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5/02/28/200502280500049_1.jpg)
김의원은 10일 다른 3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 교과서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토(衛藤) 외무성 부장관 을 만났지만 냉담하고 형식적인 답변만 들었습니다. 다음날 외무위 원장인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것 역시 형식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바로 여기에 교과서 문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의 역사 교과서 8종은 이미 검정을 끝내고 합격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제 지방의 교육위원회가 채택할 것인지의 단계만 남았습니다.
김의원 일행은 저와 면담을 마친 후 국회 주변에서 데모 행진을 하 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주변은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제한이 있지 만, 데모 인원은 4명에 지나지 않고, 무언(無言)의 항의라고 하는 만큼 통행인처럼 걸어간다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회 정 문에 도착하자 김의원 이외의 다른 국회의원 3명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김의원은 잠시 기도를 하고 싶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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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냉정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행위가 불러올 정치적 영향 을 생각해 말을 아꼈습니다. 침묵은 일본인 스스로 연좌농성의 의미 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단식행동은 이웃 나라 국민이 얼 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연좌농성 이후 다시 한번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 와 우리 정치가들이 해온 일 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먼저 도저히 합 격할 수 없는 ‘한국합병’이나 ‘강제노동’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위안부 존재를 무시한 것인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기를 회피한 것 인지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검정과정에서 137항목의 수 정을 요구하자 항의도 하지 않고, 아주 쉽게 이를 받아들여 자신들 의 교과서를 합격시켰습니다.
그들이 의도하는 이번 교과서는 실은 내용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목표를 두 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를 디딤돌로 이용해 장대한 국민운동을 일으 켜 내용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전술입니다. 교과서 판매라는 상업적 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런 수단을 취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 팔리지 않으면 회사는 도산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이미 7개의 교과서 회사가 있고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 여덟 번 째 회사가 끼여들어가도 돈을 벌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교과서와는 별도로 2권의 방대한 서적 ‘국민의 역사’ ‘국민의 도덕’을 출판 하고 전국에 뿌려왔습니다. 이 모임이 출간한 ‘교과서 문제 핸드북 ’ 등도 얼마나 균형이 잡히지 않았는지, 종교관계 서적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 모임은 이제 채택에 힘을 쏟으며 교육위원회에 압력 을 넣기 위해 먼저 지방의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교과서 채택에 중립적이어야 하는 위원회를 설득해 모임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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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일각에 사는 일본은 이웃 나라, 특히 한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3년 전부터 ‘일-한 기독의원 연맹’을 결성해 교류해 왔습니다. 결성 이유는 아직 소원한 일-한 관계를 진정한 신뢰에 근거한 관계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교류를 이루어 나가고 신뢰감을 얻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원리인 화 해를 키워드로 해서 기독의원들끼리 일-한 관계를 다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 수는 신과 인간과의 중개자로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이 처음으로 신 과 화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화해는 일방적인 사죄가 아니라 원 칙적으로 양쪽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호이 해는 그것을 통해 성립하는 것입니다. 김의원과 나는 크리스천이 아 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형식적인 교류는 있었겠지요. 그러 나 그것은 단지 국익이나 사익을 얻기 위한 가면(假面)의 교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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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중개자인 예수를 믿고 한국에 가서 교류를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김의원의 부친은 일본에 강제연행되어 귀에 장애를 입 고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김의원의 부친은 가난 속에서도 결코 일본인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러나 김의원은 저의 사죄를 받아주셨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사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의원의 외로운 단식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김의원은 4 월16일 단식농성을 중단했으나 도이 류이치중의원이 본지에 기고한 시점에는 농성중이었음-편집자). 오늘은 예수의 수난일입니다. 그는 예수의 수난과 가장 친근한 형태로, 십자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습니다. 그의 신앙, 그의 정치가로서의 감성은 더욱 빛나고 있습 니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는 민중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앉아 있 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