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4

..

‘돌하루방’ 최명훈 “나도 타이틀 사냥꾼”

LG정유배서 ‘반상의 철녀’ 루이 잡고 생애 첫 우승 … 한국 바둑계 지각 변동 신호탄

  • 입력2005-06-10 11: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돌하루방’ 최명훈 “나도 타이틀 사냥꾼”
    “루 이 9단, 마지막입니다. 하나, 둘, 셋….” 착수를 재촉하는 기록계의 다급한 초읽기가 다시 시작되자 루이 나이웨이(芮乃偉) 국수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더니 헝클어진 앞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한 얕은 한숨을 폭 쉬고는 “…여덟, 아홉…”을 부르고 있는 기록계의 카운트를 저지시킴으로써 항복 의사를 표시한다. 12월2일 오후 8시40분. 제주 함덕해수욕장 선샤인호텔에서 벌어진 제5기 LG정유배 도전4국에서 최명훈(25) 7단이 ‘반상 아마조네스의 여전사’ 루이 국수를 3대1로 제압하고 생애 첫 타이틀을 따는 순간이다.

    최명훈의 이번 타이틀 획득은 국내 바둑계로선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89년 양재호 9단이 동양증권배를 우승한 이래 무려 11년 만에 ‘비4인방’ 기사가 타이틀 홀더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둑계의 모든 타이틀은 ‘반상 4인방’으로 일컬어지는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9단이 주거니 받거니 독식해 왔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승부세계는 철저한 피라미드형 구조를 이룬다. 꼭지점에 선 한두명의 기사가 모든 전리품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현대기전이 출범한 이래 한국바둑 50여년 동안 200명을 웃도는 기사가 등장했지만 이 가운데 단 한 차례라도 타이틀을 허리에 둘러본 기사는 지금껏 10여명 선에 불과하다. 아무리 기재가 뛰어나도 시대를 잘못 만나 이창호 같은 불세출의 천재와 동시대에 활약하는 기사는 속된 말로 ‘왕재수’다. 그런 호랑이(이창호)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버티고 선 시기에 당당히 타이틀 전선의 일각을 베어물었다는 사실,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최명훈의 타이틀 등극을 신호탄으로 사흘 뒤인 12월5일 ‘포스트 이창호’로 각광받던 이세돌 3단이 류재형 4단을 3대 0으로 물리치고 박카스배 천원전을 차지했다. 17세에 불과한 이세돌 3단은 현재 진행중인 n016배 배달왕기전에서도 유창혁 9단과 2대 2로 선전하며 최종5국을 남기고 있어 다관왕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메긴 상태.

    새천년 들어 신예들의 용솟음치는 분출에 놀랐음인가. 아직 두판을 남겨 두고 있기는 하나 부동의 이창호 9단도 KBS바둑왕전 첫판을 ‘괴동’ 목진석 5단에게 내주고 막판에 몰렸다. 20년 조치훈 천하로 이어지던 일본바둑이 ‘사상 최약체 도전자’라던 조선진 9단의 혼인보(本因坊) 반란을 시발점으로 하루아침에 세대교체를 이루었듯, 지금 한국 바둑도 최명훈의 타이틀 획득이 기폭제가 되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돌입하고 있다.



    또 하나. 최명훈이 국내 랭킹1위 기전인 LG정유배 타이틀전에서 ‘용병 여전사’ 루이 9단을 넉아웃시킨 것은 그동안 망신살이 뻗친 한국 남성기사들의 체면치레는 물론 자신감을 북돋워준 의미가 있다. 아무리 루이가 세계 최강의 여류기사라지만 국내 정착 1년도 채 안 돼 국보 기사라던 이창호가 연거푸 수모를 당하고 조훈현이 한국바둑 혼의 상징인 ‘국수’ 타이틀을 빼앗기는 등 세계 최강국 이미지가 말이 아니었던 현실을 감안하면 누군가 고추장 바둑의 매운 맛을 단단히 보여줄 필요가 절박했던 시점이었다. 96년 명인전과 기성전 양대 도전무대에 등장, 무적함대 이창호와 시소접전을 벌여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동갑친구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한때 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했던 최명훈. 그토록 벼르던 이창호를 상대로 소원하던 타이틀을 딴 것은 아니지만 그의 6전7기는, 요즘 한국바둑계에 더할 수 없는 기폭제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