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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비평이론학회 ‘비평’ 2호

교수·평론가 9인의 ‘미래설계’

교수·평론가 9인의 ‘미래설계’

교수·평론가 9인의 ‘미래설계’
세기의 전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세기 변환을 1년 앞서 치러버렸고 덕분에 21세기 논의는 ‘식은 피자’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현재의 위치와 미래 향방에 대해 검토하는 작업은 끝나버린 일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이론을 통한 현실개입을 목표로 하는 비평이론학회(92년 창립, 회장 김우창)가 식은 피자를 다시 데워 상에 올려놓았다.

최근 발간된 이 학회의 전문지 ‘비평’2호는 ‘21세기 우리에게 대안은 있는가’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했다. 발제를 맡은 김우창교수는 “서양에서 위기라는 말은 ‘갈라내고 결정한다’는 의미의 희랍어 크리네인(krinein)에서 왔다고 한다. 여러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위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은 위기의 시대”라고 했다.

그렇다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며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그동안 9명의 교수-평론가에게 자본주의의 미래, 새로운 정치문화의 정립, 과학기술의 발전과 환경, 민족 문화 혹은 동아시아적 전통, 새로운 보편윤리의 정립, 교육, 근대적 개념으로서 민족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질문을 던졌다.

강내희교수(중앙대 영문학·‘문화과학’ 발행인)는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된다”고 강력한 어조로 말한다.

오늘날 노동사회와 소비사회의 모습으로 함축되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할 게 아니라 비록 유토피아적으로 들릴지라도 비자본주의 사회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그것을 ‘문화사회’라 했고 이를 위해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구축한 다양한 제국주의 식민주의 파시즘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혜숙교수(이화여대 철학)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다”고 못박고 “인권 환경 노동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미지의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박철화씨(평론가·작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인류는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제어할 줄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의 수준에 가장 걸맞은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박씨의 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국어와 한자와 영어의 얽힘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민족주의의 망령에 휘둘려 한자문화권이라는 넓은 공간을 스스로 포기했다면서, 한글을 세련되게 가다듬는 일을 위해서라도 한자를 버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또 젊은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과도한 콤플렉스와 동경을 심어주는 대신 한자와 영어가 각자 한국어 품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교육이 담당할 몫이라는 것이다.

손학규 국회의원당선자는 먼저 “우리사회에 자본주의적 틀과 사상이 뿌리박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인 시장메커니즘도 제도화돼 있지 않고, 자본주의의 사상적 바탕인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도 보편화되지 않은 마당에 서구식 ‘제3의 길’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임을 분명히 한다. 대신 그가 주장하는 것은 ‘진보적 자유주의’다.

장회익교수(서울대 물리학과)는 60억명을 넘어선 지구 인구는 원시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1500배에 달했다고 말한다. 원시생태계적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1500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과학과 기술에 주어진 임무는 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소비를 자극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 왔고 그것이 종말이라는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밖에 김진현(문화일보 사장) 조형(이화여대 교수) 진중권(평론가) 최장집씨(고려대 교수)의 글이 실려 있다.

‘비평’ 2호/ 비평이론학회 엮음/ 생각의 나무 펴냄/ 728쪽/ 1만5000원



주간동아 2000.05.18 234호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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