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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SLBM과 무수단의 숨은 진실

액체연료 신뢰도 꺾이자 설익은 고체연료로 교체, 연이은 자충수의 끝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北 SLBM과 무수단의 숨은 진실

오렌지색 화염과 흰색 화염. 일반인의 눈으로는 구분조차 쉽지 않은 이 차이는 로켓 전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변별점이다. 미사일 혹은 로켓이 뿜어내는 화염의 색깔을 통해 어떤 연료를 사용했는지를 판독할 수 있기 때문. 북한이 4월 23일 동해상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이튿날 ‘노동신문’에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호’가 바로 이 ‘색깔의 차이’에 걸려든 대표적인 경우다.



사거리 줄어드는데 왜 굳이?

北 SLBM과 무수단의 숨은 진실

북한이 4월 24일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모습(상자 안)과 2015년 5월 첫 공개 당시 SLBM 모습. ‘조선중앙통신’은 24일 시험발사에 대해 “최대 발사 심도에서 탄도탄 냉발사체계(콜드론치) 안정성 등을 확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며 대성공이라고 주장했다.[사진 출처 · 노동신문]

잠수함에서 콜드론치(Cold Launch) 방식을 사용해 컨테이너를 수면 위로 뿜어 올린 뒤, 미사일이 안정적으로 점화돼 30km를 날아갔다는 이번 실험을 둘러싸고, 최근 일주일간 한미 군당국과 전문가들은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 다양한 논쟁을 벌여왔다. 실험 직후 “실패라고 할 수 있다”던 한국 국방부의 설명과는 뉘앙스가 사뭇 다른 미국 측 판단이 연이어 공개되면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뤄가는 형국. 북한이 향후 3000t급 잠수함을 성공적으로 건조할 경우 부산 등 한국군 후방의 전략 목표가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싸늘한 전망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이 시험발사에서 풀리지 않는 가장 큰 미스터리는 따로 있다. 바로 갑작스러운 엔진 변경 문제다. 북한이 이전까지 SLBM 발사를 통해 공개했던 사진 속 화염은 모두 케로신 같은 액체연료가 만들어내는 오렌지색 화염으로 상대적으로 짧고 가늘게 나타났지만, 이번 화염은 고체연료를 연소할 때 나오는 흰색 화염으로 분사구 뒤편에서 넓게 퍼지는 모양이었다. 북한 당국 역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출력 고체발동기를 이용한 탄도탄의 비행동력학특성(을 검증했다)”을 주장함으로써 해외 전문가들의 이러한 분석을 확인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북한이 SLBM의 고전으로 불리며 상당한 신뢰성을 인정받아온 옛 소련의 SS-N-6(옛 소련명 R-27) 기술을 이미 상당 부분 확보했다는 사실. 애초 SLBM으로 설계된 이 미사일을 바탕으로 북한은 무수단 등 중거리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꾸준히 증강해왔다. 3월 중순 이후 다양한 기술적 완성도를 공들여 과시해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14 역시 SS-N-6의 4D10 엔진 2기를 나란히 이어 붙여 제작했다는 게 서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1035호 ‘스텝 엉킨 평양, 5차 핵실험으로 만회 시도’ 기사 참조).



반면 북한의 고체연료 엔진 기술, 특히 일정 사거리 이상을 날아가는 고출력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3월 24일 역시 노동신문을 통해 지상에 수평으로 고정된 고체연료 엔진이 불을 뿜는 연소실험 사진을 내보냈지만, 이를 기반으로 하는 미사일은 그간 공개한 적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한미 군당국에 확인돼 대표적인 단거리 위협으로 자리매김한 사거리 100~200km의 KN-02 미사일이 고체연료를 사용하기는 해도, 이번 실험의 SLBM과는 제원이 맞지 않을뿐더러 출력도 적절치 않다.

통상 고체연료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성이다. 연료 주입 등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부식이 심해 사흘 이상 발사 대기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액체연료 미사일은 군사위성 등을 활용하는 한미연합군의 탐지에 노출되기 쉬워 조기 격파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연료를 채워 넣은 채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어 사실상 시간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고체연료 미사일은 한미 군당국으로서는 큰 골칫거리였다. KN-02 미사일이 2000년대 들어 ‘가장 날카로운 위협’으로 손꼽힌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오로지 지상에서만 적용되는 특성이다. 바닷속을 누비는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의 경우 고체연료든 액체연료든 사전탐지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별다른 전술적 차별성이 없다는 게 군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취급이 까다로운 액체연료의 특성상 부식 등이 일어나면 잠수함 승조원들의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단점은 있으나, 이는 전투원의 생명을 전투력 못지않게 중시해온 미국 등 서방국가의 고려사항이었을 뿐 SS-N-6 개발 당사자인 옛 소련은 이에 개의치 않고 액체연료 SLBM을 오랜 기간 운용했다.

가장 결정적 문제는 두 체계의 출력 차이. 원론적으로 고체연료는 유사한 부피와 질량의 액체연료에 비해 출력이 낮다. 같은 크기 미사일이라면 액체연료를 사용할 때 30% 이상 사거리가 길다는 게 대체적인 산출식이다. 더 먼 바다에서 SLBM을 날릴 수 있다면 상대 잠수함 전력의 추격전을 따돌려가며 발사할 수 있으므로 무시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막 연소실험 끝난 고체엔진을…

北 SLBM과 무수단의 숨은 진실

[동아일보]

정리해보자. 북한은 옛 소련에서 충분히 검증된 SLBM 기술 원형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돌연 북극성1호의 엔진을 검증되지 않은 고체연료로 바꿨다. 기동성과 안정성 등 고체연료의 통상적인 장점은 SLBM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반면 미사일 출력은 낮아지고 사거리 역시 짧아진다. 그간 평양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퍼즐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왜?

질문에 답할 한 가지 단초는 앞서 설명한 3월 24일 고체연료 지상연소실험 사진이다. 이번 실험에 쓰인 북극성1호 미사일의 크기나 화염 색깔로 미뤄 이 사진 속 고체연료 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존 실링 미국 에어로스페이스 연구원 등 서구 전문가들의 판단이다(4월 28일 ‘38노스’ 기고문). 그러나 이 엔진의 추력은 북극성1호 크기의 미사일에 적절하지 못하며 환산해보면 30km 정도가 최대 비행거리로 보인다는 것. 적합하지 않은, 게다가 이제 지상연소실험 단계를 막 벗어난 고체연료 엔진을 억지로 장착하는 바람에 30km밖에 날아가지 못했다는 분석이 도출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추론이 가능해진다. 앞서 말했듯 북측은 최근까지 전력을 다해 중거리 이상용 액체연료 엔진 개발에 매진해왔지만, 이제는 결정적인 불신을 갖게 된 것 아닐까. 이는 4월 15일 SS-N-6를 기반으로 만든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무수단이 날아오르자마자 폭발하는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한층 설득력을 얻는다. 북한은 4월 28일 새벽 실시한 두 번째 발사실험에서도 다시 한번 실패를 기록했다. 신뢰도가 바닥을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과 광명성 등 구형 스커드 엔진을 기반으로 만든 이전 미사일들이 성공적인 비행을 거듭했던 것과 달리, 무수단과 KN-14 등 SS-N-6의 4D10 엔진으로 만든 미사일은 이제까지 한 차례도 시험비행을 거친 적이 없다. 그 최초의 시도였던 4월 15일 무수단 발사가 실패로 끝나면서 이 엔진에 대한 기술적 신뢰가 무너졌고, 이 때문에 SLBM 역시 개발 초기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고체연료 엔진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 미사일 개발의 최종 목표가 고체연료 엔진을 이용한 이동형 ICBM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경우 미 본토를 겨누는 핵 타격 능력이 감시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기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측으로서도 심각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먼 미래 일일 뿐, 중간과정에서는 액체연료 엔진을 이용해 1만km 이상을 날아가는 KN-14 ICBM으로 위협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최근 평양이 발신해온 핵심 메시지였다.



오바마 발언의 속내

北 SLBM과 무수단의 숨은 진실

3월 24일 북한 ‘노동신문’이 “고출력 고체 발동기(엔진) 실험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시찰 모습. [사진 출처 · 노동신문]

이렇게 보면 평양이 무수단 발사 첫 실패 이후에야 고체연료 엔진의 SLBM 장착에 나섰을 리는 없다. 일주일 남짓 짧은 시간에 이를 완성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장기적으로 고체연료를 지향하는 평양이 SLBM 역시 액체와 고체를 모두 개발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무수단 실패를 계기로 고체연료를 꺼내 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풀이한다. 무르익지 않은 기술로 무수단 실패를 만회하려 애쓰다 사거리 30km 수준의 어설픈 결과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 과정에 미사일 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군수조직 내부의 이해관계가 작용했을 공산이 있다고 지적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무기개발사업은 그 종류나 경로별로 팀을 나눠 경쟁관계를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 평양에서도 고체연료 개발팀과 액체연료 개발팀이 별도로 움직여왔을 공산이 크고, 무수단 발사 실패로 액체연료 팀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고체연료팀이 SLBM 실험을 주도했으리라는 시나리오다.

분명한 사실은 갑작스레 준비한 SLBM 실험 역시 차갑게 식어버린 외부의 시선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연이은 무수단의 실패는 고스란히 엔진 2기를 묶어 만든 KN-14 ICBM에 대한 회의적인 분석으로 이어지고, 5월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를 전후해 미국과 협상테이블을 만들려던 평양의 로드맵 역시 함께 무너져내렸다. 4월 초순만 해도 오바마 행정부가 조만간 북한의 ICBM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자 협상에 나설지 모른다는 관측이 회자됐지만, 무수단이 거듭 실패하면서 이러한 전망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 대신 북한의 ICBM 능력이 완성되려면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고, 따라서 새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마칠 내년 중반까지는 현재 기조가 유지되리라는 예측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4월 26일 독일을 순방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군의 무기로 북한을 파괴할 수 있으며 핵심 우방인 한국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 참는 것”이라는 이례적인 수위의 강경발언을 남겼다. 북미 협상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보유한 모든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한꺼번에 과시했던 지난 두 달간 평양의 시도가 무위로 끝나는 신호탄인 셈이다. 






주간동아 2016.05.04 1036호 (p22~24)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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