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4

2000.05.18

‘디지털’이 캔버스를 삼켰다

사이버 공간서 작업, 전시, 판매…예술작품 패러다임·미학 기준 송두리째 변화

  • 입력2005-11-07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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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이 캔버스를 삼켰다
    요즘 파리의 화랑가에서는 심심찮게 디지털 예술작품 전시회를 볼 수 있다. 디지털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미술계에도 디지털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것이다.

    현재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디지털 미술은 기존의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유화를 대신해 디지털 화면에 각종 비디오 장비를 통해 일정한 내용을 표현하는 디지털 회화, 각종 디지털 사진들의 콜라주, 디지털 화면상의 음악적-시각적 3차원 조각 등이 있다.

    이들 디지털 미술은 기존의 예술작품에 대한 패러다임이나 미학적 기준을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예술가와 예술작품 수용자간의 거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아틀리에에서 디지털 화면을 캔버스 삼아 회화작업을 하거나 이미지 종합의 콜라주 작업, 영상조각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공간을 모두에게 개방해놓고 있다. 이에 따라 개별 예술가들의 작업활동에 관심이 있는 수용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작업공간을 방문해 진행중인 작업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를 표명할 수 있게 되었고, 디지털 예술가들은 수용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작품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라서 수용자 미학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 수용참여 미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두 번째 변화는 회화 조각 사진 음악 등 여러 예술장르의 혼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파리 14구에서 최근 3개월간 디지털 회화 전시회를 가졌던 쥐디스 다르몽은 ‘도시들의 이미지’라는 전시회 계획을 발표하면서 “여러 도시들에서 작품에 적합한 소리들을 채집, 혼합한 뒤 이를 리얼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들으면서 디지털 회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 번째로 예상되는 변화는 예술품 판매와 유통구조의 변화다. 디지털 미술작품들은 기존 전시공간이나 유통망을 통해 전시되고 판매되기도 하지만 그 속성상 사이버 공간 내의 갤러리에 전시되고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사이트는 개설 전문회사인 몽도론도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현재 미술품 시장에서는 예술, 상업, 인터넷 등 전통적 범주들이 서로 혼합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나 생명력에 대한 변화가 감지된다. 전통적인 미술작품이 가지는 희소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작품이 손상됐을 경우 생명력이 다하는 경우도 디지털 예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디지털 예술가들도 판화처럼 일정한 수만을 한정해서 시장에 내놓거나 구매자가 함부로 재생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편 예술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예술을 진정한 예술행위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이를 새로운 예술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장실 변기에 ‘샘’이라고 쓴 뒤 전시회에 출품시켰던 사건도 결국 예술로 인정받았었다. 파리의 예술가들은 모든 새로운 예술적 시도들은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비판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은 예술작품을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의 만남의 결과’라고 정의했는데 디지털 예술은 예술가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런 정의를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쟝르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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