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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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권은 전혀 달랐다”

민주당 체제 정비 성공적 ‘연착륙’ … 리더십 안정, 大權 후보 가능성 높여

  • 입력2005-03-21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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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권은 전혀 달랐다”
    울진(경북 울진군)은 술렁거렸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그들은 불과 16표 차이로 ‘김대중당 들러리’ 김중권을 낙마시켰다. 그런데 그가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더니 이번에는 대표최고위원이 되어 총선 이후 처음 고향에 돌아왔다. 금의환향이라고나 할까. ‘(선거에) 떨어질수록 더 높이 올라가는’ 김중권 대표의 바람으로 인해 울진군민들에게는 후포 앞바다의 거센 파도와 같은 울렁임이 이는 듯했다.

    “저는 한나라당 군의원인데 만약 김대표가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저부터 탈당할 겁니다.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김중권 대표가 (후보가) 되면 김중권, 노무현 장관이 되면 노무현을 찍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영남 출신이라서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대통령으로) 낫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에 울산 시의원들이 단체로 이곳에 왔는데 그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울진군의회 부의장 정모씨)

    “처음에는 김대표를 ‘김대중당’의 들러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고 대다수가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김대표가 정말 민주당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거죠. 대권 후보만 된다면 당에 상관없이 김대표를 지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울진자치신문 박성조 대표)

    김대표의 고향 방문 첫째날인 2월9일 밤 9시. 자신의 출신고(후포고)가 있는 후포 어업인복지회관 강당에서는 약 400여석의 자리가 모자라 일부 주민들이 뒤에 서있는 가운데 김대표와 어민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여러분이 김중권이를 큰 인물 큰 정치인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한다면 커다란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영남과 호남의 남남협력, 국민협력 없이는 새로운 남북시대를 만들 수 없다”며 “저의 뒤에는 후포와 울진이 있고, 저를 바라보고 기대를 갖고 있는 대구와 경북, 영남이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약 1000여명의 주민들이 운집한 이튿날 울진군 청소년수련관의 국정강연회에서는 “집권여당 대표로서 대구 경북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저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워달라”고 호소했다.

    ‘민생 투어’를 겸한 2박3일(2월9∼11일)에 걸친 김대표의 고향 방문 목적은 원래 선영 참배. 지난 총선 이후 한번도 찾지 못한 부모님 묘소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표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김성호 의원은 “정치인이 큰 뜻을 도모하기 전에 우선 고향 선영부터 찾는 법 아니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중권은 전혀 달랐다”
    사실 김중권 대표 취임 초기만 해도 민주당 내에는 “과연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가득 찬 눈초리가 많았다. 전임 서영훈 대표와 마찬가지로 김대표도 당내 착근에 성공하지 못한 채 ‘1회용’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대표 취임 두 달이 채 안 된 지금, 당 내에서 김대표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빨리 성공적으로 당의 체제를 일사분란하게 정비하고, 대야 관계에서 패퇴만 거듭하던 수비 위치에서 벗어나 야당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공격 위치로 전환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많은 당내 인사들의 소감이다.

    아직까지도 야당 체질에 젖은 민주당 당료들에게 구여 출신 ‘김중권식 리더십’은 분명 생소하고 낯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실무적 효율성은 이제 시험기를 거쳐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아울러 김대표의 대권 후보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현상은 한나라당에서 먼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대구 출신 백승홍 의원(중구)을 불러 ‘적극적인 지역 현안 해결’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구-경북 지역의 민심에 ‘김중권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 이의 저지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16~17쪽 기사 참조).

    한나라당에서는 김중권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될 경우 탈당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는 인사들도 나오고 있다(14~15쪽 기사 참조). 대구 지역 의원들이 9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뒤 내달 2일 ‘대구경제현안 간담회’를 갖기로 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특히 이날 모임에는 이회창 총재가 이례적으로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해 김대표의 대구 출신 민주당 측근 인사는 “지금 대구의 민심 기류가 ‘치와뿌라’(집어치워라)에서 ‘우야겠노’(어쩌겠나)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과 김대표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던 것이 지난 연말의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영남 출신인 김대표가 힘을 얻어가는 모습에 이를 인정해야지 어떻게 하겠느냐는 쪽으로 슬그머니 바뀌고 있다는 것.

    “김중권은 전혀 달랐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최병렬 부총재를 수석 부총재로 내세워 김대표를 전담해 맞상대시키려고 한 것도 대 김대표 전략의 일환이다. 이총재를 ‘대통령급’으로 격상시키고 대신 김대표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정무수석 경험이 있는 최부총재로 하여금 김대표를 맡게 한다는 복안이었지만, 최부총재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강하게 코너에 몰아넣으면서 아연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김대표의 ‘파워’는 2월1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기자회견장에는 동교동계의 새 중심인 한화갑 최고위원은 물론 김대표의 최대 라이벌인 이인제 최고위원까지 모든 최고위원이 100% 배석했다. 기껏해야 대변인이나 사무총장만을 배석시킬 수 있었던 전임 서영훈 대표와의 엄청난 위상 차이에 당 내 인사들도 놀랐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야당 총재 시절 기자회견에서도 이같은 모습을 본 적이 드물다”며 “김대표의 장악력이 놀랍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김대표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와 비교하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오부치 전 총리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모든 여건이 최악이었다. 지지율은 낮았고 경제도 엉망이었다. 국민들도 오부치를 ‘식은 피자’라고 부르며 ‘몇개월이나 갈까’ 별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오부치는 이런 예상을 깨고 자유당과의 연정을 이뤄내고 경기회복의 가닥을 잡는 등 정국을 솜씨있게 이끌어 높은 인기를 누렸다. 김대표는 그런 점에서 오부치 전 총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같은 ‘김중권 파워’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김대중 대통령의 전폭적인 힘 실어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대통령은 1월20일 민주당 창당 1주년 기념식을 위해 민주당을 직접 방문한 자리에서 “김중권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잘해가야…”로 연설을 시작해 “김중권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잘해주기 바란다”로 끝맺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당이 어려울 때 ‘당은 잘못하고 있지만 나는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예를 별로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해 김대표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일 정도의 무게를 실어주었던 것.

    그러나 김대통령의 적극 지원만으로 김대표 체제의 연착륙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와 관련한 김대표의 한 측근 의원의 설명. “구 여권의 안기부 자금 유용 사건과 관련된 공세를 어디까지 밀고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나간 것은 아닌지, 언제 멈추어야 할지, 역풍은 없을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김대표는 전혀 달랐다. 별로 놀라지도 않고, 떠들썩하지도 않게 그냥 조용히 계속 갔다. 역시 여당 운영의 전문가답게 정국의 맥을 잘 짚는 것 같다.”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21세기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길승흠 전 의원은 “회의 자리에서 보면 김대표는 업무 사항 하나하나마다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며 “소홀하게 대충 넘기는 적이 없다”고 말한다. 판사 출신으로서의 꼼꼼함에 다년간 여당 핵심인사로서의 경험이 보태져 당 장악의 노하우를 취득하고 있다는 것이 길위원장의 촌평이다.

    김대표는 2월10일 울진 국정강연회에서도 정부의 4대 개혁과 대북정책 등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쉬운 용어와 구체적인 수치로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런 모습은 주어진 원고를 의례적으로 읽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기존 정치인들과 크게 차별되는 것.

    그러나 이런 김대표의 업무 수행력 역시 당내 동교동계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 없이는 빛을 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김대표와 동교동 신주류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화갑 최고위원과의 동맹 관계도 저절로 형성된 것은 아니고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크고 작은 사안들의 ‘협력 관계’가 부단히 이어져온 결과인 것이다(18쪽 기사 참조).

    그렇다면 김대표 체제의 연착륙이 과연 대권 후보로의 연착륙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까. 김대표의 기용 자체가 김대통령의 차기 대권 구상과 연결돼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고 그에게 유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김대표에게 기울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다(14∼15쪽 기사 참조). 따라서 이에 대한 정답은 ‘아직은 모른다’이다.

    분명한 것은 “김대표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졌다”(동교동 한 중진의원)는 점이다. 1차 관문은 민주당 체제 정비로 이미 넘어섰고, 아직 4대 개혁의 완수와 생산적 복지의 정착이라는 2차 관문이 남아 있다. 물론 정권 차원의 이 목표가 오로지 그의 몫은 아니지만 김대통령은 김대표가 당 차원에서 이를 얼마나 실행해낼지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김대표가 누누이 “지금으로서는 4대 개혁을 완수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이런 배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김대표에게는 새로운 리더십의 검증이 아직 진행중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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