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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금회’ 출신 포진한 시중은행 고위직, 유재수 사건 뒤 인사 ‘뒷배’ 의혹 되살아나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9-12-1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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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개입 금지” 文 대통령 엄명 후에도 ‘보이지 않는 손’ 잡음

    • 호랑이 빠진 시중은행에선 여우가 왕 노릇?

    금융위원회 국장 시절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11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위원회 국장 시절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11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정부 때 금융권에서는 어윤대(KB금융지주), 김승유(하나금융지주,) 강만수(산은금융지주), 이팔성(우리금융지주) 등 대통령과 가까운 정권 실세가 이른바 ‘4대 천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박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의 모임인 ‘서금회’가 금융권 핵심세력으로 떠올랐다. 홍기택 KDB산업은행장,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등 국책은행은 물론,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금융권 요직에 서강대 출신이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어땠을까.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 이른바 ‘부금회’가 득세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대선캠프 경제정책자문단으로 활동한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2017년 9월 BNK금융지주 회장에 올랐고, 문재인 대선캠프 금융경제위원회 공동 부위원장을 지낸 김태영 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이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에 오르는 등 부산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 우리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동빈 전 우리은행 여신지원본부 부행장도 2017년 10월 SH수협은행장에 올랐다. 부산뿐 아니라 경남 진주 출신인 허인 부행장이 그해 11월 KB국민은행장에 오르는 등 부산·경남 출신 금융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금융권 인사를 둘러싸고 ‘부금회’ 논란 등 잡음이 일자 문 대통령은 2017년 말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4대 천왕, 서금회, 그리고 부금회

    그러나 최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정권 실세들이 금융권 인사에 개입했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 전 부시장과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사이에 금융위원회 인사 등을 논의한 텔레그램 문자메시지가 오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 전 부시장은 문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7월부터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다. 그런데 금융정책국장을 맡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조사를 받고 병가를 내 업무에서 손을 떼게 돼 실제로 그가 금융정책을 총괄한 시간은 몇 달 되지 않는다. 다만 유 전 부시장이 천 행정관 외에도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함께 텔레그램에 별도의 방을 만들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 네 사람이 정권 초 금융권 인사에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그러나 금융권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역대 정부와 달리 시중은행장 인선 등에 정권 실세의 입김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며 방어막을 치고 있다. 2017년 말 문 대통령의 ‘금융권 인사 개입 금지’ 지시 이후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등 금융권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권력 개입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권교체 실감하기 어렵다”

    [뉴스1]

    [뉴스1]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은 대체로 정해진 임기를 채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3월부터 하나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정태 회장은 7년 넘게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KB금융지주를 이끌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 상당수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도 연임에 성공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정권교체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추위와 임추위가 역대 정부에 비해 확실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권력의 입김이 축소되면서 생긴 공백을 금융지주 회장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 외풍이나 외압이 사라진 금융권에서 지주 회장들의 영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호랑이가 침묵하는 사이 여우가 왕 노릇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촌평했다.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기 위해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등 감독기관이 시중은행장 인사 때 중립을 지키고 있는 사이 임기제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거푸 연임에 성공하며 사실상 오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악력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의 정당한 조사조차 거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최근 DLF 투자 손실에 대한 배상 비율을 결정하면서 시중은행의 감독당국 조사 방해 행위를 적시했다. 시중은행들이 자체 조사에서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하고도 이와 다르게 금융감독원에 사실조사 답변서를 회신하고, 금융감독원 조사 때 불완전판매 부인을 유도하는 PB용 Q&A를 작성해 활용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과거에는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으면 임원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감독당국의 제재가 오히려 훈장처럼 여겨지는 풍조마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관치’ 논란을 피하려고 감독당국이 시중은행 인사에 거리를 두는 사이, 시중은행에서는 감독당국 조사보다 인사권을 가진 금융지주 회장의 지시를 좀 더 충실히 이행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조사 때 불완전판매 부인을 유도하는 PB용 Q&A를 작성, 활용한 KEB하나은행의 경우 김정태 회장이 2012년 3월부터 이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중은행장들은 줄줄이 연임에 성공했다. 2017년 11월 21일 취임한 허인 국민은행장이 내년 11월 20일까지 임기가 1년 더 연장됐고, 2018년 1월부터 NH농협은행장을 맡고 있는 이대훈 행장도 연임에 성공해 농협은행을 1년 더 이끌게 됐다. 이제 금융권의 눈길은 12월 27일로 임기 만료를 앞둔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연임 여부에 쏠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2월 임명됐음에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계속해서 기업은행을 이끌어온 김 행장의 거취가 향후 금융권 수장의 교체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내년 초에는 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 만료까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내년 4월에 만료된다. 이 가운데 신한금융지주는 조 회장의 임기 만료를 석 달 이상 앞둔 12월 13일 회추위를 일찌감치 열고 차기 회장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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