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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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한강’을 보고 싶다

경제적 이유 볼품없는 거더교 투성이… “단순통행 이외의 부가가치 생각해야”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입력2005-02-16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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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한강’을 보고 싶다
    한 건축가는 “한강의 다리들은 쥐라기 공룡들 같다”고 말했다.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된 공룡처럼 오늘날 서울 한강의 다리들은 커다란 덩치만 가진 흉물 덩어리가 됐다는 비유다.

    김포공항에서 내린 외국 관광객들이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굵은 근육질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한강이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도심을 굽이굽이 가로지르면서 그 넓이와 길이로 인간과 문명을 압도하는 한강 같은 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강은 그 폭이 파리 센강과 런던 템스강의 열 배가 넘는다. 한강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역동성만큼이나 꿈틀대면서 오늘의 한국을 웅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에 시선이 이르면 저절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강의 숨결을 턱턱 막고 있는 무수한 교각들, 단조로움을 벗어나 조악하기까지 한 다리들의 모습은 관광자원으로서 한강이 갖춘 매력을 송두리째 앗아가기 일쑤다. 강은 다리에 이르러 갑자기, 제대로 면도하지 못한 꺼칠한 모습이 된다.

    최근에 만들어졌거나 만들고 있는 김포-방화-가양-서강대교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점점 시내로 들어오면서 만나게 되는 행주-성산-양화-마포-원효-한강-동작-한남-영동대교 등의 모습은 오히려 강을 해치는 파괴자의 모습에 가깝다. 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저 철근과 콘크리트의 거대한 배합물로서의 실용성만 극대화된 모습이다.

    그리하여 다리들은 시민들의 피곤한 일상을 싣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연결통로의 기능만 할 따름이다. 그곳에서는 개발 독재시대 ‘압축 성장’의 출혈과 자연을 이겨보려는 인간의 욕심만 느껴질 뿐, 자연과 더불어 한 몸이 되어 살아가려는 미적 승화는 찾기 어렵다. 우리의 다리들에는 ‘우리’와 ‘세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 한강 다리들이 관리들의 눈에도 답답하게 보였을까. 서울시는 지난 2월18일 기능 위주로 건설된 한강 다리의 미관을 살리기 위해 모든 다리에 특성에 맞는 상징 조형물과 경관 조명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5월 중 현상 공모를 통해 현재 건설중인 광진교를 포함한 18개 다리(올림픽 대교 제외)에 대한 조형물 설치 기본구상을 확정한다는 것. 88m 높이의 기둥 4개로 이뤄진 올림픽대교 주탑에는 88올림픽을 기념하는 횃불 조형물 설치 공사가 이미 진행중이다.

    ‘꿈꾸는 한강’을 보고 싶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의 유명한 다리에는 대부분 상징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야간에도 멋진 관광 명물이 되고 있다”며 “천혜의 수경 공간인 한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리를 멋지게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올해 안에 동호-동작-성산대교 등 세 곳의 조형물 조성이 착공되고 매년 조형물 설치교량이 서너 군데씩 늘어나게 된다. 또한 한강 다리의 야경 효과를 위해 성수-한강-청담대교 등 세 곳에만 있는 야간 조명시설도 전체 다리로 넓힌다는 것이 서울시의 방침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한강 다리들이 살아나는 것일까. 조형물과 조명만으로 다리들이 갑자기 관광명소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일까. ‘밤의 화장’을 벗는 대낮이 되어 속살이 드러나게 되거나, 현대적 조형물이 근대적 다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꼴사나운 모습이 더 강조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좀더 적극적인 리모델링을 할 수 없다. 다리를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지 않는 한 구조 역학상의 안전 문제 때문에 리모델링할 수 없는 것. 따라서 다리가 완전히 노후해져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 우리와 한강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그러나 최근 한남-마포-행주대교와 광진교 신축의 예를 보면 서울시가 이런 의지나 제대로 가졌는지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특히 서울의 관문 노릇을 하는 한남대교마저 그저그런 다리의 하나로 만드는 행정 당국의 근시안적 시각과 무성의는 거의 절망적 수준이다.

    이들 다리는 하나같이 기존 거더교의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강에 무수히 많은 교각을 세우고 그 위의 철골 대들보(거더)에 상판을 얹는 거더교는 오로지 초기 투자비용과 건립 비용이 적다는 경제적 이유 하나 때문에 선호된다. 거기에 한강의 물살이 빠르지 않다는 점도 거더교 선택의 명분이 된다. 물살이 빠른 바다 등에서는 교각을 세우는 공정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그러나 부가가치 차원에서 보자면 거더교를 답습해서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말 우매한 짓이다.

    중앙대 장경호 교수(토목공학)는 “관공서가 다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항상 저가만을 고집하니까 거더교 외에는 다른 다리가 나올 수 없게 된다”며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등의 부가가치를 생각한다면 거더교가 아닌 사장교나 현수교를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본이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를 잇는 대형 현수교와 사장교(모두 12개가 있다)로 일본 토목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세계적으로 드높인 것처럼, 우리도 우리 기술을 알릴 수 있는 상징적 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곧 아름다운 다리를 만드는 것이 문화적 차원만이 아니라, 교량 기술 수출을 통해 ‘돈’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꿈꾸는 한강’을 보고 싶다
    물론 한강이 ‘거더교 투성이’가 된 것은 군사적 이유도 있다. 전쟁 등으로 다리가 파괴됐을 때 지연장(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이 길면 빠른 복구가 어렵기 때문에 지연장이 짧은 거더교를 선택한 것. 이러한 방침은 최근까지도 한강 다리 설계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전쟁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 지금도 이런 이유들을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세대 김상효 교수(토목공학)는 “감사원에서 감사를 할 때 지나치게 경제성에 집착하거나 군사적 이유를 내세우는 것 등이 한강 전체의 미관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된다”며 “싼 것은 결국 싼 값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런던의 타워 브리지,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브리지, 스페인의 바르쿠에타 브리지, 오스트리아의 야라 리버 브리지, 시드니의 포트 브리지, 일본의 아카시 카이교나 나루토 대교…. 모두 그 미학성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면서 관광 명소가 된 다리들이다. 그러나 이런 다리들이 자체의 미학성만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이들 다리는 모두 도시의 일부분으로 기능한다. 도시 전체의 풍경과 환경에서 격리된 채 다리만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 이쪽과 저쪽을 하나의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면서 유기적인 ‘전체’를 만든다.

    이런 점에서 한강의 다리들은 강남과 강북을 더욱 단절시킬 따름이다. 건축가 김석철씨는 “한강의 다리는 두 강안을 하나의 공동체로 잇는다기보다 더욱 먼 이웃으로 분할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미래에의 기획’의 부재에서 찾았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니 시드니 올림픽 축제가 근사하게 벌어진 시드니 포트 브리지 같은 다리, 뉴 밀레니엄 맞이 행사를 벌일 만한 다리 하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리에 조형물이나 장식하고 전구만 요란하게 매달아 놓았다고 해서 그 다리가 하루아침에 관광 명소가 된다고 생각하는 단견으로는 문화정책이나 관광정책을 이끌 수 없다.

    ‘다리를 살리자, 한강을 살리자’는 구호는 결국 서울특별시 전체를 관할하는 미래적 도시계획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학자나 예술가, 철학자 등 전문가 집단의 참여가 배제된 채 건축가와 토목기술자, 관리 몇 명이 모여 다리 건립 결정을 뚝딱 해치우는 지금 방식으로는 결코 왜곡된 한강의 흐름을 바로 세울 수 없다. ‘한반도의 세기’가 바로 한강에서 출발해야 하기에 한강의 다리들을 살리는 일은 너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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