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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韓流 열풍’, 거품으로 끝날라

드라마·제품 선호와 국민 인식은 별개 … 상호이해·신뢰 차원에서 접근해야

베트남 ‘韓流 열풍’, 거품으로 끝날라

베트남 ‘韓流 열풍’, 거품으로 끝날라
요즈음 동남아 일대에 한류(韓流) 열풍이 거세다. 한국 드라마·배우·가수뿐 아니라 이와 더불어 한국 상품까지 판매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이미 배우 장동건과 김남주가 호치민시에서 공연을 가졌다. 시내 거리에서는 한국산 의류나 액세서리, 화장품 상점이 곧잘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한류를 산업화해 동남아 각국에 한국상권을 형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과연 드라마나 배우, 가수 또는 각종 한국 상품에 대한 선호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지하는 점이다. 상권이 장기적 안정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국민의 상호이해와 신뢰가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일조할 수 있고, 나아가 공동번영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트남 사람은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이 꿈꾸는 것처럼 베트남 땅에 한국 상권의 형성이 가능한 일일까?

과거의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의 중남부 지역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수도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 북부 지역민은 한국인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들은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격인 가난한 나라가 어쩔 수 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하였다는 정도로만 한국의 베트남 참전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종전 후 양국관계는 단절되었다.

베트남이 다시 한국을 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이 문호를 개방하고 양국간 경제교류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경제교류로 베트남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92년 두 나라가 수교한 후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는 등 교류 폭이 차츰 넓어졌다. 이에 힘입어 한국의 드라마가 베트남의 공중파 방송에 진출한다.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의 가정에 소개되고 기업들이 다투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대다수 국민은 처음으로 한국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국민은 70, 80년대를 지나면서 통일과 독립이라는 명분 속에 가난을 참아왔다. 그런데 자신들과는 반대편에 서 있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하던 나라가 그 사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편승해 부유해진 현실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 국민은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다른 한편 깊은 상실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과거 자신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해방시킨 남부 베트남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나라였다. 그런 한국이 뜻밖에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오히려 베트남이 한국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 공산당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들의 고도성장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개방의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래서 저녁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한국 드라마 전후에 방송하는 국제뉴스의 한국 관련 소식은 대부분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폭력시위·파업 등으로 채워졌다. 시내 한복판에서 돌멩이·화염병이 날아다니거나 피를 흘리는 장면, 아이들로 북적대는 고아원 장면들이 방영된다. 베트남 당국은 경제지상주의를 추구하는 한국은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며 자녀를 고아원에 내맡기는 메마른 사회임을 강조하였다. 이 때문에 베트남인은 한국을 베트남과는 이질적 요소가 많은 사회로 인식하였다.

물론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 특히 경제성장 부분이 베트남에 많이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데도 한국 상품은 베트남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와 베트남인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는지는 별개 문제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베트남 시청자들은 대부분 화려하고 가벼운 트렌드를 좇는 청소년층이다. 반면, 지식층은 삶의 고뇌와 철학이 담겼다는 이유로 중국 드라마를 선호하는 편이다. 또 98, 99년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베트남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결국 베트남 방송국은 한국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최소 3개월 후에나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베트남 ‘韓流 열풍’, 거품으로 끝날라
한국은 베트남에 투자한 국가 중 노사분규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올 초에는 호치민시 인근 공장에서 한국인 관리자가 베트남인 수위를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며 그 과정이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다. 또 지난 8월에는 하노이 시내에서 베트남인이 택시를 몰고 도망치는 한국인을 오토바이로 쫓는 일대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몇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분노한 수백 명의 하노이 시민이 한국인이 들어간 호텔 앞에서 즉각 이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한밤중까지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 역시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러한 마찰의 근원에는 한국이 베트남보다 부유하다는 우월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부유함이 곧 우월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인은 이런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한국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며 적어도 한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트란 덕 룽(Tran Duc Luong) 베트남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는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 속에 살아오면서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다는 실리를 얻는 게 낫다는 약자로서 체득한 본능일 뿐이다. 대부분의 베트남인은 한국이 마땅히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과거사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정식 사과는 이들의 상한 감정을 상당 부분 치유해 주었다.

우리는 흔히 과거사에 대한 성찰 없이 물건만 팔아먹는 데 급급하다고 일본을 비난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도 일본 같은 약삭빠른 상혼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한류를 이용해 한국 상권을 형성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불행한 과거로 인한 베트남인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이들의 상실감을 이해하며 앞으로의 개방과 경제성장에 상호 도움이 되는, 공동번영이라는 큰 맥락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은 잠재적 역량이 대단히 큰 나라기에 더욱 그렇다.



주간동아 2001.09.20 302호 (p60~61)

  • < 이강우/ 하노이 통신원 > kwlee@wide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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