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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지역감정과 알리바이

지역감정과 알리바이

지역감정과 알리바이
4·13총선 결과를 두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라고 하는 지역감정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간의 정치적 대립과 싹쓸이 현상에 대해 개탄하며 이런저런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이런 논의들을 보면서 지역감정 문제를 단지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만 보면 제대로 된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감정 문제는 단지 좁은 의미의 정치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화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과 의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들에 대해 일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미지는 우리의 일상적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물이나 사람, 집단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적이고 단선적인 이미지를 흔히 스테레오타입이라 부른다. 이 스테레오타입은 대중의 문화적 의식과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흔히 사장님과 노동자라는 말에서 일정하게 전형화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뚱뚱하게 살이 찌고 머리가 벗겨진 사장님, 비척 마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노동자, 아마도 그런 식의 이미지가 아닐까. 물론 이런 이미지들은 사장님과 노동자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마 황제 다이어트를 하는 사장님과 운동할 시간이 없는 노동자의 실제 모습은 정반대일 가능성도 크다.

스테레오타입이란 이렇게 실제와 무관하게 우리들이 어떤 것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끼게끔 내면화되어 버린 그런 것이다.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영화 드라마 만화 농담 등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관습적으로 재생산되며 우리는 그런 관습적 이미지들을 통해 특정한 사람, 성, 인종, 직업 등에 대한 ‘편견’을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지역감정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된 스테레오타입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지역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 가운데 특히 호남지역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비교적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 경우가 많음은 쉽게 알 수 있다(그 구체적인 내용을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이 사회적 권력관계를 반영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어느 사회에서건 여성 소수인종 하층계급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 집단은 대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의 대상이 된다.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힘을 행사하는 쪽이 늘 사회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게 마련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문제는 바로 이런 지역적 스테레오타입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내면화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공격적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되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남지역의 경우 수십년간 권력 주체의 지역적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공격적 배제의 심리가 상대적으로 강한 패권주의적 경향을 띠고 나타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일상적인 삶과 내밀한 의식의 차원에도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관계, 무의식의 정치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시적 권력 관계는 현실의 정치적 권력 관계보다 훨씬 오래 가며 결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지역감정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4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현실 정치 권력의 역학은 변화하였지만 사람들 일상에 자리잡은 미시 권력의 역학은 아직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 같은 중립적인 정치 용어들이 우리 사회의 지역문제를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쩌면 이런 용어들은 문제를 자꾸 정치적 영역으로 미루어 버리면서 우리 스스로의 일상에 자리잡은 미시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알리바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0.05.18 234호 (p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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