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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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시청률 노린 듯 재미 위주 역사적 허구 남발 … 부정적 여성행동 부각 오히려 ‘여인비하’

  • < 김기덕/ 영상역사연구소 소장 > kkduk1551@hanmail.net

    입력2004-12-14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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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드라마 ‘여인천하’의 성공이 놀랍다. 부동의 시청률 1위다. 시청률이 내용보다 재미를 반영하는 측면이 많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40%를 웃돌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세다. 하나의 성공은 숱한 언어의 차용과 패러디를 동반한다. 대학에서도(캠퍼스 여인천하), 정치권에서도(지구촌 정치권 여인천하 시대, 외교부 여인천하), 스포츠계에서도(LPGA 여인천하) 앞다퉈 사극의 인기를 차용했다. ‘모바일 여인천하’까지 등장했으니….

    ‘뭬야’(도지원)나 ‘뭐라’(전인화)의 유행뿐 아니라 국악인 황병기씨의 최신작 ‘정난정’도 나왔고,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요청으로 여인천하 테이프를 북한에 보냈다고도 한다. 모르긴 해도 술집 이름이나 나이트클럽 지배인 이름에도 숱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관비의 딸로 정경부인까지 오른 정난정이나 조선시대판 측천무후라고 할 수 있는 문정왕후의 정치 참여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다. 문제는 드라마 ‘여인천하’가 여인들의 신바람을 강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시청률을 의식한 의도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방영 초기부터 지적돼 온 드라마 ‘여인천하’의 사실 왜곡과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연기행태는 이제 시청률 1위라는 대세를 업고 오히려 당당해지고 있으며 더욱 그 도를 높일 기세다.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을 오빠로 설정한다거나 요즘 정치권의 ‘쭛쭛쭛리스트’를 의식한 듯 뇌물액수가 적힌 치부책이 등장하고, 문정왕후와 경빈 박씨가 팽팽한 기싸움을 지루할 정도로 계속하며, 왕세자 책봉시험, 왕세자를 적서 구분 없이 자질에 따라 뽑자는 주장 등 시청률을 높이는 데 견인차가 된 부분들은 모두 허구다.

    이처럼 이 드라마가 상상과 왜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난정에 관한 직접적인 사료가 거의 없다는 데 변명의 여지가 있다. 또 대중이 쉽게 참고할 수 있는 이 분야 대중서가 없다는 점에서 역사가로서 책임을 인정한다. 또한 사극이 정사 대신 야사를 선택할 수도 있고, 자료에 없는 부분을 상상하여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시대정황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주인공 정난정이 어가를 가로막으며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 가능한가. 미천한 신분으로 왕의 행차를 가로막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여염집 여인이 임금을 맨얼굴로 마주 대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법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역사가들은 자꾸 역사적 사실을 들먹이는가. 그것은 시시콜콜 시비를 걸어 역사적 상상력을 거부하는 샌님기질 때문이 아니다. 시대정황을 무시한 설정은 결코 역사적 교훈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극이라면 과거의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 사이에 ‘역사적 진실’이라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시대정황을 무시하고 심지어 왜곡하면서 편의대로 상황을 만드는 것은 결국 환자를 정식으로 치료하지 않고 모르핀 주사를 남발하는 격이다. 이 드라마는 모르핀 주사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베드신을 거침없이 내보내고, 경빈 박씨가 정승들을 하인처럼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보여준다. 여성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치켜뜨고 험한 욕을 해대며, 시도 때도 없이 인물 클로즈업을 남발한다.

    “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박종화의 원작 ‘여인천하’(1958년)가 쓰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박종화는 중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후궁들의 음모와 암투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당시 자유당 정권 말기의 치맛바람을 고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2001년의 드라마 ‘여인천하’는 이제 원작의 문제의식을 넘어서 지금의 흐름은 ‘남성천하’가 아니라 ‘여성천하’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다. ‘여성코드’는 사극 부문에서 ‘여인천하’와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명성황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징후다. 지금까지 대원군 관련 TV드라마에서 명성황후가 부분적으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명성황후의 전체 인생을 극화한 적은 없었다. 영화 ‘조폭 마누라’에 여성 조폭 보스가 등장하는 것을 새삼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여성코드’는 현재의 상황과 의식 그리고 희망사항의 반영이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경우 다른 드라마와 달리 여성 시청자가 거의 배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성공이 여성 시청자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달라진 여성상, 혹은 달라졌으면 하는 여성상의 모습을 이 시대 여성들은 일단 여자들이 마구 헤집고 다니는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런 시청자의 요구에 맞춰 정난정, 문정왕후, 여러 후궁은 말할 것도 없고, 옥매향(박주미), 능금(김정은), 남장여자인 중국 거상 장대인(이휘향) 등 보여줄 수 있는 여인상을 총동원했다.

    “뭐라~ ‘여인천하’가 갈 데까지 갔어?”
    사실 본격적인 ‘여인천하’는 문정왕후와 경빈 박씨가 권력다툼을 벌이는 시기가 아니다. 중종에 이어 인종이 즉위하고 인종이 1년 만에 숨지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12세 나이로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섭정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윤원형(이덕화)이 득세하고 정난정(강수연)이 정경부인까지 오른다. 이 기간이 문정왕후와 정난정의 진정한 여인천하인 것이다. 본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과 같은 난장판을 견뎌내며 계속 즐거워할 수 있을까.

    궁중 여인들이 모조리 질투심 많은 극악한 인물로 그려지고, 거기에 놀아나는 정치인들은 무능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여인천하’를 보면서 슬슬 모르핀의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마약 환자가 약효가 떨어지면 자신의 신세가 한심하여 견딜 수 없듯, 이제 많은 생각 있는 시청자들은 ‘여인천하’를 보며 인간 존재의 덧없는 비참함에 참담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문화의 초점이 남성중심에서 여성적 감수성으로 나아가는 것은 대세라고 본다. 그러나 드라마 ‘여인천하’는 과연 이러한 시대상황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여성은 아직도 ‘본질적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존재’로 머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인천하’식 여성 살리기가 결코 즐겁지 않다. 설치는 여성들 속에 담긴 메시지가 허망하며, 그것은 시대정황을 무시하고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일회성 카타르시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끝날 때까지 시청률이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허망함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때의 분풀이는 되겠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여인네들의 행동으로 매도될 ‘여인천하’라는 낱말 쓰임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지식인들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인가. 이 드라마가 ‘제거하다’ ‘숙청하다’는 말 대신 ‘찍어낸다’는 말을 유행시킨 것처럼, 지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역사 흐름에서 오히려 여성들을 찍어낼까 겁난다. 그것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며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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