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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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같은 시설, 대학교 수준의 강의

  • 입력2004-12-31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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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산고등학교 ●www.jb-sangsan.hs.kr ●063-223-5303

    전북 전주시 완산구 상산고등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름드리 나무와 갖가지 꽃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 조경 백선’ 가운데 하나로 꼽혔을 만큼 아름답기로 정평 난 상산고 교정에는 2만여 평의 터에 68종 4600여 그루의 나무와 4개의 연못, 산을 닮은 자연석들과 최첨단 학교 시설이 어우러져 있다.

    2003년 자립형 사립고 시범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의 설립자는 고교 수학 참고서의 바이블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씨. 그는 1981년 개교한 이 학교를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면서 120억원을 들여 작은 지방대학 수준의 시설과 규모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특히 상산고가 자랑하는 것은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시설과 규모를 갖춘 기숙사. 화장실 겸 샤워실이 딸린 4인용 방에는 2층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고 개인용 책상과 높이가 180cm나 되는 옷장 겸 사물함이 구비돼 있다. 각 층마다 전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와 소파 등 휴식공간이 설치돼 있어 기숙사가 아니라 전망 좋은 콘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시설 덕에 상산고는 요새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05학년도 신입생의 경우 전북 지역 합격생은 전체의 26.8%에 지나지 않을 정도.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 출신 학생이 43%를 차지하고, 강원 대전 경북 등 전국 곳곳에서 지원하는 바야흐로 ‘전국 명문’이 된 것이다.



    기존 4층짜리 본관 건물과 3층짜리 과학관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지은 강의동도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강의동의 특징은 제7차 교육과정의 요구에 맞춰 설계한 15, 35, 65인용 강의실이 18개나 있다는 점. 이 덕분에 상산고는 수강 신청 인원이 15명만 넘으면 해당 강의를 개설할 정도로 7차 교육과정의 정신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 제2 외국어 수업만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세 과목이 개설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다.

    120명,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대강의실 두 곳에는 빔 프로젝터 등 멀티미디어 시설이 갖춰져 있고, 대형 강당에서는 매달 성악가와 국악인, 무용단 등이 출연하는 특별 공연이 열린다.

    하지만 상산고가 내세우는 진정한 자랑거리는 시설이 아니라 내용. 대학교급 시설보다 학생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대학 수준의 학교 강의라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도 서울대 수학과 김홍종 교수, 전북대 국문과 윤석민 교수 등 명문대 교수 4명이 학교를 찾아와 강의를 했다. 이들의 수업은 일회성 특강이 아니다. 작문특강을 강의하는 윤 교수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대학원생들과 함께 학교를 찾아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해 강의한 뒤 학생들의 글을 직접 지도해준다. 수학 특강도 교수들이 돌아가며 매주 한 번씩 학교를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명사들의 특강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1학기 학교를 찾은 황우석 교수의 특강 이후 학교에는 ‘황우석 팬클럽’이 조직됐고, 이 학생들은 지금까지도 황 교수와 e메일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매달 한 번씩은 이윤기씨 등 유명 작가들이 학교를 찾아 자신의 책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일주일에 2시간씩 마련된 영어회화 수업은 원어민 강사가 진행한다. 원래 한 반이 30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수업만은 영어 습득 효과를 위해 15명이 한 반으로 이뤄지는데, 자연스레 영어 문화를 익힐 수 있게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된다. 12월14일 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원어민 강사와 함께 캐럴을 부르거나, 영화를 본 뒤 토론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며 어울려 춤을 추는 등 마음껏 수업을 ‘즐기고’ 있었다.

    상산고의 학교 철학인 ‘자율’은 1시간 30분짜리 점심시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산고는 지난해 학생들이 점심식사 직후 5교시(1시30분∼2시20분) 수업의 비효율성을 지적하자 이 시간을 자율학습 시간으로 정했다. 졸음이 쏟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 능률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수업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기보다 점심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다시 제안해 방식을 바꿨다. 이제는 12시부터 1시30분까지가 모두 점심시간. 입시 교육을 위해 점심을 30분 만에 먹은 뒤 자율학습을 하게 하는 고등학교들도 있는 현실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다. 이 시간 동안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혹은 빈 강의실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만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일부 학생들은 평소 궁금하거나 잘 몰랐던 교과목의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자율학습’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의 감독도 하지 않는다. 상산고 학생들은 방과 후 640석 규모의 중앙도서관이나, 450석 규모의 기숙사 자습실, 학교 교실, 기숙사방 등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원치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해도 좋다.

    이처럼 ‘자율’을 강조하는 상산고에서 유일하게 ‘강요’하는 것은 ‘지도자 교육’이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표이기 때문. 자세히 살펴보면 상산고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 하나의 주제에 맞춰져 있다.

    학교에 잉글리시 존을 만들어 그곳에서는 영어만 사용하게 하고, 원어민 교사들에게 살 집까지 제공하며 학생들과 최대한 접촉할 수 있게 한 것은 ‘21세기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어 활용 능력을 갖춰주기 위한 것이고, 매달 한 권씩 ‘양서’를 정해 전교생이 함께 읽도록 한 뒤 저자나 역자를 초청해 대화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만한 교양을 쌓도록 돕기 위해서다. 전북대 국문과 윤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글쓰기 지도를 받도록 한 것도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고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을 위한 것.

    특이한 것은 전문 성악가에게서 우리나라와 외국의 가곡을 배우는 ‘음악 특강’을 매주 한 시간씩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국제적인 지도자가 되었을 때 세련된 매너를 갖출 수 있게 하기 위한 훈련의 일환이라고 하니, 이 학교의 ‘지도자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교육 비용은 학생 3분의 2, 재단 3분의 1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 학생들은 1인당 연 400만원 정도의 수업료를 내는데, 이에 맞추어 재단은 한 학생마다 200만원씩 적립해 수업에 지원한다. 시설 등에 대한 투자는 별도다.

    정희상 교감은 “대학 교수의 강의료나 원어민 교사들에 대한 월급, 시설 투자 비용 등이 만만치 않지만 ‘정석’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학생들에게 환원하겠다는 이사장의 뜻에 따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우리 학교 학생들은 21세기 새로운 지도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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