. 과연 ‘한 방’이 있기는 있는 것이며, 있다면 그 실체는 무엇인지 알려진 바 없다. 그런데 어쩌면 이회창 씨는 그 ‘한 방’의 실체를 알고서 저러는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다. 문제는 범여권의 ‘한 방’과 이명박 씨의 ‘문제’로 인해 표가 구원투수격인 자신에게 모아지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 있다.”

이회창 대군단 갖고도 2전2패 단기필마로 첫 승 가능할까
요컨대 ‘이명박 후보의 낙마 가능성’과 ‘정권교체의 질’이 그의 출마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다. 지금은 그 명분이 옹색해서인지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그의 진영에선 “야당 후보가 약점이 많아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정권교체의 질’은 이회창 후보의 소신인 듯하다. 그는 11월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정말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지도자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신과 용기만 있다면 국민은 신뢰를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이 점에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정권교체 자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교체만 되면 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는 저절로 바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환상이고 또 위태로운 생각입니다. 정권은 반드시 교체돼야 합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훼손됐던 나라의 근간과 기초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정권교체가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회창 후보 측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12월. 한 대학 특강에서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라는 말을 꺼냈다가 새까만 후배에게서 “원균보다도 못하다”(최구식 한나라당 의원)는 말을 들었다. 이 후보 측은 올 1월 UCC(손수제작물) 업체인 판도라TV에 대선용 홈페이지 제작을 타진하는 등 실무 준비에 나섰다.

정치권에선 올 초부터 그의 출마 가능성에 적지 않은 무게가 실렸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의 각종 동정, 박근혜 전 대표의 근황 등과 관련한 첩보와 정보가 단암빌딩으로 전달됐다는 것.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Y씨의 말이다.

“지난 대선 때 이 전 총재 진영에서 일하던 의원 가운데 현재 우리 캠프의 일을 봐주는 의원들이 많다. 그중 몇몇 의원이 단암빌딩의 움직임을 직·간접적으로 우리 캠프에 전달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를 모셨던 한 의원에게 이 전 총재 측이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더라. 신호를 받은 인사가 우리 캠프에 귀띔해줬다.”

박근혜 전 대표 지원 땐 천군만마 얻는 격

그러나 이회창 후보가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2004년 총선 때 이 후보의 원내 기반이 공천 배제를 통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특보를 지냈거나 측근으로 분류되던 김정훈 최경환 서상기 이혜훈 박진 유승민 나경원 김무성 공성진 서상기 의원 등은 단암빌딩을 찾곤 했지만 결국 이명박, 박근혜 캠프 등으로 흩어졌다.

2002년 대선 때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이종구 전 특보를 비롯해 이재오 홍준표 권철현 정형근 의원은 현재 이명박 캠프에 핵심 인사로 터를 잡았고, 김무성 유승민 의원은 박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 중이다. 2002년 대선 때 이 후보와 가까웠던 한 의원은 출마 선언 직후 “이 전 총재를 도울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는 ‘출마의 변’을 밝히면서 “나는 한나라당 안에서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당의 화합을 깨서는 안 될 입장에 서 있는 그분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방향과 신념에서 나는 박 전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서로 뜻이 통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라며 박 전 대표에게 구애의 뜻을 전했다.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 진영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틈을 비집고 들어선 그에게 박 전 대표의 지원은 가장 큰 우군이다. 출마 선언 뒤 그를 돕겠다고 나선 인사들은 2002년 대선 때 각 시·도당 위원장들의 모임인 ‘함덕회’ 소속 옛 정치인, 세풍의 주역인 서상목 전 의원, 2002년 불법대선자금에 연루돼 실형을 산 최돈웅 전 의원, 강삼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그때 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겉으로 드러난 단암빌딩의 가신그룹도 단출하다. 캠프의 좌장격인 이흥주 특보와 미디어 쪽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지상욱 박사(영화배우 심은하 씨의 남편), 최형철 호원대 교수, 2002년 대선 때 각각 수행부장과 언론특보를 지낸 이채관 보좌관과 구범회 씨 등이다. 이회창 후보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혈혈단신’이라는 표현을 되풀이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덕분에 ‘넉넉하게’ 대선을 치를 수 있었다. 그의 후원회격이던 부국팀은 회장과 부회장 외에도 운영위원만 1000명 가까웠고, 700명 이상의 자문교수 그룹과 예비역 장성 그리고 문화 예술 체육 언론 교육 의료계 등 직능분야별 그룹들이 물밑에서 그를 도왔다.

그러나 지금 이회창 후보의 처지는 180도 달라졌다. 그는 “나에게는 정당 같은 조직 울타리가 없다. 평생을 지켜왔던 개인적 명예와 자존심마저 버렸다.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선거 전에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선거법에 따라 후원금 모금도 불가능하다. 후보의 친족 8촌, 인척 4촌은 선거비용을 댈 수 있다.

‘실탄’이 부족한 만큼 이회창 후보는 선거 캠프도 여의도가 아닌 단암빌딩(이 후보 장남 정연 씨의 장인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 소유) 2층에 꾸렸다. 이 후보의 승용차는 15만km를 탄 2001년식 ‘에쿠스’인데, 올 여름 수리비만 100만원 넘게 들었을 만큼 고장이 잦다고 한다. 할부로 구입한 ‘그랜드카니발’ 승합차와 ‘버스’로 선거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실탄·인력 부족 … “살신성인 결단” 사퇴 가능성 열어놔

검찰이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 김경준 씨 관련 사건을 대선후보 선거 등록일(11월25~26일) 이전에 결론짓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까지 마무리되지 못하면 대선 이후로 수사를 미룰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후보의 연루 사실을 검찰이 확인한다면 대선판은 또 한 번 요동치게 된다. 그러나 그때도 대안의 ‘명분’만큼은 박 전 대표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수사가 마무리되지 못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에 따라 대선판이 짜이게 된다. 이번 대선부터는 선거 일주일 전까지 여론조사를 공표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 등록일 이후 이회창 후보가 중도 사퇴할 수도 있다. 이 후보도 “내가 선택한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국민적 판단이 분명해진다면 언제라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내분이 극으로 치닫고 보수 진영이 핵분열 될 경우 그 틈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선대위의 최시중 고문은 “BBK와 관련해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나오거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우리를 위협하는 일 등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창(昌)’이 마침내 창(窓)을 열고 창(槍)을 곧추세웠다. 생애를 걸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가시밭길에 들어선 그에게 과연 ‘한 방’이 터질 것인가.



주간동아 611호 (p42~4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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