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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파사드 프로젝트

공사 현장에 내걸린 21세기 환상

건축 차단막 기능 넘어 행인들과 소통 … 가상과 현실 모호한 새로운 예술 장르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공사 현장에 내걸린 21세기 환상

공사 현장에 내걸린 21세기 환상

명동성당(위)과 미디어 파사드.

공사 현장을 가리는 차단벽이 많이 다채로워졌다. 얼마 전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보수공사 현장을 가리는 차단막 위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올려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는 바코드 작업으로 유명한 양주혜의 작품이 대형 걸개그림으로 걸려 있다. 과거에는 이른바 ‘환경미화’의 관점에서 마지못해 그려 넣은 어설픈 그림들이 헛웃음을 자아내던 공사 현장이 최근에는 새로운 예술의 현장이 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

사진은 명동성당의 모습이다.(사진 1) 과거에 방진막은 뚜렷한 실용적 목적을 갖고 오로지 ‘사물’의 세계에만 속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어지러운 공사 현장을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가리려고 설치한 물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막 위에 이미지를 올려놓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물질적 속성 위에 의미의 층위가 얹히면, 그것은 이제 시각적 환영을 투사하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파사드는 사물이 아니라 미디어가 되어 거리를 걷는 대중과 소통하려 한다. 대형 출력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 할까?

건축물 자체에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의 기능주의는 옛 건물이 갖고 있던 장식성과 상징성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1960년대 ‘포스트모던’ 건축의 논의와 관련해 건물에 다시 상징성을 되돌려주려는 경향이 생긴다. 여기에 미디어 테크닉이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이른바 ‘미디어 파사드’다. 이때 건축의 벽면은 거대한 캔버스나 스크린 혹은 모니터가 되어, 그저 실용적 기능만 하는 데서 벗어나 거리의 행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사진 2) 어느 경우든 실용적 기능에 의미의 층위가 얹혀 사물이 동시에 매체가 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연도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언젠가 베를린에서 또 다른 유형의 파사드를 본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진 베를린성이 있던 자리에 원래 모습대로 가상의 건물을 지어놓은 것이다. 물론 판자로 지은 그 가상 뒤에는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장에서나 볼 수 있는 세트를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의 기묘한 느낌을 아직 잊을 수 없다. 한성필의 ‘파사드 프로젝트’ 연작이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 기억 때문일까?

공사 현장에 내걸린 21세기 환상

마치 건물의 일부분처럼 대형 걸개그림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1~6까지 사진은 한성필의 ‘파사드 프로젝트’ 연작이다.

얼굴과 분위기



가상의 파사드는 덧없는(ephemeral) 가면이다. 그것은 잠시 어떤 것의 부재를 보충하다 공사가 끝나면 철거될 것이다. 사물의 세계만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로부터도. 막을 치우면 그 위의 이미지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퍼포먼스나 설치예술이 후에 자료로만 흔적을 남기듯, 가상의 파사드는 사진으로만 영속성을 얻는다. 한상필은 가상의 덧없음을 미적으로 구제한다. 20세기 초 아트제가 사라져가는 파리의 낡은 구조물을 구원했다면, 그가 구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잠시 그것을 둘러싼 가면이다. 그는 껍데기의 피상성을 긍정한다.(사진 3)

어떻게 보면 유형학적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스름 빛 속에 잠긴 영상에서는 기록의 분류학적 냉정함이 아니라 외려 풍경화와 같은 분위기의 아득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복제의 피상성은 묘하게도 원본의 아우라와 결합한다. 파사드는 건물의 정면, 인간에 비유하면 얼굴에 해당한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눈과 눈의 마주침으로 정의한 바 있다. 가상의 파사드는 원본의 복제이지만 관찰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능력에 힘입어 우리에게 죽은 사물이 아니라 소통하는 얼굴로 다가온다.

복제의 이미지에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한성필은 해뜰녘 혹은 해질녘의 진짜 빛과 인공조명이라는 가짜 빛을 의도적으로 섞어놓은 데서 나온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른바 ‘미디어 파사드’다. 하지만 거기에 사용된 것은 대형 LED 화면이나 그 밖에 스스로 빛을 내는 뉴미디어가 아니라, 회화와 사진이라는 고색창연한 올드 미디어다. 사진과 회화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기에 그의 파사드는 자연광과 인공광이 뒤섞인 어스름 속에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사진 4)

복제와 기획

물론 사진의 기록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그의 눈은 다른 데 가 있다. 한성필은 복제를 복제함으로써 ‘재현’을 주제화한다. 복제의 복제는 실물과 가상의 차이를 흐려버린다. 각각 현실이나 가상이나 인화지 위에서는 똑같은 가상의 지위를 갖게 된다. 그래선지 실제로 몇몇 작품에서는 현실의 건물과 가상의 이미지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가짜 빛과 가짜 빛이 경계선 없이 뒤섞이듯, 그의 화면에서 가상과 현실은 경계선 없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사진 5)

공사 현장에 내걸린 21세기 환상

가상과 현실을 모호하게 만들기가 새로운 예술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상의 파사드는 묘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들어설 것의 그림이기도 하다. 앞과 뒤를 동시에 보는 야누스처럼 그것은 과거를 돌이켜 재현하고 미래를 향해 현시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의미의 놀이가 발생한다. 사진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앞으로 실현해야 할 이미지를 탐색한다. 뷰파인더는 미래를 향해 이미지들을 던지는 실험적 탐색의 창이다. 미래의 기획이라는 면에서 가상의 파사드 역시 일종의 뷰파인더다. 한상필은 그 건축의 뷰파인더를 다시 사진의 뷰파인더에 올려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촬영’을 주제화하게 된다.

그가 찍은 파사드 중에는 복제나 기획이 아닌 것도 있다. 가령 트롱프 뢰유(=실물로 착각할 정도의 정교한 눈속임)를 이용한 것이 그것이다.(사진 6) 이때 가상의 파사드는 어떤 것의 부재를 대리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지 않은, 앞으로도 거기에 있지 않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물론 현실의 거리를 지나는 관찰자에게 이 판타지의 가상성은 비교적 뚜렷하게 의식될 것이다. 육안으로 보면 어설픈 세트장도 촬영해놓으면 실물처럼 보이듯, 그것을 사진으로 복제하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 일종의 버추얼 리얼리티가 된다.

파사드와 파사주

가상의 파사드는 왜 거리에 나타났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먼저 다다와 팝아트, 공공예술과 설치예술은 차단막이라는 일상의 사물이 대중을 위한 공공의 설치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또 건물의 벽에서 난데없이 허구의 영상을 보는 체험은 이미 건물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 위로 영상의 홍수가 흐르는 이 시대의 일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늘날은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흐려지고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며 시간의 선형성이 무너져, 재현이 동시에 기획되는 시대다.

이처럼 최근 거리에 나타난 가상의 파사드들 속에는 이 시대의 기술적 조건, 예술사라는 문화적 기억, 거기서 비롯되는 세계와 인간의 존재론적 변화가 은밀히 집약되어 있다. 한성필이 파사드에 주목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facade : face-cade’라는 전시의 제목이 암시하듯 ‘파사드 프로젝트’는 벤야민의 ‘파사주(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30년대에 벤야민이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20세기를 읽은 것처럼, 그의 ‘파사드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21세기가 꾸는 꿈을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

복제가 원본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실물을 어설프게 베낀 세트가 정작 필름 위에서는 생생한 현실이 되는 것처럼, 때로 복제는 또 한 번의 복제를 통해 외려 원본의 현실성에 도달한다. ‘얼굴’로 말하면, 가상의 파사드는 진짜 얼굴이 아니라 가짜 얼굴, 즉 가면이다. 가면을 의미하는 ‘persona’가 아예 인성 자체를 가리키게 된 것처럼, 한성필의 작업 속에서 가면들은 분위기에 휩싸여 얼굴이 된다. 우리는 이미 가면이 얼굴보다 더 생생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주간동아 2007.03.13 576호 (p90~92)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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