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2000.07.06

김병현, ‘추억’을 뿌린다

  • 입력2005-07-12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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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현, ‘추억’을 뿌린다
    복고풍이 먹혀드는 이유는 개개인의 추억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TV의 옛 가요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80년대의 유행가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러나 복고풍도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설픈 아이템으로 향수를 자극하려다 조용히 막을 내리는 모습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특히, 스타킹을 치켜올리는 정도를 빼곤 야구에서 복고풍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포츠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옛날에 통하던 변화구를 들고 나와 ‘자, 복고풍이니 한번 쳐봐라!’ 이랬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지금,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라진 투구 스타일인 ‘언더핸드스로’가 살아나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태풍의 중심엔 한국인 김병현이 서있다. 그는 성균관대 2년 재학 중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한국선수 최고금액(225만 달러)에 입단 계약했다. 지난해까지 신인 티를 풀풀 내던 그는 올해 놀랄 만큼 성장해 그야말로 훨훨 날고 있다. 애리조나 승승장구의 일등공신이 김병현임은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가 사라진 투구폼인 언더핸드스로를 갖고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오버핸드스로의 투구 궤적은 사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중력이 작용하는 반대방향으로 팔을 치켜들어 던짐으로써 중력과의 전쟁을 하는 셈이다. 언더핸드스로나 사이드암스로는 어깨와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아 장수하기엔 좋지만 구속이 마음먹은 대로 나오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숙명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잠수함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메이저리그에도 한때는 잠수함 투수가 있었다. 댄 퀴슨베리(56승46패244세이브)나 켄트 티컬브(94승90패184세이브) 등은 손꼽을 만한 언더핸드스로다. 댄 퀴슨베리는 140km 초반의 스피드로도 메이저리그 시즌 최다 세이브(83년 45세이브)를 기록했을 정도다. 퀴슨베리는 대학시절 130km대의 스피드밖에 내지 못해 79년 신인 드래프트지명에서 제외됐다. 그러자 그는 잠수함 투수의 유용한 구질인 싱커를 주무기로 연마했다. 언더핸드스로의 계보는 칼 메이스, 통산 130승의 엘덴 어커를 거쳐 마크 에이크혼으로 이어지는데 그가 사실상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잠수함 투수였다. 마크 에이크혼은 83년부터 96년까지 통산 32세이브밖에 올리지 못했다. 언더핸드스로의 천적인 힘있는 왼손타자들과 스위치히터의 증가에 밀려 잠수함 투수는 그 생명을 다했던 것이다.

    복고풍 투수 김병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직구 스피드에 있다. 직구는 잠수함 투수의 아킬레스건인데 그의 직구 스피드는 평균 147∼148km까지 뿜어져 나온다. 게다가 4, 5종의 변화무쌍한 변화구까지 갖추고 있으니 제아무리 메이저리그 슬러거라도 때려낼 재간이 없다.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김병현의 복고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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