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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승계 후견 특명?

1월 인사에서도 이학수 체제 불변 … 오너 3대 신임 확인

이재용 승계 후견 특명?

이재용 승계 후견 특명?

1월2일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 회장(가운데)과 이학수 부회장(맨 오른쪽).

지난해 하반기부터 설왕설래가 많았던 삼성 사장단 인사가 1월 중순 마침내 뚜껑을 열었다. 이번 인사에서도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확고한 신임이 재확인됐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권가 일각에서 ‘이학수 퇴임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이는 그룹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고 전했다.‘이학수 퇴임설’ 자체가 ‘생뚱맞은’ 소문이었다는 것.

이 부회장의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이 회장 등 6명의 사내 등기이사 가운데 한 명이다. 사외이사 7명을 합하면 13명의 이사회 멤버 중 한 사람인 셈.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이 부회장의 위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회장의 위임을 받아 삼성그룹 전체를 ‘대리 경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증받은 임원’ 전략기획실 핵심에 포진

그의 방은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꼭대기층인 28층에 있다. 이 회장 집무실과 붙어 있다. 그뿐 아니라 주로 자택에서 업무를 챙기는 이 회장과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신분 변동은 곧 삼성 내 권력구조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전략기획실에 관한 한 자신의 체제를 더욱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사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이 된 이순동 전 기획홍보팀장의 후임을 맡은 장충기 부사장이나, 김인주 전략지원팀장(사장)이 이 부회장의 마산중 후배다. 새로 홍보파트장을 맡은 윤승봉 부사장은 장충기 부사장의 부산고 후배다. 이 부회장은 전략기획실 핵심라인을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채운 셈이다.



물론 이들 세 사람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 부회장과 동문 관계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요직에 발탁됐을 것이란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은 학연이나 지연을 바탕으로 사조직을 만드는 것을 금기시하는 조직이어서, 능력이 없다면 동문 사이라고 해도 냉정하게 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승계 후견 특명?
김 사장은 수치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 관계자는 “그는 매달 계열사 실적을 수치로 보고받으면서도 귀신처럼 이상 징후를 짚어낸다”고 전했다. 그가 “그 회사 무슨 일 있었나. 갑자기 실적이 이상한데”라고 말하면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항상 김 사장의 말대로 실적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김 사장의 빈틈없는 스타일은 골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골프를 칠 때도 룰을 철저히 준수하기 때문에 골프 룰에 관한 한 그룹 내 최고 권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들과 어울리는 가벼운 자리에서는 프로들도 헷갈리기 쉬운 골프 룰에 관한 퀴즈를 낸다”고 소개했다.

장충기 부사장은 독서량이 많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전략기획통으로 꼽힌다. 형식을 싫어하는 스타일이어서 사무실에서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 윗사람에게 질책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그를 ‘영원한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윤순봉 부사장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언론사 강의 등을 통해 언론과의 접촉도 활발히 했던 인물이다.

이재용 전무도 이 부회장에 대한 신뢰 각별

삼성의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하는 전략기획실은 지난해 3월 구조조정본부를 축소 개편한 조직으로, 현재 3팀 1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전략지원팀(팀장 김인주 사장), 기획홍보팀(장충기 부사장), 인사지원팀(노인식 부사장) 등 각 팀에 소속된 팀원들은 모두 각 계열사에서 선발된 엘리트들이다. 이 부회장은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이학수 체제’ 강화와 함께 이 회장 아들 재용 씨의 전무 승진도 ‘예상대로’ 이뤄졌다. 주목되는 점은 재용 씨가 신설 직책인 삼성전자 최고 고객경영자(CCO·Chief Customer Officer)를 맡아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것. 이 전무는 CCO로서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 주요 투자자, 일반 고객을 모두 관리하면서 새로운 제휴관계와 투자자를 탐색하는 업무도 맡는다.

CCO 조직은 삼성전자의 일반 관리업무를 관할하는 경영지원총괄(최도석 사장) 산하가 아닌, 윤종용 부회장 직속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전무는 윤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게 된다. 직급만 전무일 뿐이지 실질적으론 총괄사장들과 동격이라는 얘기다.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됐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전무는 순환출자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 에버랜드의 대주주다. 그는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황태자’ 예우를 받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전무가 경영 수업을 본격 시작한 직후 윤종용 부회장과 함께 헝가리의 유럽 법인을 방문했을 때, 그룹으로부터 이 전무의 일정만 사전 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의 의미에 대해 “이학수 실장이 이재용 전무의 ‘후견인’ 역할까지 맡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룹 내부에서야 오래전부터 ‘정설’로 통하는 얘기였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공식화’했다는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전무도 이학수 부회장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병철 회장 시절인 1982년 회장 비서실(현 전략기획실) 운영1팀장으로 발탁되면서 20년 넘게 오너 일가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다. 당시 운영1팀은 계열사의 경영 관리를 맡았다. 그는 93년 12월 비서실을 떠나 잠시 삼성화재와 제일제당 경영을 맡았지만, 96년 8월 비서실 차장으로 복귀한 이래 이 회장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04년 1월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의 장수 비결에 대해 “실력과 실적은 기본이고 오너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책임감, 그리고 성실성 등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명한 일화지만 그는 입사 직후 제일모직 대구공장 경리과를 지망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일한 끝에 국내 모방직업계 최초로 원가 분석 시스템을 개발해낸 다음 병원에 실려갔다. 그런 점에서 윗사람으로서는 탁월한 업무 성과는 물론이고 책임감과 성실함까지 겸비한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그는 점점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됐고, 이런 성과가 쌓여 오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실력으로 승부해서 오너의 절대적 신임까지 얻었다고 봐야 한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에선 그의 ‘충성심’을 일부 엿볼 수 있다.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 관계자는 “이재용 전무가 유학 중일 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했기 때문에 이 전무는 ‘나는 몰랐다’고 하면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적어도 ‘황태자’는 다치지 않게 배려하려는 이 부회장의 충성심과 치밀함이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충성심 그리고 배려

그가 외환위기(IMF) 직후 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을 미뤄가면서 그룹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일은 잘 알려진 일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너를 위해 충성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자금 사정을 매일매일 체크해야 할 정도로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데다, 당시 대우그룹과 빅딜 협상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암 수술을 연기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몸을 던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결과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매년 수십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경신해가고 있다. 국내 타 그룹이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성과다. 이 회장이 이 부회장을 계속 신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김대중 정부 초기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고위 관료의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노회한 계열사 사장들이 이건희 회장을 직접 만나 막대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략기획실은 일부 사장단이 결과가 빤히 보이는 사업도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계속 투자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자 이를 명분으로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댔고, 이건희 회장도 전략기획실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장수 비결이 ‘비밀’을 많이 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비서실 재무팀장으로 일하던 80년대 후반부터 그룹 전체의 재무를 관리하면서 이 회장뿐 아니라 이 전무의 승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오너 일가의 재산 관리를 총괄해온 만큼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나 삼성 관계자들은 “아무리 비밀이 많다고 해도 실력이 없다면 그 자리를 그렇게 오래 지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이학수 부회장은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심 못지않게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도 갖추고 있다”면서 “삼성의 2인자는 위만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부회장은 가끔 점심때가 되면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아랫사람 자리로 와서 ‘오늘 약속 없으면 같이 점심이나 하자’고 말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오너의 신임이 각별하고 조직원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이 부회장의 2인자 역할은 이변이 없는 한 계속될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46~48)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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