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이어령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이제 연도를 표시하는 B.C는 ‘Before Christ’에서 ‘Before Cable’로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제는 인터넷 세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 당연히 그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도 변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곧 ‘당대 문화’의 총체적인 반영이고, 여기에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뉴 밀레니엄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로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콘텐츠(contents)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콘텐츠 비즈니스’가 앞으로 황금시장을 이룰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콘텐츠? 이 생경한 단어는 세기말의 하나의 핵심어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콘텐츠란 알기 쉽게 말해 ‘인터넷 인프라’라는 그릇에 담겨진 음식이다. 그릇이 아무리 이쁘고 좋아도 음식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 인터넷 인프라는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 그 자체가 된다.
콘텐츠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와 내용인 동시에, 사람을 웹으로 모으는 힘이다. 따라서 단순히 문자정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래픽일 수도 있고, 게임이나 동영상, 음악 파일일 수도 있다. 모든 멀티미디어적 요소가 콘텐츠를 구성한다. 따라서 비즈니스 사이트의 콘텐츠는 결국 수익을 올리기 위한 호객행위와 같다. 누가 더 시선을 붙드는 콘텐츠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과가 바로 콘텐츠 사업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크레비츠(crebiz)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creative business)의 합성어. 20세기는 정보화로 치닫는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컴퓨터나 테크놀로지가 아닌 각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창조산업’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전망이라는 것이 많은 미래학자들의 얘기. 미국 중소기업청도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3 밀레니엄 보고서’에서 새 천년을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는 크레비즈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중소기업 창조성 촉진법’을 제정하고 대대적인 지원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통신벤치 마킹(bench marking)
키보드로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 대신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는 ‘애플데스크 톱 인터베이스’는 원래 제록스사에서 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애플사가 ‘벤치 마킹’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컴퓨터 매킨토시를 만들어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다시 벤치 마킹해 윈도즈 3.0을 개발했다. 이는 원래 자신보다 탁월한 상대를 목표로 경영 성과를 비교 분석하고, 성과 차이를 가져오는 운영 방식을 체득하여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경영학적 기법을 뜻하지만, 이제는 ‘타인의 장점을 흡수한다’는 광의의 뜻으로 쓰인다. 모르면 배워라. 새 천년에도 이 말의 진리는 불변이다.
앞으로는 인재도 애프터서비스(AS)를 하는 시대. 일본의 한 대학은 최근 졸업생들의 취업후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인재 AS제도’를 실시하고, 교수들이 졸업생들이 취업한 업체를 찾아 현장지도까지 맡는 ‘졸업생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인력이 얼마나 현장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 대학의 기능이나 시스템도 이런 추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고해준다. 교수라는 직업이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F1족(프리 인텔리전트 부족)
21세기에는 과연 어떤 계층이 소비를 주도할까.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것이 ‘프리 인텔리전트 부족’이다. 각종 경제연구소들은 예술 정보 패션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소모임 등을 통해 이와 관련된 사람들만 교류하는 이들이 소비 주도 계층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에는 도심의 대형 오피스텔이나 첨단 아파트들이 아예 처음부터 동종 전문인만 선택해 입주시키는 방식도 등장했다.
스트리트 스피리트(Street Sprit)
세기말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변부 문화’를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서게 만드는 ‘힘의 이동’을 이룩해냈다. 그리하여 대도시 길거리의 후미진 ‘구멍가게’에서만 유통되던 힙합과 테크노는 텔레비전이라는 공식적인 백화점에서도 유통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대표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길거리 ‘야전 정신’을 지적 자양분으로 삼은 비정규 게릴라 ‘딴지일보’가 제도권으로 편입된 사실, 팬터지나 스릴러 등의 대중문학이 ‘본격문학’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 등도 앞으로의 문화 지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고한다. 이제 문화에서도 기성의 권위는 사라졌으며, 더 이상 제도권이라는 틀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도 못한다. 오로지 누가 더 창의적이며 치열한 ‘스트리트 스피리트’를 가졌는지가 성패의 결과를 말해줄 따름이다.
초일류 국가
영국의 블레어 정부는 ‘정부 현대화’와 ‘디자인’을 21세기의 국가적인 화두로 내걸었다. 프랑스도 새 천년에는 문화 일변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산업과 첨단과학에서도 일등 국가가 되자고 다짐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자’는 테마를 잡았다. 모든 나라들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식 기반 사회로 신속히 옮겨가기 위한 정보통신(IT) 인프라 구축을 착착 이행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고의 ‘디지털 국가’로 탈바꿈할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초일류국가는 21세기의 초입에서 우리의 귀를 가장 ‘괴롭힐’ 단어가 될 것이다.
인간의 얼굴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이렇게 경쟁력 배양을 위한 무한 경쟁에 들어간 가운데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 자신. 지난해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 총회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현재의 국제경제질서에 “경쟁만이 있고 인간적 배려가 없다”면서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자”고 호소했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 역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문명은 그 긍정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부와 권력의 편중, 비인간화와 개인의 무력감 확산 등의 폐해를 낳았다. 최근 유네스코가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자는 윤리적 세계화 운동을 전개하는 것처럼 새 천년에도 첨단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인간성 회복의 기치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당연히 그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도 변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곧 ‘당대 문화’의 총체적인 반영이고, 여기에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뉴 밀레니엄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로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콘텐츠(contents)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콘텐츠 비즈니스’가 앞으로 황금시장을 이룰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콘텐츠? 이 생경한 단어는 세기말의 하나의 핵심어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콘텐츠란 알기 쉽게 말해 ‘인터넷 인프라’라는 그릇에 담겨진 음식이다. 그릇이 아무리 이쁘고 좋아도 음식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 인터넷 인프라는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 그 자체가 된다.
콘텐츠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와 내용인 동시에, 사람을 웹으로 모으는 힘이다. 따라서 단순히 문자정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래픽일 수도 있고, 게임이나 동영상, 음악 파일일 수도 있다. 모든 멀티미디어적 요소가 콘텐츠를 구성한다. 따라서 비즈니스 사이트의 콘텐츠는 결국 수익을 올리기 위한 호객행위와 같다. 누가 더 시선을 붙드는 콘텐츠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과가 바로 콘텐츠 사업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크레비츠(crebiz)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creative business)의 합성어. 20세기는 정보화로 치닫는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컴퓨터나 테크놀로지가 아닌 각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창조산업’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전망이라는 것이 많은 미래학자들의 얘기. 미국 중소기업청도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3 밀레니엄 보고서’에서 새 천년을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는 크레비즈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중소기업 창조성 촉진법’을 제정하고 대대적인 지원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통신벤치 마킹(bench marking)
키보드로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 대신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는 ‘애플데스크 톱 인터베이스’는 원래 제록스사에서 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애플사가 ‘벤치 마킹’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컴퓨터 매킨토시를 만들어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다시 벤치 마킹해 윈도즈 3.0을 개발했다. 이는 원래 자신보다 탁월한 상대를 목표로 경영 성과를 비교 분석하고, 성과 차이를 가져오는 운영 방식을 체득하여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경영학적 기법을 뜻하지만, 이제는 ‘타인의 장점을 흡수한다’는 광의의 뜻으로 쓰인다. 모르면 배워라. 새 천년에도 이 말의 진리는 불변이다.
앞으로는 인재도 애프터서비스(AS)를 하는 시대. 일본의 한 대학은 최근 졸업생들의 취업후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인재 AS제도’를 실시하고, 교수들이 졸업생들이 취업한 업체를 찾아 현장지도까지 맡는 ‘졸업생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인력이 얼마나 현장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 대학의 기능이나 시스템도 이런 추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고해준다. 교수라는 직업이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F1족(프리 인텔리전트 부족)
21세기에는 과연 어떤 계층이 소비를 주도할까.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것이 ‘프리 인텔리전트 부족’이다. 각종 경제연구소들은 예술 정보 패션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소모임 등을 통해 이와 관련된 사람들만 교류하는 이들이 소비 주도 계층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에는 도심의 대형 오피스텔이나 첨단 아파트들이 아예 처음부터 동종 전문인만 선택해 입주시키는 방식도 등장했다.
스트리트 스피리트(Street Sprit)
세기말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변부 문화’를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서게 만드는 ‘힘의 이동’을 이룩해냈다. 그리하여 대도시 길거리의 후미진 ‘구멍가게’에서만 유통되던 힙합과 테크노는 텔레비전이라는 공식적인 백화점에서도 유통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대표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길거리 ‘야전 정신’을 지적 자양분으로 삼은 비정규 게릴라 ‘딴지일보’가 제도권으로 편입된 사실, 팬터지나 스릴러 등의 대중문학이 ‘본격문학’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 등도 앞으로의 문화 지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고한다. 이제 문화에서도 기성의 권위는 사라졌으며, 더 이상 제도권이라는 틀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도 못한다. 오로지 누가 더 창의적이며 치열한 ‘스트리트 스피리트’를 가졌는지가 성패의 결과를 말해줄 따름이다.
초일류 국가
영국의 블레어 정부는 ‘정부 현대화’와 ‘디자인’을 21세기의 국가적인 화두로 내걸었다. 프랑스도 새 천년에는 문화 일변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산업과 첨단과학에서도 일등 국가가 되자고 다짐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자’는 테마를 잡았다. 모든 나라들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식 기반 사회로 신속히 옮겨가기 위한 정보통신(IT) 인프라 구축을 착착 이행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고의 ‘디지털 국가’로 탈바꿈할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초일류국가는 21세기의 초입에서 우리의 귀를 가장 ‘괴롭힐’ 단어가 될 것이다.
인간의 얼굴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이렇게 경쟁력 배양을 위한 무한 경쟁에 들어간 가운데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 자신. 지난해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 총회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현재의 국제경제질서에 “경쟁만이 있고 인간적 배려가 없다”면서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자”고 호소했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 역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문명은 그 긍정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부와 권력의 편중, 비인간화와 개인의 무력감 확산 등의 폐해를 낳았다. 최근 유네스코가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자는 윤리적 세계화 운동을 전개하는 것처럼 새 천년에도 첨단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인간성 회복의 기치는 시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