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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

사라진 유리구두 … 맨발의 춤사위

사라진 유리구두 … 맨발의 춤사위

사라진 유리구두 … 맨발의 춤사위

마이요가 만든 ‘맨발’의 신데렐라. 스스로 운명의 개척자임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엔 동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부정적인 콤플렉스의 대명사로 ‘신데렐라’만큼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한 민담학자는 중세 이래 전 세계적으로 약 1000가지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또한 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흔하고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유독 무용계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레퍼토리가 또한 ‘신데렐라’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발레를 위해 훌륭한 관현악곡을 남겼지만, 현재 발레 ‘신데렐라’는 전 세계적으로 영국 로열발레단과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두 작품만이 공연되고 있다. 안무가들이 외면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미오와 줄리엣’과 더불어 ‘신데렐라’는 모든 춤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고전발레의 대명사 프티파를 비롯해 포킨, 누레예프, 애슈턴 등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 다양한 버전의 안무가 완성되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매우 특이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은 프로코피예프가 남긴 음악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가 남긴 단조풍의 음악은 대단히 그로테스크하고 역동적이며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무가들은 왕자와 아름다운 소녀가 만나 행복하게 결혼하는, 다분히 낭만적인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쉽게 볼 수 없는 레퍼토리를 한국의 관객들은 올해 무려 두 차례나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6월 내한한 영국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애슈턴 안무)가 오늘날 보편적으로 상연되는 클래식 발레의 결정판이라면, 10월27일부터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이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현대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를 안무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2000년과 2002년 국립발레단에 의해 상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으며, 이 공연을 계기로 그는 국내에서도 상당한 팬들을 확보해놓았다.



그의 작품이 재미있는 이유는 첫째로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렇지만 마이요는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각색을 시도한다. ‘신데렐라’의 경우 주인공 ‘신데렐라’ 이외에도 또 한 명, 마법사를 주역으로 등장시킨다. 신데렐라를 변신시키고 도와주는 후덕하고 나이 많은 백발의 할머니 요정은 마이요의 ‘신데렐라’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몸에 꽉 끼고 속살이 훤히 보이는 금빛 타이츠를 입은 근육질의 마법사가 순수하고 여린 신데렐라보다도 훨씬 눈에 띄는 관능적인 연기를 담당한다.

신데렐라의 죽은 생모의 화신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 마법사는 자신의 딸이 왕자와 맺어질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상황을 조작한다. 신데렐라에게 반한 어리숙하고 우유부단한 왕자를 신데렐라에게 이끄는 것도, 신데렐라에게 행동의 지침을 내려주는 것도 모두 요정이 할 일이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신데렐라의 아버지다. 아내가 죽고 재혼을 했지만 여전히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는 사뭇 멋있고 낭만적인 역할로 춤을 추는데 때로는 왕자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

사라진 유리구두 … 맨발의 춤사위
마이요의 ‘신데렐라’에서 또 하나 특기할 점은 맨발이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에 유리구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화려한 마차도, 핑크빛 드레스도, 시종도 없다. 다만 아무런 장식 없는 순결한 하얀 드레스에 금가루를 묻힌 맨발의 신데렐라가 존재할 뿐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발레 슈즈를 신고 춤을 추는 동안에도 신데렐라는 유일하게 맨발로 춤춘다. 왕자는 신데렐라의 외모보다 그녀의 발을 먼저 목격한다.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는 단서도, 정중하게 무릎을 꿇는 대상도 바로 그 맨발이다. 맨발은 격식을 벗어던진 자유와 소박함, 그리고 본질을 상징한다.

소박하고 수수한 신데렐라의 맨발의 춤과 이미지는 계모와 두 딸의 뒤틀리고 기형적인 발레 의상과 대조를 이룬다. 극중에 보여주는 신데렐라와 왕자의 역동적인 운명의 개척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과 너무도 잘 조화를 이룬다. 그리하여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신데렐라가 본래 수동적인 여성의 ‘거저먹는’ 성공 스토리가 아님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통과의례의 고전임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었던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에 의해 설립되고 현재는 캐롤라인 공주가 후원하는 모나코 왕립발레단이다. 고전발레단으로 창단한 이 발레단은 마이요의 영입을 계기로 현대무용단으로 전향한 뒤 ‘로미오와 줄리엣’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의 고전 레퍼토리들을 파격적으로 해석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내한 작품인 ‘신데렐라’는 1999년 파리 오페라하우스 위촉작으로, 유럽에서는 상연 때마다 조기매진되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껍질이 아닌 본질이라는 것, 그 본질로 승부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는 운명의 진정한 가치를 몬테카를로 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의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0월27~29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 문의 031-729-5615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80~81)

  •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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