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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동정민 기자의 정유라 유럽 현지 취재기

“저, 쇼핑은 안 했거든요”

독일·덴마크서 3주간 추적, 쇼핑 루머 부인… 데이비드 윤 등 의혹 제기된 인물들 인터뷰

  • 동정민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저, 쇼핑은 안 했거든요”

“정유라 소재지를 확인했단다.”

지난해 12월 14일 새벽 1시, 프랑스 파리 집에서 잠을 청하려 눕자마자 서울 회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라디오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유라가 있는 곳을 알아냈고 지금 교민들이 그곳을 둘러싸고 있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 반신반의했지만 바로 짐을 꾸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3주간 긴 취재의 시작이었다.

안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두 장이 단서의 전부였다. 한 장은 안 의원이 어떤 남성과 함께 건물 앞에서 정유라 씨의 청문회 출석 요구서를 전달하는 사진이었고, 다른 한 장은 안 의원이 차 안에서 정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진이었다.

독일로 향하면서 프랑크푸르트에 오래 산 교민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안 의원과 함께 사진을 찍은 남성은 쉽게 찾았다. 프랑크푸르트 영사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안 의원이 청문회 출석 요구서를 전달해야 한다며 나오라고 해서 갔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정씨가 있다는 장소는 프랑크푸르트 외곽 통일교 교회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안 의원이 올린 사진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 윤과 인테리어 업자 박모 씨

“저, 쇼핑은 안 했거든요”

데이비드 윤을 인터뷰하는 동정민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오른쪽). [동정민 특파원]

예배당으로 들어가 관련 사실을 묻자 클라우스 두비츠 목사가 사무실에서 안 의원의 명함을 들고 나왔다. 그는 “12월 11일 예배 후 안 의원이 다른 한국인 2명과 함께 와 정씨가 안에 있느냐고 물어 ‘없다’고 하자 돌아갔다”고 했다. 교회는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은 예배당, 2층은 건물 주인, 3층은 변호사 사무실, 4층은 브라질 가족이 살고 있다고 했다. 안 의원을 접촉했지만 그곳에 정씨가 있다는 근거는 추가로 대지 못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니 당장 정씨를 찾을 일이 막막했다. 그래서 그의 도피를 돕는다는 조력자를 먼저 찾기로 했다. 독일어를 못하는 정씨가 독일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데는 분명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교민 조력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상식적인 관측이었다. 수소문한 결과 독일 교민 중 조력자로 유력한 이가 2명으로 좁혀졌다.

데이비드 윤과 인테리어 업자 박모 씨. 이 둘은 모두 정씨가 사라진 비슷한 시점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모습을 감췄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비덱이 샀던 타우누스 호텔 개소식에 참석해 최순실 씨 모녀와 사진을 찍은 이들이다.

데이비드 윤은 1990년대 아버지 윤남수 전 독일한인총연합회장의 소개로 최씨와 친해졌다. 이후 25년 동안 프랑크푸르트 쇼핑센터, 한식당 곳곳에서 최씨를 본 사람들은 그의 곁에 늘 데이비드 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최씨의 집사, 정씨의 도피 조력자로 언론에 매일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박씨는 비덱 등기부등본에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전무로 이름이 올랐고, 타우누스 호텔 매니저로 활동했다는 게 주변 증언이었다. 독일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한 뒤 한국으로 갔다가 2015년 다시 돌아온 그는 타우누스 호텔의 인테리어를 도맡아 했다.

그사이 정씨 소재를 두고 다양한 기사가 쏟아졌다. 정씨의 스위스 망명설까지 나왔다. 한 종합편성채널은 최씨가 10월 말 출국 전날 스위스에서 현금을 대거 찾아 한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구체적인 보도까지 내놨다. 그 식당을 찾아가 물으니 관계자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출국 전전날은 기자들이 수없이 우리 식당에 와 있었을 때인데 최씨가 여기서 밥을 먹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사건이 터진 후로는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치적 탄압을 받지 않은 정씨의 망명 신청을 스위스가 받아줄 리도 만무했다.

그 식당 관계자로부터 최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최씨는 타우누스 호텔이 있는 프랑크푸르트 외곽 슈미텐에서 가장 가까운 한식당인 이곳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방문했다. 한 번 올 때마다 9~10명이 함께했고 최씨 모녀를 제외하고는 젊은 남자들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된장찌개를 좋아했으며 불고기, 해물파전 등을 시켰고 먹다 남은 음식은 싸 가기도 했다. 개를 주려고 한 것 같다는 기억이었다.



20대로 둔갑한 40대 여자 간부?

“저, 쇼핑은 안 했거든요”

정유라가 구금된 덴마크 올보르 구치소(왼쪽). 덴마크 법원에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정유라. [출처 · 길바닥 저널리스트 페이스북 캡처]

최씨 모녀의 태도는 꽤 고압적이었다고 전했다. 최씨는 심기가 틀어지면 “주인 오라고 해”라며 닦달했고, 정씨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모”를 부르며 종업원에게 많은 요구를 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중순 언론이 들이닥치기 전주까지도 매주 이 식당에 왔던 그들. 젊은 남자가 받아간 최씨의 마지막 메뉴는 해물볶음밥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와중에 최씨의 호텔에서 밥을 해주던 가정부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 가정부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잠적해 정씨와 함께 도피하면서 밥을 해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가 12월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최씨가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작은 선물을 사오고, 밥이 맛있다며 100유로씩 팁도 줬다면서 호의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던 9월 중순 무렵 갑자기 비덱 직원들로부터 “잠깐 2주만 휴가를 가라”는 말을 들었고, 며칠 뒤 다시 최씨로부터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증언이었다.

그런 그가 주변에 “정씨는 프랑크푸르트에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수소문 끝에 가정부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 집 앞에서 만나 인터뷰를 간곡히 청했지만 그는 “사람이 의리가 있지. 함께했던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끝내 입을 닫았다.

그사이 정씨가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한 교포신문은 교포 인터뷰를 인용해 정씨가 지난해 11월 29일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사는 학창 시절 친구에게 연락해 일주일간 머물렀고, “당분간 뉴욕에 있는 친척 언니 집에서 지낼 계획”이라며 떠났다고 보도했다. 정씨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아이가 있었으며, 그의 신변을 지키는 여자 보디가드가 항상 따라다녔다고 전했다.

마침 윤남수 씨는 데이비드 윤이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정씨는 데이비드 윤과 미국에 있을까. 그러나 윤씨는 강하게 부인하며 “우리 아들은 다음 주쯤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즈음 매일 슈미텐에 있는 타우누스 호텔로 갔다. 주민들은 가끔 한국인 남자가 찾아와 우편물을 수거해 가고 호텔 내부 상태도 살펴본다고 전했다.

호텔로 날아온 우편물에서 자동차 수리점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근처에 있다면 그곳으로 수리하러 갔을 터. 정씨가 이용하는 차는 두 대였다. 한 대는 폴크스바겐 검은색 밴, 다른 한 대는 BMW 하얀색 5시리즈였다. 자동차 수리점 주인은 “지난해 9월 중순 BMW 차량을 가져와 브레이크 점검을 받은 게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점검차 왔다면 어디 먼 곳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정씨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 보였다. 교민들도 “이렇게 눈에 띄는 프랑크푸르트에 남아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러던 12월 22일 눈에 띄는 기사가 나왔다. 한 일간지는 그 일주일 전인 15일 정씨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데이비드 윤과 함께 나타났다고 1면 톱으로 보도했다. 해당 신문에는 차 뒷자리에 여자 한 명을 가운데 두고 두 남자가 양쪽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실렸다. 한 교민 제보자가 데이비드 윤과 그의 동생, 그리고 정씨를 도와주는 보디가드 2명을 함께 봤다는 것이었다. 정씨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에서 명품 쇼핑까지 했다는 보도였다.

데이비드 윤의 동생은 현재 프랑크푸르트에서 꽤 건실한 중소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 역시 아버지의 소개로 형이 시간이 없을 때 가끔 최씨의 통역을 했다는 증언이 있던 터다. 마침 기사가 보도된 후 사진에 찍힌 차가 데이비드 윤의 동생 차가 맞다는 동생 지인의 증언이 나왔다. 데이비드 윤은 시력이 좋지 않아 운전을 못 하지만 동생은 그 차를 몬다는 것이었다.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보도가 사실로 굳어질 무렵 또 다른 동생 지인으로부터 “그 차에 탄 여자는 정씨가 아니라 데이비드 윤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의 간부”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40대 여자 간부는 “당시 차에 타고 있던 5명은 나를 포함해 직원 3명과 데이비드 윤 형제”라며 “당시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 사진의 제공자는 그 사진 속 여자가 정유라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슨 의도에서인지 제보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나 사진을 언론에 보낸 제보자를 잘 아는 이는 “제보자가 20대인 정씨와 40대를 헷갈렸겠느냐”며 그 여성이 정씨라고 확신했다. 이 역시 더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렵사리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데이비드 윤과 연락이 닿았다. 한 번도 언론에 나타나지 않던 그는 “지금까지 사실이 아닌 보도가 너무 많다”며 인터뷰를 승낙했고 1월 2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2일 새벽 1시, 덴마크 올보르에서 정씨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덴마크 북쪽 올보르로 향했다.

정씨가 머물던 집에는 개와 고양이가 가득했다. 아이와 보모, 한국 마필 관리사    2명 등 5명이 있었고, 수많이 보도됐던 독일 도피 조력자는 없었다.

1월 2일 오후 2시 올보르 법정에서 정씨의 구금에 대한 예비 심리가 있었다. 법원 앞을 서성이자 관리인은 심리를 모두 공개한다며 들어가서 볼 것을 권했다. 2층 법정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앞에 작은 체구의 여성이 파카를 입은 채 앉아 있었다. 정유라였다. 회색 파커에 알록달록한 운동화, 흰색 발목 양말, 검은색 라운드 티와 검정 바지…. 영락없는 20대 초반 대학생 모습이었다.

재판 도중 쉬는 시간, 기자들이 다가가자 정씨는 “인터뷰를 해도 좋다”며 말하기 시작했다. 정씨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습니까.”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정씨는 “9월 28일 올보르에 처음 왔고 2주 전쯤 한 번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갔습니다”라고 답했다. 정씨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쇼핑했다는 기사를 쓴 언론사의 기자가 물었다. “그렇죠? 그때 프랑크푸르트 간 거 맞죠?” 정씨는 “저, 쇼핑은 안 했거든요”라고 답했다.

이틀 뒤 만난 데이비드 윤은 “나는 지난해 6월 이후 정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데이비드 윤은 나랑 연락하기 싫어하는 분”이라고 했다. 이 말도 두 사람이 서로 미리 짠 발언일까.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주간동아 2017.01.18 1072호 (p34~36)

동정민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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