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2

2017.01.18

경제

금융계 노리는 정·관피아

親정권 ‘박피아’ 인사 대거 포진, 금융 전문성은 제로… ‘공운법’ 강화해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1-13 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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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금융업계 인사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임원이 상당하지만,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인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업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금융계에는 관료 및 정치권 인사들이 임원 자리에 노골적으로 낙하산을 펴고 내려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금융권 낙하산 인사는 20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어느 정부에서든 금융권 낙하산 인사 논란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심했다는 게 금융노조의 판단이다. 정피아(정치인+마피아), 관피아(관료+마피아)에게 주인 없는 은행은 공공기관만큼이나 좋은 착륙지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밝힌 내용을 보더라도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도를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금융공공기관 및 공공기관 지분보유 금융회사 26곳의 전체 임원을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임원 255명 가운데 97명이 정·관피아다. 전체 임원의 약 40%가 낙하산 인사임을 뜻한다. 이는 2016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임기가 만료된 임원까지 포함한 수치다(표 참조).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공공기관의 정피아 등용이 과거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그 와중에도 소리 없이 금융계에 안착한 낙하산 인사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21일 IBK저축은행은 임시주총을 열어 사외이사 4명을 선임했는데, 신규 선임된 강일원 이사를 포함해 연임한 송석구, 임효성 등 3명 모두 ‘친박 낙하산’으로 불린다. 강 이사는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송 이사는 박근혜 대통령 경선후보 조직특보와 새누리당 중앙당 부대변인 출신이다. 임 이사는 2014년 새누리당 충북도당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하산 인사’의 온상, 금융공기업

    우리은행 자회사인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11월 24일 최광해 전 기획재정부(기재부) 국장을 부소장으로 선임했다. 금융계에선 올 초 소장으로 취임한 김주현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최 부소장을 영입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김 소장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중앙고 동기다.

    지난 연말 수장 교체와 관련해 초미의 관심사였던 금융기관은 단연 IBK기업은행(기업은행)이다. 권선주 행장의 임기가 2016년 12월 27일 만료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차기 행정 인사에 난항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기재부가 지분 51.8%를 보유한 국책은행으로,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은행장을 임명한다. 기업은행은 1961년 설립된 이후 2000년대까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관료 출신이 은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조준희, 권선주 전 행장에 이어 이번에도 내부인사 승진을 기대하는 이가 많았다. 2대째 내부인사 승진으로 은행 실적이 대폭 개선됐고, 낙하산 인사에 강력투쟁을 예고한 노조의 반발도 예상되던 터다. 결국 김도진 기업은행 경영전략그룹 부행장이 내부 승진을 거쳐 12월 28일 행장으로 선임됐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조 전 행장 선임 이후 내부 임원들이 일궈낸 경영 성과가 행장 인선 시 평가항목에 포함돼 현 임원들의 내부 승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금융기관 가운데 임원의 낙하산 인사 비중이 가장 큰 곳으로 알려졌다. 채이배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27개 금융기관 가운데 임원 대비 낙하산 인사 비중이 50% 이상인 기관은 9곳인데, 그중 5곳이 모두 기업은행 및 기업은행 계열 금융기관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기업은행에는 조용, 성효용, 이용근, 이종구 등 총 4명의 사외이사가 있다. 이들은 대체로 ‘친정권’ 인사로 평가된다. 조 사외이사는 2009년 강원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뒤 2011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특보로 활약한 인물이다. 성 사외이사는 뉴라이트를 주창하는 대학교수들이 모인 뉴라이트 싱크넷의 발기인 가운데 한 명으로, 2013년 금융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성신여대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이용근 사외이사는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했고, 같은 해 노사정위원회 위원도 맡은 바 있다. 이종구 사외이사는 2008년 금융위원회 (금융위) 상임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 소속으로 법조계 출신이다. 이수룡 감사 역시 새누리당 대선캠프 출신이다.

    정관계 출신 인사는 기업은행을 넘어 계열사까지 포진해 있다. IBK캐피탈 부사장과 상근감사위원·사외이사 4명, IBK투자증권 사외이사 3명, IBK연금보험 부사장과 사외이사 3명, IBK자산운용 사회이사 3명, IBK신용정보 대표이사와 부사장 2명이 정·관피아로 조사됐다. 이들은 주로 기재부, 여성가족부,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자치부 등 공직자 출신이고 새누리당이나 대선캠프 외 금융감독원과 금융연구원 등 금융권 출신도 포함돼 있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임원 14명 가운데 9명이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난해 4월 선임된 김기석 감사는 17대 국회의원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 상임고문으로 있다 박근혜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신용보증기금 감사는 기재부의 선임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는 자리다.



    기재부·대선캠프 출신 대거 입성

    예금보험공사는 곽범국 사장을 포함해 총 8명의 임원이 기재부 출신이다. 김영백 비상임이사는 국민통합21, 부산사하갑지구당 위원장 출신이며, 이명선 비상임이사는 대통령경호실 부이사관으로 재직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기술보증기금의 최성수 감사는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 후원회 회계책임자 출신이며, 양희관 사외이사는 한나라당 부산시 의원 출신, 권영상 한국거래소 상임감사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선거 경남선대본부장 출신, 조인근 한국증권금융 감사는 여의도연구소 선임연구원 및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출신으로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들이다.

    문제는 사외이사나 감사 등 낙하산 인사 대부분이 금융 관련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회계장부도 볼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금융사 모니터링 기능은 접어둔 채 외부 민원 창구로 변질되고 있는 것. 한 금융업 종사자는 “새로 온 감사는 법인카드를 들고 날마다 여의도로 향한다. 30년 넘게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이 금융 업무를 새로 배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올해에도 금융권 인사 태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공공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CEO) 인선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속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융위가 김도진 기업은행장을 임명 제청한 것으로 봐서 정부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예정된 인사를 강행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황 권한대행은 ‘임기 3년의 핵심 공공기관장을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야당의 반발에 “기관장 임기 공백이 우려되는 경우 인사를 단행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먼저 1월 김한철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기술보증기금은 지난해 12월 임원추천위원회가 이사장 공모를 받아 8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서류심사를 진행한 데 이어, 최근 3명의 후보를 추려 금융위에 공식 추천했다. 금융위가 이 중 한 명을 선정하고 황 권한대행이 제청하면 최종 임명 절차를 밟게 된다. 현재 김규옥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3월 말 이덕훈 행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수출입은행은 이사회 추천 없이 기재부 장관의 제청만 있으면 바로 임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차기 행장에 대한 하마평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조용병 신한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임기가 3월 종료된다. 이 중 함영주, 이광구 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함 행장은 1년 6개월간 재임하면서 실적이 나쁘지 않은 데다 2018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1년 더 자리를 보존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은행도 행장 연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장 인사 칼자루 쥔 황교안 대행

    신한금융은 한동우 지주 회장(3월 24일 임기 종료)과 조용병 신한은행장(3월 31일 임기 종료)이 일주일 차이로 임기가 끝나면서 지주회장과 행장이 동시에 교체되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신한지주 이사회는 1월 4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회장 선출 절차에 들어갔으며, 신한은행장 선임은 한 회장이 주도하는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4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과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11월,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은 12월 임기가 종료된다.

    다수의 금융권 임원직은 선임 절차가 불투명하고, 잘못해도 책임을 추궁할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들에게 더없이 좋은 ‘꿀보직’이다. 하지만 이런 풍토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조직의 도덕성을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더욱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은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김 소장은 “ ‘공운법’상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통제 장치가 강화됐으나 기타 공공기관은 특별한 규정이 없고 개별 회사의 정관에 위임하고 있어 임원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규율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법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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