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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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빠진 대화 문명의 위험성 경고

  • 입력2005-05-17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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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공생충’(웅진닷컴)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10월15일), 기자들과 만난 무라카미 류는 솔직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대부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독자사인회에서 만난 한국인의 모습-피어싱이라든가 패션 등-이 일본이랑 거의 비슷했다”는 우회적인 대답을 했다.

    사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원조교제’(러브 앤 팝) ‘사도 마조히즘’(토파즈) ‘유아학대’(라인) 등 일본사회의 병폐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가 줄곧 마약 섹스 폭력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일본의 선정적인 풍속을 소개해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이런 소재들은 현대인들에게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신작 ‘공생충’은 상반된 두 요소-무한대로 소통이 가능한(혹은 가능하다고 믿는) 인터넷과 외부접촉을 차단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오타쿠보다 좀더 자폐적인 상태의 젊은이들을 가리킴)-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공생충’(파괴와 살인, 살육과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멸종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된 우에하라는 어느날 밤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야구 배트로 내리친 후 집을 뛰쳐나온다. 하지만 이메일로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인터바이오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우에하라는 그 집단을 숲속으로 유인해 독가스를 뿌린다.

    그러나 이 소설에 묘사되는 히키코모리의 문제점이나 인터넷의 폭력성만 기억한다면 작품을 반쯤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작품후기에서 “혼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은 이 사회의 거짓 희망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낡아빠진 희망이나 틀에 박힌 희망에 의지하여 사는 ‘멀쩡한’ 사람들보다 차라리 ‘히키코모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지금 그는 문명이 저질러놓은 새로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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