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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눈물 연기에 안방극장도 글썽

‘상도’ 비련의 여인 채연 役 … 춤사위 곁들인 감정몰입 열연 ‘시선 한 몸에’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빛나는 눈물 연기에 안방극장도 글썽

빛나는 눈물 연기에 안방극장도 글썽
”거뉘 집 딸인지 참 참하다.” MBC 드라마 ‘상도’에 출연중인 김유미(22)를 보고 이렇게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탄탄한 근육질의 터프걸들과 남성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당돌한 여자들, 노골적인 섹시함으로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요부형 여인들이 미디어와 현실세계를 장악해 가는 마당에 평생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는 비련의 여인이라니….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인물이지만 김유미가 연기하는 채연은 보기 드물게 애절하고도 청초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가슴에 살포시 와 닿는다.

“여성들 중에는 채연을 보면서 ‘웬 청승?’하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연기하기 전엔 저도 그런 여자들 별로였거든요. 채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에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나라 남성의 이상형은 여성적이고 청순한 여자인가 봐요.”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에 하얀 코트를 입고 나타난 김유미의 모습은 댕기머리 처녀 ‘채연’과는 사뭇 달랐다. 말없이 조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잘 웃고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드라마 속 ‘비련의 여인’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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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를 보며 ‘괜찮은 신인이 하나 나왔나 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녀는 ‘초짜’ 연기자는 아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재작년 ‘경찰특공대’와 ‘천사의 분노’에 출연한 김유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데뷔작이던 ‘경찰특공대’에서부터 김유미는 주인공이었다. 특이하게도 킬러 역을 맡은 그녀는 시원스레 큰 키와 이지적인 마스크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당시의 그녀는 신선한 마스크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어색한 표정과 미숙한 대사 처리 때문에 ‘미스캐스팅’이라는 악평도 흘러나왔고, 몇 달 후 다시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천사의 분노’는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 ‘가을동화’의 기세에 눌려 관심 한번 끌지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김유미의 비상이 예사롭지 않은 건 이런 과정들 때문이다. ‘새로운 기대주’ 어쩌고 하면서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잊히고 마는 수많은 얼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런 아픈 경험들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카메라에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현대극에 필요한 건 순발력인데, 아직 저에겐 부족하죠. 사극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은 선배 연기자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다시 배워가자고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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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옥(이재룡 분)의 여러 여자 중 하나일 뿐인 ‘채연’은 어쩌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냥 묻혀진 역할이 될 수도 있었다. 주인공이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한 장면을 찍기 위해 하루를 온통 기다려야 할 때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인내’를 배우고 연기를 배워갔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채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채연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하고, 그녀의 연기에 구체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채연이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어요. 착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죠. 별로 대사도 없이 분위기와 표정으로만 연기하려니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수십명이 왔다 갔다 하는 왁자지껄한 촬영현장에서 눈물연기를 하기 위해 감정에 몰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현대물과 판이하게 다른 대사 연기와 시선처리, 호흡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그녀는 빠르게 적응해 갔고, 이젠 “큐” 사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주르륵 눈물을 흘릴 정도로 몸과 마음이 온통 ‘채연’이 되었다. 그녀의 눈물 연기가 하도 애절해 임상옥이 만상의 딸 미금과 결혼한다는 스토리가 알려져 있는데도, 방송국 인터넷 게시판에는 “임상옥과 채연이 맺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단연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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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에서 김유미가 돋보인 데는 그럴듯한 춤사위도 한몫했다. 극중에서 채연은 사당패들과 장터를 떠돌면서 장구춤·살풀이춤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데, 다소곳하면서도 은근히 섹시한 김유미의 춤사위가 남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음은 물론이다. 방송이 나간 후 한국무용을 전공했느냐는 질문까지 받았지만, 사실 그녀는 타고난 춤꾼은 아니다.

“재즈댄스를 잠깐 배운 적은 있지만, 한국무용은 난생 처음이에요. 촬영 전에 따로 교수님을 찾아뵙고 사사를 받았어요. 뭐든 닥치면 해내는 편이라, 겨우 일주일 배우고 카메라 앞에서 춤을 췄는데 끝나고 나니 스태프들이 잘했다고 손뼉쳐 주셨어요.” 옆에서 매니저가 한마디 거든다. “보기와 달리 악착같은 데가 있어 뭐든 금방 배우더라고요.”

감독과 시청자들에게 ‘연기 좋아졌다’는 칭찬을 받고 있고, 어느새 팬 사이트도 몇 개씩 생겨났다.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굵직한 광고모델 제의까지 받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요즘이지만 현재로선 전북 고창, 경북 상주, 충북 충주 등을 오가며 드라마 촬영하면서 추위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다. 얇은 한복 안에 내복을 몇 벌쯤 껴입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어깨선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복도 못 입는단다. 그저 몸 여기저기 핫팩을 붙이고 덧버선 안에 양말을 두 켤레쯤 껴 신고는 짚신 하나로 산도 오르고, 코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아도 태연하게 연기를 해야 한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그녀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성공, 결코 순탄치 않은 연기자의 길로 그녀를 이끈 건 어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넘쳐 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일찌감치 배우를 꿈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별 튀는 데 없이 얌전하기만 한 그녀를 어머니는 계원예고에 진학시켜 연기를 배우게 했고, 결국 대학도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여자가 평생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일이 바로 배우”라고 말했다.

“전 전혀 기억에 없는데, 아주 꼬마 때 교회에서 연극하면서 눈먼 장님 역을 하던 제가 대사 도중 눈물을 흘렸대요. 엄마는 그때 저한테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셨나 봐요.”

현역 육군 대령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강원도 전방 산골에서 살았던 김유미는, 그래서인지 드라마 초반 하루가 멀다 하고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그때 이재룡이 붙여준 별명이 ‘마징가’. 가녀린 듯 보이지만 활발하고 강단 있는 성격도 그렇게 길러진 것일까.

평소 배우로서 존경해 온 나문희(임상옥 어머니 역) 선배와 함께 출연하게 돼 너무 기쁘다는 김유미. 아직은 아무것도 채색되지 않은 하얀 백지 같은 모습이지만, 그녀는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 속에서 스펀지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흡수해 어떤 그림을 완성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기왕 연기자가 됐으니 2등으로 남기보단 1등이 됐으면 좋겠어요.”

겸손한 말투지만 숨길 수 없는 자신감. 언젠간 사람들이 ‘김유미’라는 이름만 보고도 그 드라마를 사랑하는 시청자가 되고, 표를 사서 극장으로 향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의 그녀는 드라마 촬영하느라 펑크난 학점을 메워야 한다며 계절학기를 신청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내리 3시간 이상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하는, 바쁘고 할 일 많은 신세대 예비 스타다.



주간동아 317호 (p72~73)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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