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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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면 다 용서한다?

하리수에 대한 유례없는 관대함의 정체… ‘제도적 인정’ 뒤따라야

  • < 전원경/ 자유기고가 > winniejeon@yahoo.co.kr

    입력2005-01-07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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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면 다 용서한다?
    긴 머리의 여자가 매력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 목젖이 꿈틀 움직인다. 그리고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가 화면 위로 흐른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이 TV 광고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인 하리수를 모델로 내세운 한 화장품 회사의 광고다. 이 광고가 방송 전파를 탄 지 불과 두세 달 만에 하리수는 속된 말로 엄청나게 ‘떴다’. 신문과 잡지는 물론이고 뉴스, 토크쇼, 영화, 음반,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등 모든 언론매체들이 흥분한 어조로 하리수를 다루었다. 심지어 지난 6월19일에는 같은 심야시간대에 방송하는 두 토크쇼가 동시에 하리수를 출연시키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하리수의 등장 자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반응이다. 하리수에게는 성전환자에게 지금껏 따라다닌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10대를 주축으로 한 팬들은 ‘예쁜 하리수 언니’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하리수 역시 성전환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려고 한 것에 비해, 하리수는 오히려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로 삼고 있다.

    최근 네티즌들이 하리수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게 보이는 반응도 유례없이 관대하다. 동아일보 6월29일자 보도에 따르면, 2만3008명이 대답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54.1%의 응답자가 성전환자의 연예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1만2419명의 네티즌 중 66.7%가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이텔 이용자들은 ‘올 여름 해변을 같이 거닐고 싶은 연예인’을 꼽는 설문에 톱스타 이영애 등을 제치고 하리수를 1위로 택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에도 13개의 하리수 팬클럽이 개설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또는 성전환자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적어도 하리수 한 사람만 놓고 보면 그런 듯도 하다. 하리수가 가장 먼저 등장한 매체는 화장품 광고였다. 광고는 자주 사회적 이슈를 검증하는 잣대가 된다. ‘여자보다 예쁜 여자’를 광고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한 보수성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결론은 어딘지 명쾌하지 않다. 쉽게 떠오르는 반론은 ‘만약 하리수가 예쁘지 않았다면, 그래도 대중이 그녀를 환영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한 트랜스젠더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몇 가지의 글은 이러한 의구심을 더욱 부채질한다. “하리수 현상은 예쁘면 다 용서하는 방송의 남성중심주의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하리수 현상은)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자각인가, 착각인가.”



    예쁘면 다 용서한다?
    문화평론가 이성욱씨는 “하리수 현상은 기존 세대에 대한 신세대의 조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리수에 대한 관심은 새롭고 기이하고 이상한 것들에 열광하는 신세대의 한 성향을 보여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야오이’라는 동성애 만화에 대한 10대들의 선호 경향도 하리수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0대들은 만화 속에 묘사한 동성애, 그 중에서도 지극히 여성스러운 남자 주인공에 대해 일말의 환상을 갖는다. 그들 앞에 나타난 하리수는 만화 주인공의 ‘현실화한 환상’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그녀는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예쁜데다가 완벽한 몸매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10대들이 이 현실화한 만화 주인공에 대해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론매체 역시 이러한 점을 부추긴다. 특히 방송은 하리수의 등장으로 ‘제3의 성’에 대해 열린 시각을 보여주기보다는 경쟁적으로 그녀의 상품성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열중해 왔다.

    하리수가 출연한 토크쇼에는 으레 이런 질문들이 등장했다. “남자와 여자 중 어떤 쪽과 연애하나요?”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이처럼 방송은 ‘연예인으로 데뷔하면서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했다’는 성전환자의 고뇌를 아예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방송의 태도는 성전환자에 대한 편견만 심어줄 뿐,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유도하지 못한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반문한다. “모든 성전환자가 하리수처럼 미모를 갖춘 것은 아니다. 남자처럼 보이는 성전환자가 방송에 등장했다 해도 대중의 반응이 지금처럼 환영 일색이었을까?” 이씨는 “하리수 역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한 후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 사회는 하리수의 등장으로 인해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걷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정서적 차원이 아닌 제도적 인정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적 소수자들의 위치는 음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전환자들의 호적 정정 신청은 여전히 기각되고 있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동성애 또는 양성애자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커밍아웃’하는 순간, 직장이나 결혼 등 일반인이 밟아가는 인생의 관문들을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

    대중이 하리수에 대해 들떠 있는 동안 인터넷의 동성애 사이트들은 예기치 못한 철퇴를 맞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7월부터 실시한 ‘인터넷 내용 등급제’에 따라 몇몇 동성애 사이트를 ‘퇴폐 2등급’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판정의 이유였다. 성전환자가 인기인이 되었음에도 기성세대가 받아들이는 동성애는 여전히 ‘퇴폐’다. 바로 이것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이다.

    하리수는 우리 사회에 ‘성 정체성에 대한 관용’이라는 꽃씨를 물고 온 제비 한 마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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