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더라도 난 오늘 이혼하고 싶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23.8%를 차지한다. 이는 1990년 5.2%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그림 1 참조).
황혼이혼이 이슈로 떠오른 때는 1998년 9월. 당시 칠순을 맞은 이시형 할머니는 아흔 살인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 및 위자료청구 이혼 소송을 냈다. 가부장적인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이 할머니의 경제권을 박탈한 데다,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오랜 결혼생활과 노령이라는 점을 이유로 할머니의 이혼청구소송을 기각했다.
할머니는 “평생 억눌려 살아온 여성 노인이 여생이나마 남편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소망을 거부하는 판결은 여성 노인의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며 대법원에 항소했고, 결국 할아버지는 재산의 3분의 1과 위자료 5000만 원을 할머니에게 줘야 했다. 이 소송을 계기로 일반에 알려진 황혼이혼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국민연금에 의존해 노후를 살아가려던 사람에게 황혼이혼은 비상 상황이다. 이혼하면 부부가 국민연금을 나눠 가져야 하는 분할연금 제도 탓이다. 분할연금 제도란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인 부부가 이혼하면 60세부터 받는 국민연금을 양쪽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것으로, 배우자의 연금 가입 기간 중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부부가 절반씩 나눠 받게 된다. 분할연금은 이혼한 다음 3년 이내에 신청해야 하며, 재혼해도 계속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분할연금 수령자는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5111명. 이는 2007년 1701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해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그림 2 참조).
한국보다 먼저 황혼이혼이 유행한 일본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 분할 제도’를 도입한 때는 2007년. 2007년은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團塊) 세대’가 정년(60세)을 맞아 은퇴하기 시작한 때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란 말로 잘 알려진,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단카이 세대의 가정은 대부분 샐러리맨 남편과 전업주부인 아내로 이뤄져 있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후생연금 제도에서 여성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남편과 이혼하면 평생 전업주부로 산 여성에게는 제대로 된 노후대책이 없는 셈이었다. 실제로 퇴직한 남편은 이혼 뒤 후생연금을 독차지해 월평균 20만 엔을 받은 반면, 아내는 기초연금 5~6만 엔밖에 받지 못하는 예가 많았다. 이에 일본 정부가 여성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 ‘후생연금 분할 제도’다. 일본 남성이 이혼하면 이 제도에 따라 후생연금 수령액의 최대 50%까지 이혼한 아내에게 떼어줘야 한다.
아내와 헤어지면 연금의 절반을 빼앗기다 보니, 일본 남성 사이에는 ‘애처가 모임’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어떤 모임에서는 가족 간 유대를 위해 ‘가족 얘기를 들을 것’ ‘사랑의 편지를 쓸 것’ ‘가족과 대화할 것’이라는 세 가지 준수 사항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한 ‘아내에게 이기지 않는다’ ‘아내를 이길 수 없다’ ‘아내를 이기고 싶지 않다’를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30년간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보다 이혼 자체가 쉽고, 황혼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느슨해진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독립하면서 부부 관계를 유지시켜줬던 연결고리가 약해진 탓이 크다. 더는 남 눈치를 보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하루하루가 숨 막혀요. 함께 지내기가 고통스러워요.”
김영미(58) 씨는 올해 초 공기업에서 퇴직한 남편이 집안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면서 무슨 수를 내야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호소한다. 김씨처럼 남편 잔소리, 그러니까 ‘영감 시집살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남편이 퇴직하기까지는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자기 세상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남편부재(男便不在)’에 익숙했던 주부는 남편이 퇴직한 다음부터 생활리듬이 깨지자 심리적 부적응 상태에 빠진다. 일본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노부오 쿠로카와 박사는 1991년 여성의 이러한 증상을 ‘은퇴 남편 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남편 은퇴와 함께 아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자주 아프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증상을 가리킨다. 쿠로카와 박사는 노년기 일본 주부의 60% 이상이 이 증후군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남편의 잔소리가 아니라 부부간 대화 부재가 황혼이혼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현역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부부간 문제를 대화로 풀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한 다음에도 제대로 된 대화를 못하는 것이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여러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그냥 입을 봉하고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찬숙(61) 씨는 남편이 대화를 건성으로 흘려듣는 탓에 더는 대화하기가 싫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집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도 말 한마디 섞지 않는 기묘한 동거가 이뤄지는 것이다.
황혼이혼은 과도기적으로 유행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황혼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때그때 헤어지는 부부가 늘어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배우자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묻고 들어야 한다. 곪아터지기 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23.8%를 차지한다. 이는 1990년 5.2%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그림 1 참조).
황혼이혼이 이슈로 떠오른 때는 1998년 9월. 당시 칠순을 맞은 이시형 할머니는 아흔 살인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 및 위자료청구 이혼 소송을 냈다. 가부장적인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이 할머니의 경제권을 박탈한 데다,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오랜 결혼생활과 노령이라는 점을 이유로 할머니의 이혼청구소송을 기각했다.
할머니는 “평생 억눌려 살아온 여성 노인이 여생이나마 남편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소망을 거부하는 판결은 여성 노인의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며 대법원에 항소했고, 결국 할아버지는 재산의 3분의 1과 위자료 5000만 원을 할머니에게 줘야 했다. 이 소송을 계기로 일반에 알려진 황혼이혼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국민연금에 의존해 노후를 살아가려던 사람에게 황혼이혼은 비상 상황이다. 이혼하면 부부가 국민연금을 나눠 가져야 하는 분할연금 제도 탓이다. 분할연금 제도란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인 부부가 이혼하면 60세부터 받는 국민연금을 양쪽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것으로, 배우자의 연금 가입 기간 중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부부가 절반씩 나눠 받게 된다. 분할연금은 이혼한 다음 3년 이내에 신청해야 하며, 재혼해도 계속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분할연금 수령자는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5111명. 이는 2007년 1701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해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그림 2 참조).
한국보다 먼저 황혼이혼이 유행한 일본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 분할 제도’를 도입한 때는 2007년. 2007년은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團塊) 세대’가 정년(60세)을 맞아 은퇴하기 시작한 때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란 말로 잘 알려진,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단카이 세대의 가정은 대부분 샐러리맨 남편과 전업주부인 아내로 이뤄져 있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후생연금 제도에서 여성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남편과 이혼하면 평생 전업주부로 산 여성에게는 제대로 된 노후대책이 없는 셈이었다. 실제로 퇴직한 남편은 이혼 뒤 후생연금을 독차지해 월평균 20만 엔을 받은 반면, 아내는 기초연금 5~6만 엔밖에 받지 못하는 예가 많았다. 이에 일본 정부가 여성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 ‘후생연금 분할 제도’다. 일본 남성이 이혼하면 이 제도에 따라 후생연금 수령액의 최대 50%까지 이혼한 아내에게 떼어줘야 한다.
아내와 헤어지면 연금의 절반을 빼앗기다 보니, 일본 남성 사이에는 ‘애처가 모임’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어떤 모임에서는 가족 간 유대를 위해 ‘가족 얘기를 들을 것’ ‘사랑의 편지를 쓸 것’ ‘가족과 대화할 것’이라는 세 가지 준수 사항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한 ‘아내에게 이기지 않는다’ ‘아내를 이길 수 없다’ ‘아내를 이기고 싶지 않다’를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30년간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보다 이혼 자체가 쉽고, 황혼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느슨해진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독립하면서 부부 관계를 유지시켜줬던 연결고리가 약해진 탓이 크다. 더는 남 눈치를 보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하루하루가 숨 막혀요. 함께 지내기가 고통스러워요.”
김영미(58) 씨는 올해 초 공기업에서 퇴직한 남편이 집안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면서 무슨 수를 내야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호소한다. 김씨처럼 남편 잔소리, 그러니까 ‘영감 시집살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남편이 퇴직하기까지는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자기 세상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남편부재(男便不在)’에 익숙했던 주부는 남편이 퇴직한 다음부터 생활리듬이 깨지자 심리적 부적응 상태에 빠진다. 일본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노부오 쿠로카와 박사는 1991년 여성의 이러한 증상을 ‘은퇴 남편 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남편 은퇴와 함께 아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자주 아프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증상을 가리킨다. 쿠로카와 박사는 노년기 일본 주부의 60% 이상이 이 증후군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남편의 잔소리가 아니라 부부간 대화 부재가 황혼이혼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현역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부부간 문제를 대화로 풀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한 다음에도 제대로 된 대화를 못하는 것이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여러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그냥 입을 봉하고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찬숙(61) 씨는 남편이 대화를 건성으로 흘려듣는 탓에 더는 대화하기가 싫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집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도 말 한마디 섞지 않는 기묘한 동거가 이뤄지는 것이다.
황혼이혼은 과도기적으로 유행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황혼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때그때 헤어지는 부부가 늘어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배우자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묻고 들어야 한다. 곪아터지기 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