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4일,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있은 기자간담회에서 검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고전을 인용해가며 거침없이 쏟아냈다. 검사는 원만하되 소신을 잃지 않으며, 슬퍼할 줄 아는 감성을 갖되 절제할 줄 아는 이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정 내정자의 주장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그동안의 검찰 이미지와는 다른 것. 1시간여 이어진 고전풀이의 결론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 포부를 가진 정 내정자를 정치권은 과연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11월1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시각은 큰 틀에서 비슷하게 흐른다. 열린우리당(우리당)은 이번 인사를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 뒤숭숭한 검찰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내부 발탁’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고, 정 내정자의 발탁이 이에 부응하는 인사라는 것. 이런 분위기가 청문회장으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도 나왔다. 법사위 간사 우윤근 의원은 검찰의 뜻이 반영된 인사라는 측면에서 무난한 청문회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정 내정자의 친구인 한나라당 법사위 간사 장윤석 의원도 “자질과 능력에 대해 큰 이의 제기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친구’라는 점을 의식한 듯 야성(野性)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야 막론한 폭넓은 인맥도 청문회 통과에 도움될까 ‘관심’
“말 잘 듣는 총장을 앉혀서 검찰을 장악하고, 정치권에 대항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인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인 정 내정자의 발탁 자체가 코드인사가 아니냐는 문제제기인 셈. 또한 변수가 없다면 정 내정자는 대선 코앞인 2007년 10월 말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점도 한나라당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부분이다. 대선 등 대형 선거일수록 검찰의 역할은 중차대하다. 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검찰 등 사정기관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한나라당이 정 내정자가 코드인사일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런 흐름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참여정부 초기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개혁방안을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와 잘 접합해 무난하게 추진했다”고 밝혔다. 검사치고는 사고가 유연하다는 나름의 평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정 내정자는 참여정부 들어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에서 동기 중 맨 먼저 고검장급인 법무부 차관에 발탁된 뒤 검찰총장 후보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정 후보자의 이 같은 이력이 ‘위기에 처한’ 검찰의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나, 자칫 검찰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정 내정자와 친분이 있는 한나라당 한 검사 출신 인사는 “대통령과의 친분은 정 내정자의 장점이자 최대의 약점”이라고 꼬집었다.
정 내정자의 아내가 1989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강원 강릉시 경포대 인근 해안도로변 땅 매입 과정에서의 농지개혁법 위반 여부도 청문회의 쟁점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정 내정자 측은 “당시 강릉으로 위장전입하지 않고 서울에 거주하면서 땅을 매입한 것으로 볼 때 농지개혁법상의 농지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지만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보좌관을 현장으로 보내 구체적 실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이 손학규 경기지사의 측근인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을 구속한 것과 관련 의혹을 제기한다. 서울시 정윤재 부시장에 이어 한 원장이 구속되자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준비중인 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후보를 흠집 내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5월에는 박근혜 대표의 디지털 특보였던 황인태 씨를 구속하는 등 최근 검찰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3인의 측근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가 청문회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전체적인 기류는 정 내정자의 발탁에 대해 ‘무난하다’는 반응. 한나라당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한나라당으로서도 그는 차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재섭 원내대표 등 정 내정자와 직·간접적으로 친분을 나누는 인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점도 정 내정자의 청문회를 낙관론으로 보게 하는 근거.
정 후보자는 친화력이 뛰어나다. 마당발인 그의 인적 네트워크가 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510호 (p2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