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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청춘이라 죄송합니다

출구 없는 사회 ‘죄송한’ 청년들

자조·자학·공포·무기력 벗어난 ‘분노와 저항’이 필요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출구 없는 사회 ‘죄송한’ 청년들

출구 없는 사회 ‘죄송한’ 청년들

홍중식 기자

‘부모님, 죄송합니다’
1월 8일 충남 천안 한 모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청년 A씨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시험을 준비해온 그는 지난해 1월 식구들에게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약 1년간 ‘가짜 출근’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바뀌지 않고 2000만 원 상당의 빚까지 지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나 죄송합니다”

2013년 8월 서울시내 한 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B씨는 “이 얘기를 듣고 한동안 남 일 같지 않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실 때마다, 저녁 때 ‘다녀왔니’라고 물으실 때마다 죄스러워 속으로 ‘죄송하다’고 되뇐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한 20대 거의 모두가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9.2%.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 전문가들은 “사실상 구직을 포기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청년 실질실업률이 20%를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청년 10명 중 2명은 ‘죄송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죄송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는 뜻이다. 홍보연합 동아리 ‘생존경쟁’이 2015년 말 대학생 2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대학생이 가장 많이 쓴 신조어 5위로 ‘문송합니다’가 꼽힌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송합니다’는 취업시장에서 이공대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문과대생들이 ‘문과대 출신이라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는 데서 유래한 것. 서울지역 4년제 대학 인문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C씨는 “전반적으로 취업률이 하락하면서 문과대 쪽은 대학원 입학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취업을 포기한 뒤에도 석사과정 입학을 위해 재수, 삼수하는 친구들이 적잖다”며 “이런 청년들은 대학원 입학에 떨어져도 ‘문송’하고, 합격해 등록금을 내게 돼도 ‘문송’한 ‘죄송’의 무한루프에 빠져 산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이들이 말하는 ‘죄송’ 안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자조와 무기력감도 함께 담겨 있다는 게 C씨의 분석이다. 그는 “요새는 ‘나보고 뭘 더 어쩌라는 말이냐’는 의미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이 말 안에 ‘내가 사과했으니 그냥 대충 넘어가시죠’라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며 “‘죄송하다’는 단어가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변주되며 사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적 감정의 힘에 대해 분석한 저서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을 펴낸 박형신 박사는 이런 청년들의 태도에서 뿌리 깊은 공포를 읽었다. 박 박사에 따르면 공포는 ‘앞으로 고통당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감정. 이 책의 분석처럼 “청년이 일자리가 없어 미래를 빼앗기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빈곤에 시달리며, 무한경쟁에 처한 사람들은 그들의 인간적 감정까지 박탈당하는” 한국 사회는 청년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런 거대한 압력에 저항할 수 없는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과’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박 박사는 “사회학자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최근 취업난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입증했다. 그리고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사회 구조를 규명하면서 청년들에게 그것을 고치기 위해 ‘분노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대다수 청년에게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지역 4년제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D씨는 그 이유를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젠가 TV에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정치인이 나와 학창시절에 대해 얘기하는 걸 봤는데 ‘우리 때는 강의를 거의 듣지 않았다. 사회 문제를 고민했다’ 등의 얘기를 하더라. 그러고도 그 사람은 출세해 정치인이 되지 않았나”라며 “친구들이랑 그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학점을 못 받으면 낙오자가 된다.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비웃었다”고 했다.



안전한 삶에 대한 열망

대학원생 E씨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0년 전만 해도 일찌감치 취업준비를 시작하는 동기가 있으면 선배들이 ‘너는 취직하려고 대학에 왔니?’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학점 관리를 안 하는 학생을 두고 주위에서 ‘쟤는 취직도 안 할 거면서 왜 대학에 왔대?’라고 수군거린다. 학점 B- 하나 나오면 인생이 무너지는 줄 아는 세대에게 ‘저항하고 분노하라’고 얘기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적당한 자조를 담아 ‘죄송하다’고 말하며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에 열중한다는 얘기다. 문화인류학자 엄기호 씨는 저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라는 굳센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시대였다. 비록 오늘이 암흑이라고 하더라도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 생각은 진일보한 민주주의 또는 경제성장의 형태로 우리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조건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이들을 둘러싼 현실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말 발표한 ‘하반기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 기업체의 구인(求人) 인원은 69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5000명(0.8%) 줄었다. 채용 인원도 61만1000명으로 역시 5000명(0.9%) 감소했다. 인력 수요도, 선발 인원도 전년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반면 외국인 고용은 늘고 있다. 해당 통계에서 3분기 충원 인원 61만1000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1만8720명으로, 1분기 1만1209명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보면 일부 직종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보완하는 게 아니라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이들과 싸워야 하는 계층의 구직난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88만원 세대’를 출간한 저자 우석훈, 박권일 씨는 당시 임금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20대의 삶을 소개하며 ‘지금의 10대와 20대가 처한 상황은 아마 시간이 흘러서 20년이 지나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을 것이고 20대의 운명이 10대에게 그대로 이어져 더욱 열악하게 하향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젊은 층의 안정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15년 11월 전국 고등학생과 학부모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17.5%)이었다. 이어 ‘공학기술자’(9.5%), ‘교사’(9.3%), ‘회사원’(5.6%), ‘의사’(5.1%)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이 다섯 가지 ‘안정적인’ 직업의 응답비율이 47.0%로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이에 대해 대학원생 E씨는 “지금 젊은이들은 유년기에 외환위기를 겪었고,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좁아지는 경험을 했다. 나만 해도 당시 집안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전에 살던 집의 가구가 다 들어가지도 않는 좁은 집으로 이사했던 경험이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며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가족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중년시절 같은 경험을 한 부모도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좋은 직장’에 대한 바람을 불어넣고, 이를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를 투자한다. 박형신 박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부모세대는 자녀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경제적 하강이동’의 공포를 제거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총사교육비 규모가 2013년 현재 18조 원을 상회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심지어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상당수 부모는 ‘취업준비생’ 자녀의 미래를 위해 사교육비를 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5년 발표한 ‘4년제 대졸자의 취업 사교육 기간 및 비용’ 보고서를 보면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은 첫 취업을 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정규교육 외에 약 1.2년의 시간과 510만 원의 비용을 들인다. 대학 입학 당시 부모의 월평균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취업준비생의 경우 취업 사교육에 1092만 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구 없는 사회 ‘죄송한’ 청년들

청년세대의 불안과 고통을 다룬 tvN 드라마 ‘미생’(왼쪽)과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한 장면.

취직해도 죄송한 청년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은 ‘죄송’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아까 한 말을 대리님이 언짢아하신 것 같고/ 비품 하나 빌리러 갈 때도 조마조마하고/ 사수의 한숨 하나하나가 나로 인한 것이 아닐까 겁나고/ 내 이름만 불려도 혹시 뭘 잘못한 걸까 싶고/ 심지어 복사기가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소리만 내도/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지난해 말 출간된 강백수(본명 강민구) 씨의 저서 ‘사축일기’의 한 대목이다. 회사 내 모든 존재의 눈치를 보는 직장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 책 제목의 ‘사축(社畜)’은 회사에서 키우는 가축이라는 뜻. 혹독한 업무환경과 박봉, 고용 불안, 불합리한 조직문화 등에 고통 받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올해로 스물아홉 살이 된 저자가 ‘친구’들의 민낯을 담아낸 이 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 청년은 취업을 하든 못 하든 불쌍한 존재’(온라인 서평)라는 공감을 얻으며 화제몰이 중이다(상자기사 참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젊은이가 자신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요즘 청년들은 분명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를 자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3만6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하반기(10월 기준)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융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평가받아온 산업 분야에서도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조사에서는 올해 1분기까지 금융·보험업이 26.3%의 인력을 줄이고 보건·사회복지서비스(-10.5%), 제조업(-4.7%) 등에서도 감원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럼에도 분노하라”

그렇다면 이 찬바람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청년들은 계속 ‘대리님’과 ‘사수’와 ‘복사기’의 눈치를 보며 ‘죄송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펴낸 그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진행한 출간 기념 저자 특강에서 청년을 향해 “바늘구멍을 뚫고 가려 하지 말고 바늘을 부수라. 이 사회의 지금 모습은 미안하게도 기성세대가 만들었지만 이를 깨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건 청년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에겐 미래가 있으며, 앞으로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장 교수는 “지금의 20, 30대가 계속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모습으로 남으면 자식세대에게 이보다 못한 사회를 물려주게 된다”며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현재 청년세대의 아픔은 결코 스펙 쌓기와 자기계발, 힐링으로 치유될 수 없다. 청년세대가 스스로 이를 깨닫고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힐링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죄송’ 안에 담긴 자조와 자학부터 벗어던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긴다.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망가뜨린 후에 남이 망가뜨린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친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毁, 而後人毁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번역 김태희 다산연구소장)

고전 ‘맹자’ 이루(離婁) 상(上)편의 한 대목이다. 늘 ‘죄송’한 청년들이 곱씹어봐야 할 글귀다. 






주간동아 2016.01.27 1023호 (p24~2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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