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워싱턴 사교계 ‘화려한 파티’ 끝나나

부시 당선자 내외 서민 취향 … 줄무늬 짧은 치마 정장 새 스타일로

  • 입력2005-03-09 13: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워싱턴 사교계 ‘화려한 파티’ 끝나나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 워싱턴 사교계 조지타운의 여걸이 바뀌고, 조지타운의 여걸이 변하면 워싱턴이 변한다. 백악관이 공식 권력의 정점이라면, 워싱턴 시내의 사교가인 조지타운은 비공식 권력의 심장부요, 정치의 뒷무대이며, 워싱턴의 이면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행한 일요판 스타일 섹션 머릿기사로 ‘누가 부시 시대의 최고 호스티스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전 민주당의 재정 담당 위원장이었던 베스 다저렛츠라는 여인을 사교계의 ‘물러가는 여주인’으로, 공화당 모금가인 금발의 줄리 핀리를 ‘새 여주인’으로 지목했다.

    새 퍼스트 레이디가 될 로라 부시의 줄무늬 짧은 치마 정장은 이미 워싱턴의 새 스타일로 떠오르고 있고, 힐러리 클린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핑크색 블라우스 와 검정색 바지 정장은 물러나는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1993년 클린턴 부부는 낙관론과 지성으로 무장하고 워싱턴에 발을 디뎠다. 정력 그 자체였다. 백악관 열쇠를 거머쥔 클린턴 부부는 워싱턴의 밤과 파티장을 주무르는 조지타운의 주류 사회를 벼르고 별렀다.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클린턴 부부를 들볶은 갖가지 스캔들의 원천지로 지목된 곳이 워싱턴의 조지타운 사람들이었다.

    클린턴은 백악관의 주인이 되고 난 뒤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정치 기사에도 분개했다. 정책 결정의 배경을 써대도 모두 자신에 대한 개인 비판으로 여겼다. 클린턴을 취재하는 언론들은 대통령의 이런 반응을 클린턴의 ‘성질 탓’으로 돌렸다. 언론이 조지타운은 아니었지만 클린턴에게는 한통속처럼 비칠 뿐이었다



    워싱턴 사교계 ‘화려한 파티’ 끝나나
    어쨌든 클린턴 부부는 조지타운이 우러러보는 백악관에서 8년을 버텼고, 두 주일 후면 조지타운에 마련한 285만 달러짜리 새집으로 들어간다. 클린턴의 분신 같은 버넌 조던을 비롯해 공화당의 정치 헌금 모금가인 웨인 버만, 전 재무장관 니컬러스 브래디 등이 이제는 모두 클린턴 부부의 이웃이 되었다.

    퇴임 후에도 그대로 워싱턴에 남아 있기는 1921년 윌슨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상원의원이 된 힐러리가 조지타운의 새집을 살롱으로 활용하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이제는 8년 전과 달리 조지타운의 주류로 편입되는 셈이다.

    새 공화당 정권이 탄생하면서 워싱턴에 인접한 버지니아주의 전원 주택지 매클레인이 조지타운의 전통적인 위상을 일부 떼어갔다.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 등이 모여 사는 곳이다. 워싱턴의 지역 언론이 조지타운과 매클레인을 사진으로 비교하면서 호들갑을 떤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사교계의 새 여주인으로 떠오른 줄리 핀리, AOL의 창업자 짐 킴지도 모두 매클레인 사람들이다. 이래저래 조지타운에 이어 명소로 자리잡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워싱턴 사교계의 터줏대감 자리는 좀체 변하지 않는다. 버넌 조던 부부, NBC 기자인 안드레아 미첼,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 ‘워싱턴 포스트’ 회장 캐서린 그레이엄 등이 워싱턴의 이면사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다. 미스 아메리카 출신으로 한때 주지사 부인이기도 했던 필리스 조지, 버피 카프릿츠 등이 정치와 파티의 가교 노릇을 하는 사교계의 거물들이다.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있기 전 리츠 칼튼 호텔의 자키 클럽에서 예비 취임식 파티를 여는 것도 주로 공화당계 사람들이 버티는 조지타운 사교계의 전통 가운데 하나다. 클린턴이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에는 민주당 지지자인 워런 비티와 잭 니컬슨 등이 파티를 주관하기도 했다.

    누가 사교계의 여왕으로 등극하는가, 어떤 드레스가 유행할 것인가, 새 대통령 가족의 휴양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워싱턴 사교계 말 잔치의 주된 메뉴들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궁금한 것은 어디서 돈이 나올 것인지다.

    워싱턴 인근 북버지니아주는 제2의 실리콘 밸리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워싱턴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정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컴퓨터 및 하이테크 직종 종사자들이 더 많아졌다. 돈 줄기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얼마 전부터 워싱턴 사람들의 키재기 기준이 바뀌고 있다. 누가 더 (정치적으로) 세고 높은지보다 누가 더 돈이 많은지가 흥미로운 쑥덕공론이 되었다.

    워싱턴 신참인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워싱턴의 취향과 입맛을 바꾸면서 새바람을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워싱턴에 들를 때마다 부시는 워싱턴 시내의 고풍스럽고 평범한 매디슨 호텔에 짐을 푼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 애용했던 호텔이다. 지난 연말 워싱턴에 왔을 때는 부인 로라와 함께 베이징 오리요리 전문 식당을 찾았다. 역시 부시 전 대통령 때부터 가족 회식으로 자주 이용했던 허름한 레스토랑이다.

    부시 일가족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온 줄리 핀리 같은 이들은 부시 집안이 화려한 파티 같은 것은 즐기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텍사스풍인 만큼 화려한 검정색 정장보다야 부츠와 바비큐가 어울릴 법하다. 백악관은 클린턴 시절보다 훨씬 점잖아질 것이 틀림없다. 청바지 차림의 백악관 스태프들 모습을 보기는 힘들어지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민주당 백악관 스태프들의 청바지 차림은 진작에 조지타운 사교계의 빼놓을 수 없는 안줏감이었다.

    힐러리의 화려함에 비해 새 대통령 부인인 로라 부시의 정장 패션은 이미 화제가 되고 있다. 패션 전문가들은 정계 여성들의 금기인 줄무늬 옷을 천연덕스럽게 입고 나타나는 로라 부시의 옷차림을 안타까워한다. 눈에 띄는 것을 즐겼던 힐러리에 비해 다소곳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옷차림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입은 옷은 아니다. 취임식 때 입을 옷을 만들고 있는 댈러스 출신 의상 전문가의 손을 거친 옷이다. 댈러스와 조지타운의 차이다. 재키 케네디의 맵시, 매력풍의 낸시 레이건, 바버라 부시의 편안함, 야망 그 자체인 힐러리의 분위기…. 조지타운이 로라 부시를 어떻게 연출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워싱턴의 여성’들은 5cm 높이의 로 힐을 좋아한다. 권력과 힘과 명예와 위신을 나타내는 이른바 사브리나 스타일이다. 대통령 부인, 각료 부인들, 여성 의원과 의원 부인들 거의 예외가 없다. 이 5cm의 정장형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해 뜨기 전에 신고 종일토록 돌아다니다가 밤 11시의 정치 헌금 모금 파티에서 일과를 끝내는 ‘워싱턴의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건강형 신발이 없는 탓이다.

    워싱턴 정계 언저리 여자들의 독특한 옷차림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끝에 워싱턴의 한 패션 전문가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힘을 과시하는 일상용품이긴 하지만, 이너 서클 멤버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무용지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