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7

2005.10.25

네 쌍의 커플, 네 개의 이별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10-24 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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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쌍의 커플, 네 개의 이별
    새드무비’는 가을 영화다. 이 영화가 의도하는 것은 빠른 스토리로 관객들을 자극시키거나 무거운 주제로 그들을 각성시키는 게 아니다. 가을 영화들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분위기다. 한마디로 자연 세계에서 일조량 부족이 신체에 일으키는 우울증을 영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드무비’는 네 쌍의 커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방송국 통역사인 수정은 오래된 남자 친구인 소방관 진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수정의 동생인 청각장애인 수은은 놀이공원에서 일하며 초상화가인 상규와 첫사랑을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시간제 근무) 직원으로 일하는 숙현은 무능력한 남자 친구 하석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바쁜 직장 여성인 주영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야 아들 휘찬과 가까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영화가 어느 정도 흐르면 이들 모두에게 필연적인 이별이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별이라는 공통되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는 네 개의 이야기가 화음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음악적 경험이다. 어떻게 보면 여러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이런 구성은 일반적인 구성의 영화들보다 ‘새드무비’라는 제목에 더 잘 어울린다. 분명한 줄거리가 있다면 영화는 그 줄거리에 귀속될 것이다. 하지만 네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우린 줄거리보다는 그 작은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집중할 것이다. 단선적인 하나의 이야기를 할 때보다 화음과 공명의 효과가 훨씬 커진다는 장점도 있다.

    ‘새드무비’의 단점은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들이 평범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런 이야기가 발전하도록 숨통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가을 분위기를 물씬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그러는 동안 그 분위기에 도취되어 분명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들을 제자리에 버려둔다. 그 결과 영화는 조금 갑갑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음악적인 구조에도 영향을 끼친다. 음악적 비유를 조금만 더 끌어 쓴다면 이 영화의 주제들은 반복되기만 할 뿐 발전되지는 않는다. 네 개의 이야기들이 가끔 교차하기만 할 뿐 충분한 유기적 연관성을 맺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네 쌍의 커플, 네 개의 이별
    하지만 네 쌍의 커플을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성실하고 모범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종종 전체적 수준을 뛰어넘는 재치 있는 부분들이 발견되며 기술적 완성도도 높다. 미진한 느낌이 남아 있기는 해도 ‘새드무비’는 여전히 잘 만들어진 기성품 영화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 기자 시사회에서 상영된 버전에서는 청각장애인인 수은의 보이스 오버들이 담겨 있었다. 아마 각본엔 없었지만 나중에 설명이 부족할까봐 덧붙인 것 같은데, 전혀 쓸모가 없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신민아의 표정 연기와 보디랭귀지만으로도 이 캐릭터의 내면은 충분히 전달된다.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를 고려한다면 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열심히 연기한 배우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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