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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정치인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이번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여당대표가 야당의 정치행태를 가리켜 ‘개판’이라 부르더니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야 합작의 ‘개판정치’가 연출되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무엇에 쫓긴 듯 돌연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대폭 완화시키는 국회법 개정안의 날치기를 감행했고, 이를 육탄저지하며 극렬히 비난하던 야당은 자민련과의 이면합의설로 냄새를 풍기며 엉거주춤한 대련자세를 취했다.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나왔으나, 대통령이 과연 무엇을 유감이라 한 것인지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짜증스러운 열대야가 계속되었다. 여당은 야당시절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던, ‘문민정부의 종언’으로까지 매도했던 날치기를 저질렀고, 야당 또한 겉으로는 의분에 치를 떨며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다가도 자민련을 향해서는 능글맞은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새 밀레니엄의 여름이 이렇게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흐뭇한 미소로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며 골프를 치고 홀가분하게 외유를 떠나는 무리들이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패퇴하여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했지만 이번 날치기로 다시 원내교섭단체가 되어 정치자금, 사무실 등 이런저런 대접을 회복하게 돼 자못 흐뭇한 자민련 소속 의원들이 그들이다.

아닌게아니라 정권 획득을 거들었다고 총리, 국회부의장,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 요직을 차지하고도 모자라 여야로부터 받는 추파를 역이용하여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교섭단체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한 것은 자민련으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모두가 매한가지로 이들의 간지(奸智)에 놀아났다. 17명이 되었으니 17명만으로도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정족수를 낮춰주지 않으면 공조회복은 없다며 떼를 쓰던 자민련에게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끌려다닌 셈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며 들어줄 듯 은근히 줄을 대던 여당과 야당의 구질구질한 작태, 그리고 뒤이은 여당의 날치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최대의 이득을 본 자들은 바로 JP와 자민련이었다. 필경 자축을 했을 터이고 친지와 업계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성공했다. 선거 패배로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한 정당이 여야 관계를 이용, 법을 고쳐 교섭단체의 자격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세계적인 대망신의 역사가 쓰인 것이다.

목적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불쌍한 정치집단

그러나 이 사상 유례 없는 블랙코미디를 소수당의 성공적 곡예정치라고 부르기에는 우리 국민이 너무 처량하다. 미우나 고우나 국회의원을 뽑아놓고 이제나 저제나 제대로 된 정치의 시작을 기다렸던 유권자들의 민의는 선거 결과를 왜곡하는 날치기입법을 주도한 민주당에 의해, 그리고 오로지 정권 획득의 맥락에서 자민련에 추파를 던지다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만 한나라당에 의해 배반당했다. 그러나 정작 ‘단돈 6억원에 민주주의를 장사지낸’ 소돔과 고모라의 주역은 외유를 떠나며 득의만면 미소를 지은 JP와 자민련 의원들이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날치기 파동은 겉만 번지르르했던 우리나라 의회정치의 퇴영적인 정신파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난 까닭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료하다. 정권 획득, 그것이었다. 자민련을 잡아야 정권을 유지, 재창출 또는 획득할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을 못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반드시 포섭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민주투사든 대쪽법관이든 상관이 없었다.

이 점을 놓칠 JP가 아니었다. 이쪽으로 가는 듯 보여 저쪽이 부랴부랴 끌어당기게끔 만든 그의 노회한 전략은 성공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의회정치는 가시밭길의 수십년 역사를 거꾸로 되돌아갔다. 참담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작 이런 의회정치를 보려고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역정을 거듭했던 것인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4·19와 광주 혁명의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두렵지 않은가. 우리는 이번 여름 집권당과 야당, 그리고 자민련이 정권욕과 물욕에 눈이 멀어 저지른 정치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을 생각해서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주간동아 2000.08.10 246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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