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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민주당의 앞날

2기 민주호, ‘풍랑’ 앞에 서다

‘강한 여당’ 진로에 암초 투성이…전당대회 불구, 당 쇄신 미지수

2기 민주호, ‘풍랑’ 앞에 서다

2기 민주호, ‘풍랑’ 앞에 서다
민주당이 집권 2기의 새 지도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집권 여당 사상 처음으로 직접선거에 의한 경선으로 최고위원을 선출하고, 경선 과정에서 당의 전면적 쇄신과 개혁 요구가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전당대회라는 축제를 치렀지만 샴페인을 터뜨릴 분위기는 아니다.

지금 ‘민주호’는 태풍이 몰아치는 암초 많은 바다에서 이리저리 요동치는 모습이다. 윤철상 의원의 ‘총선 실사 개입 의혹’ 발언의 파장으로 야당은 민주당 해체까지 주장했다. 대검 공안부의 총선 선거사범 수사 상황을 정리한 내부 문건이 밖으로 유출된 것은 여권의 총체적인 국정 장악력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비친다. 한빛은행 불법 거액 대출사건도 경위야 어쨌건 민주당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고위원 경선에서 떨어진 김기재 의원이 9월1일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사고’까지 생겼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만저만한 망신살이 아니다.

과연 민주호는 거센 풍랑의 바다를 제대로 건널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좌초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1. 강한 여당 가능한가

김대중 대통령은 8월28일 8·7 개각 후 첫 사회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2기 정부의 중요한 점은 강력한 정부로서 맡은 바 임무를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민주당 지도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강력한 집권여당으로서 새로운 출발과 도약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정부’와 ‘강력한 여당’이 동시에 강조된 것.



김대통령은 정부와 여당이란 단어 앞에 ‘강력’이란 강력한 단어를 붙여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청와대는 ‘강력’의 뜻이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되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고 법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강조점은 아무래도 ‘끌려다니지 말라’는 쪽에 있는 듯하다. 정부든 여당이든 강력해지지 않으면 최근의 상황을 정면돌파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비친다. 민주당이 과연 ‘강한 여당’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민주당에서는 한 에어컨 설치업자가 에어컨을 설치해달라는 당의 주문을 거절한 일이 일어났다. 이유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 한 당직자는 “에어컨 장수뿐만 아니라 많은 업자가 최근 민주당의 주문을 거절하고 있다”면서 “총선 이후 그동안 밀린 빚이 100억여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밀린 돈을 받지 못한 업자들이 청와대로 진정을 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당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옥두 총장이 총선 비용을 110억원 정도 남겼다고 자랑했는데, 그 돈이 다 어디 갔다는 얘기냐”는 비판이 나온다. 단적으로 말해 회계의 투명성도 없고, 경비 지출의 원칙도 없다는 지적들이다.

어떻게 보면 ‘강한 여당’과 당 경비 지출이나 회계의 투명성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정은 전혀 다르다. 회계 원칙이 투명하지 않고서는 당내 결속이 이루어질 수 없고, 결국 결집된 힘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금(김옥두 총장)과 조직(윤철상 전 부총장)을 모두 권노갑 최고위원 계열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많은 인사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윤철상 파문’만 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동교동계 인사들이 자기 역량 이상의 자리에 있다 보니 생긴 일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정치 지형이 이상하게 짜이다 보니 측근만 되면 줄줄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이상 현상이 결국 윤철상 파문을 낳은 배경”이라고 말한다. 당내의 이같은 비판 기류는 많은 최고위원 후보들이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당 지도부 쇄신론을 강조한 것에 반영됐고,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전당대회 이후 대대적인 당직개편이 단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9월1일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이 주재한 최고위원 회의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유임된 서영훈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당직개편 문제에 대해 “일단 이대로 하고 상황변화가 있으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뜻도 그러하다”고 말했고, 이의제기 없이 그대로 확정됐다. 전당대회를 통해 당이 뭔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대부분의 의원과 대의원들의 열망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변한 게 뭐 있느냐. 그대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당내 주된 기류와 일부 동교동계 인사 및 청와대의 기류가 서로 엇박자로 나타난 것은 ‘강한 여당’에 대한 인식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 정치권의 지배적인 의견은 당이 먼저 쇄신해서 모범을 보여야 힘이 붙는다는 것이지만, 청와대와 권노갑 위원측은 당 쇄신이 야당의 요구에 밀리고 야당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대통령과 당내 인식 사이에 ‘코드’가 맞지 않고, 일정한 거리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제는 7명의 선출직 최고위원이 있기 때문에 특정 계파가 당무를 좌지우지하기는 힘들어졌다. 대의원들의 요구가 최고위원을 통해 반영될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당의 고질적이고 고착적인 권력 구조에 최고위원들이 얼마나 맞서 나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과정에 어찌 됐든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은 인사가 많기 때문이다. 당의 한 고위인사는 “김대통령이 당직개편을 하지 않은 것은 당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57.3%의 압도적인 득표율. 2위 이인제 최고위원과의 표 차가 무려 1131표(13%). 한화갑 최고위원의 위상이다. 특히 권노갑 최고위원이 이인제 최고위원을 전력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3%의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위원이 권위원의 당내 장악력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동교동의 권력 서열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한 동교동계 의원은 권위원이 ‘당의 중심에 서겠다’고 세 차례나 강조한 사실과 관련, “당의 상황은 좀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한위원은 어떻게 경선 1위가 될 수 있었을까. 언뜻 답이 필요없는 당연한 질문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한위원이 경선 1위가 되는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위원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당내의 폭넓은 지지세력덕분이고, 그 지지는 그의 온건한 개혁성과 포용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위원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 김근태 최고위원과는 ‘개혁 연대’를, 김중권 최고위원과는 ‘지역 연대’를 이뤘다. 이 모두 전국정당화와 개혁을 도모하는 김대통령의 뜻에 부합되는 노선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김중권 최고위원의 당선에 매우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한위원 또한 영남 지역에 남다른 공을 들여왔다. 그의 당선 소감의 제일성은 “강력한 민주당과 정부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한번 인연 맺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배려하는 끈끈한 인정과 누구와도 모난 각을 세우지 않는 포용력이 한위원의 부상을 자연스럽게 이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새로운 힘’으로의 추진력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그냥 그는 ‘사람 좋은 한위원’으로만 남게 되고 이것은 민주당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인제위원 진영은 이번 경선 결과를 ‘절반의 성공’ 정도로 생각한다. 비록 1위는 하지 못했지만 당내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당내 유력한 대권후보로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는 설명이다. 이위원측은 특히 이위원에게 모인 표가 정권재창출을 기대하는 당원들의 바람이 모아진 ‘대권 표’라고 강조한다.

바로 이런 상황 판단에 근거해 이위원 진영은 경선캠프를 해체하지 않고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역 의원 중심으로 이위원의 외연을 넓히는 보강 작업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비록 권고문의 지지가 있다고는 하나, 지난 대선 때의 국민신당 출신 의원들과 충청권 의원들만으로는 세 확산에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내외 상황이 이위원에게 희망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이번 경선에서도 ‘영남권 돌파’가 무위로 돌아갔다. 표 분석 결과 영남 지역에서의 그에 대한 거부 정서는 여전한 것으로 나왔다. 그의 최대 약점이다. 한화갑-김중권의 ‘동서 연대’에 따른 포위망도 그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충청권 대망론’을 언급함으로써 너무 충청권에 함몰된 모습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위원의 한 측근 의원은 “상황이 그렇게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김정일 대항마’로서는 이회창 총재보다 앞서 나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와 민주당과의 관계를 말할 때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내용은 당 지도부의 대표성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당 조직이 당 지도부의 지시로 일하기보다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독대하고 나온 사람’의 입김에 영향을 받아,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당의 지휘 시스템이 이원화돼 있는 셈이니 효율적인 당 운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당의 한 인사는 “김대통령부터 ‘편한 사람’을 불러 당무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일은 당의 공식적인 지휘체계에 맡기고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당원들이나 당료들이나 당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인지 9월1일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통령은 매월 1회 이상 최고위원회의를 직접 주재해, 당을 최고위원 중심으로 이끌 방침임을 밝혔다. 현안이 생기면 최고위원들로 팀을 짜 적극 대처하라는 팀워크 시스템도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방침만으로 본다면 소위 측근들의 말에 당무가 좌지우지되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회의에서의 견제와 균형에 의해 당이 운영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는 일부 ‘실세’가 대통령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의사대로 당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런 점에서는 민주당이 활성화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을지….







주간동아 2000.09.14 251호 (p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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