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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젊음의 묘약’이라는 호르몬 크림 알고 쓰십니까?

천연 추출물과 체내 호르몬 동일시, 과대 홍보… 생약이라 안전하다는 믿음은 금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젊음의 묘약’이라는 호르몬 크림 알고 쓰십니까?

‘젊음의 묘약’이라는 호르몬 크림 알고 쓰십니까?

[shutterstock]

최근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일명 ‘갱년기 크림’으로 불리는 ‘황체호르몬 크림’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 ‘젊음의 묘약’ ‘여성 불로초’라고도 부르는 이 크림은 난소낭종, 자궁근종, 월경전증후군(PMS) 같은 부인병을 비롯해 갑상샘기능저하증, 고혈압, 류머티즘 관절염, 치매, 불면증 등 각종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알려지면서 갱년기 혹은 폐경기 여성이 주로 찾는다.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은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estrogen)과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안드로겐·androgen)의 모체다. 황체호르몬은 여성호르몬 과다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호르몬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황체호르몬 크림의 주성분은 야생 참마(wild yam·야생마)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100% 생약 추출물이라 안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검색창에 ‘황체호르몬 크림’ 혹은 ‘갱년기 크림’이라고 치면 황체호르몬 크림을 구매할 수 있는 구매대행 사이트와 온라인 약국 사이트가 한꺼번에 뜬다. 이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된 폐경 여성뿐 아니라 노인도 이 크림을 바르면 부신에서 여성호르몬이 생산된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이 과다한 경우에는 여성호르몬을 낮추고 황체호르몬을 높여 두 호르몬의 밸런스를 맞춰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황체호르몬이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솔호르몬(스트레스를 이기는 호르몬)을 만드는 원료라는 점을 들어 ‘스트레스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황체호르몬 크림을 바르면 코르티솔호르몬이 생산돼 피로가 감소한다’는 문구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폐경기 여성의 성욕 감퇴 원인 역시 황체호르몬 저하에 의한 것인 만큼 황체호르몬 크림을 바르면 성욕 증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황체호르몬 크림 구매자들의 사용 후기를 보면 황체호르몬 크림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황체호르몬 크림을 구매해 사용 중이라는 한 여성은 ‘약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바르고 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황체호르몬 크림을 바르고부터 몸이 한결 가볍고 생리 주기도 규칙적으로 바뀌었다’고 구매 후기를 적었다. 기자가 만난 40대 초반 한 여성도 황체호르몬 크림을 맹신했다. 이 여성은 “아무리 말로 좋다고 얘기해도 본인이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는 그 효능을 알 수 없다”며 “생약 성분이라 부작용도 없다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내 호르몬과 동일 성분인지도 미지수

‘젊음의 묘약’이라는 호르몬 크림 알고 쓰십니까?

해외 직접구매나 구매대행 웹사이트를 통해 황체호르몬 크림을 구매해 사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천연(야생마 추출) 프로게스테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미국 화학자 러셀 E. 마커 박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3년 야생마에서 추출한 디오스게닌(diosgenin)을 프로게스테론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최초로 고안했다고 한다. 황체호르몬 크림을 소개해놓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적힌 글을 보면 ‘러셀 박사가 발견한 천연 프로게스테론은 난소와 부신 등 인체에서 생산되는 프로게스테론과 동일한 분자 형태를 갖췄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야생마에서 추출한 천연 프로게스테론이 피부에 스며들었을 때 과연 체내에서 황체호르몬과 똑같은 작용을 하느냐다. 이에 대해 약학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다. 이지현 동국대 약대 교수는 “식물 추출물 자체를 피부에 바른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 얘기다. 약(프로게스테론) 자체 성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이 인체에 들어갔을 때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체내에 흡수돼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입증한 것과 신체에 적용했을 때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웹사이트인 ‘메드라인플러스(Medline Plus)’ 역시 야생마의 디오스게닌 성분은 ‘실험실에서 DHEA(부신에서 만들어지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체내 효소에 의해 에스트로겐, 안드로겐으로 전환된다)가 만들어졌을 뿐, 이러한 화학적 반응이 체내에서 일어날지는 의문이다. 야생마 뿌리 추출물을 섭취하는 것이 체내 DHEA 수치를 증가시킨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황체호르몬 크림 제조사와 판매자들의 주장대로 야생마 추출물이 체내에서 프로게스테론과 동일한 작용을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방암 원인의 하나로 에스트로겐 과다가 꼽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르몬의 정확한 수치를 모른 채 임의대로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D제품의 사용 방법을 보면 ‘1일 1~2회 아침 또는 저녁에 1g(제품을 두 번 짠 분량)씩 목, 가슴, 배, 팔 안쪽, 대퇴부 안쪽, 손바닥, 발바닥 등 각질이 적고 부드러운 부위에 매일 부위를 달리해 넓게 펴 바르고 가볍게 두드려준다’고 적혀 있다. 이는 결코 객관적인 데이터라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지현 교수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약국에서 직접 호르몬 크림을 제조해 판매한다. 하지만 반드시 의사 처방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인별로 호르몬 수치가 다 다른데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의 크림을 바른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야생마 추출물 성분의 크림을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오프라인 약국, 심지어 병원에서도 의사 처방전 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는 이 크림이 화장품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화장품을 수입할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품질검사를 실시해 인체에 무해한지를 밝히면 통관 가능하다. 식약처의 허가도 필요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선 황체호르몬을 화장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지만 야생마는 가능하기 때문에 수입 과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야생마가 황체호르몬 성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호르몬제의 임의 사용에 대한 위험성은 분명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D제품을 수입하는 회사는 “이 약을 수입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와 약사로부터 사용법을 정확히 설명받고 사용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호르몬 성분임에도 화장품으로 판매 

‘젊음의 묘약’이라는 호르몬 크림 알고 쓰십니까?

[shutterstock]

한편 황체호르몬 크림의 판매 과정에서는 위법 사항이 의심된다. 현행법상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는 내용(질병 진단, 치료, 경감, 처방, 예방 관련)을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현재 판매되는 D크림의 경우 약사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황체호르몬 크림’으로 표기돼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질병의 예방 혹은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설명돼 있다. 물론 블로그에서 직접 판매를 진행하지 않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블로그를 하는 약사 대부분이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운영하기 때문에 약사의 블로그에서 황체호르몬 크림을 접한 뒤 온라인 약국에서 해당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식약처는 따로 관리 감독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식약처 관계자는 “앞으로 황체호르몬 크림의 판매와 관련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향후 일어날 문제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직접구매(직구)나 구매대행으로 야생마 크림을 사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크림류 제품은 유통 과정에서 온도차가 심할 경우 크림 상태가 불안정해져 성분이 파괴되거나 산패, 혹은 곰팡이 등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온라인 직구로 황체호르몬 크림을 구매한 소비자 가운데 이러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가 적잖다. 벌써 3년째 직구로 황체호르몬 크림을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는 한 여성은 “평소 주문하던 사이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구매했는데 크림에 물기가 생겨 있고, 냄새도 기존과 달라 사용하지 못하고 버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황체호르몬 크림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병원에서 실시하는 호르몬 치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신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를 심각한 병이나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의약품 전문가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고생하는 여성이라면 ‘뭐가 몸에 좋다’는 낭설에 기대지 말고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호르몬 테라피(주사 혹은 약 처방)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05.18 1038호 (p34~35)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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