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공간이 아니라 ‘수용소’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군당국이 쏟아내는 대책과 다짐에도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 말하듯 “군대는 원래 그렇다”며 넘어가는 것이 ‘강한 군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한국군은 과연 이 일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것일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시 시계추를 뒤로 돌려보자. 2005년 6월 경기 연천군의 최전방소초(GP) 내무반에서 총기난사로 8명이 사망했다.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조문을 갔지만 유족은 거세게 항의하며 윤 장관을 시신이 모셔진 관 쪽으로 밀어버렸다. 다음 날 필자를 만난 윤 장관은 “장관직을 그만 두고 싶은 심정”이라며 거의 들지 못하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이내 청와대 직속으로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고 병영문화 혁신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병영에서 악습과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당연시하던 군대 내 구타를 금지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1987년 국방부 일반명령 38호 구타금지 지침이다. 필자는 전무후무할 만큼 강력하게 구타 근절을 천명했던 이 지침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세대다. 훈련받던 육군 훈련소 연대에서 한 기간병이 훈련병의 뺨을 때렸는데 이 모습이 중대장에게 발각됐고, 해당 병사는 즉시 영창에 갔다. 한 대도 맞지 않고 훈련기간을 마친 필자의 군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이 무렵만 해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군대문화 역시 급속도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주군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우리 군이 과거 일본군이 전수한 악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통시적으로 보면 군대 내 구타는 특정 시기에 잠깐 수면 아래로 잠복했을 뿐, 경계를 늦추면 반드시 되살아나 병영사고로 이어지곤 했다. 공시적으로 봐도 사회주의나 권위주의 국가의 징병제를 제외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 가운데 아직도 구타나 가혹행위가 문제로 남아 있는 징병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해진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한국 군대가 다른 나라 군대와 차이를 보이는 병영 시스템의 핵심은 단연 내무반(생활관)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군대에서 벌어진 각종 총기사고와 자살사고의 공통점을 꼽자면 모두 내무반 생활의 부조리에서 갈등이 촉발했다는 점이다.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우리 군의 내무반은 교육훈련과 임무수행에 지친 병사가 달콤한 휴식을 누리는 생활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수용소 개념의 구속 공간에 가깝고, 어쩌면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은 고통의 공간일 수도 있다.
훈련은 적당히, 생활은 힘들게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일본 자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군의 전통이 한국 군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기합’이라는 일본군 용어가 ‘얼차려’로 바뀌는 데 40년이 걸렸다. 절대다수의 병사가 전력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내무반 생활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물론 최근 들어 내무반 구조를 혁신한 개인 침대형 생활관을 건립하는 등 병영시설 현대화를 추진하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내무반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본질에도 큰 변화가 없다.
혹자는 “군대에 사생활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군대는 오히려 조직의 근본 목적과 존재 이유가 왜곡되기 십상이다. ‘훈련은 힘들게, 생활은 즐겁게’라는 강한 군대의 모토는 ‘훈련은 적당히, 생활은 힘들게’라는 뒤틀린 병영문화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이 지침을 통해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효과는 그때뿐이다.
묘하게도 우리 군은 장병이 사생활을 누릴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고수한다. 군대는 흡사 교도소처럼 사생활과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조직이며, 그래야 상명하복의 군 기강이 바로 선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누구도 세계 최강임을 부인할 수 없는 미군만 봐도 이는 사실이 아니지 않은가.
다시 해병대 총기사고로 돌아가보자. 병영문화 혁신의 일환으로 군에서는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를 위해 고충처리위원회, ARS 전화상담,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등의 제도를 사단에 설치·운영한다. 그런데 이번에 총기사고가 발생한 해병대의 경우 올해 4월 국방부 감사관실이 구타 관련 감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믿기 힘든 사실이 확인됐다. 해병 1사단 고충처리위원회와 ARS 전화상담에 접수된 구타 관련 사건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건도 없었으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은 지난해 292회의 구타 관련 상담을 했지만 병사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닌 중대 행정관의 요청에 의해 시행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충을 처리하는 제도 자체가 아무런 효과도 없이 운영되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 국방부 감사관실 보고서에는 구타사고가 발생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우려한 지휘관이 자체 조치로 종결하거나 사건의 은폐 및 축소를 조장하곤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는 개인적 고충을 상담할 수 있는 권리가 완전히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군 병영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병사의 기본권에 대한 우리 군의 굴절된 인식이 빚어낸 또 다른 결과다. 병사의 기본권에 대한 공감대와 개념이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한국의 징병제는 흡사 진화가 멈춰버린 유기체나 다름없다.
특히 이러한 기본권 개념의 부재가 ‘거칠게 다뤄야 말 잘 듣는 강한 전투원이 된다’는 병사들의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입영하기 전 ‘기수열외’의 존재를 알고 있던 병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신병교육을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러한 악습의 존재는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에는 모든 병사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한다. 이러한 문화에 길들여지면 ‘전쟁이 발발해도 민주주의 타령만 할 거냐’며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체계를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집단의식에 복종하게 된다.
창의적인 병사가 필요한 시대
2005년 6월 25일 국군수도병원에서 경기 연천군의 최전방소초(GP) 총기사건 희생 장병 8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무엇이 강한 군대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대전의 성격과 첨단 무기체계는 뛰어난 전문성, 용기를 지닌 수준 높은 전투원을 요구한다. 오늘날의 한국군이 유사시 치러야 할 전쟁은 옛 일본군의 태평양전쟁도, 1950년대 6·25전쟁도 아니다. 이른바 ‘4세대 전쟁’을 수행하려면 가장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병사가 필요한 새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를 무시한 채 오랜 고정관념과 자학적 인간성에 기초한 잘못된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진화를 가로막고 약한 군대, 지는 군대로 가는 첩경이나 다름없다. 이 점을 간과하면 한국의 징병제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기가 곧 닥쳐올 수 있다.
김종대 편집장은 14대 국회 국방위원회 비서관으로 안보정책을 다루기 시작한 이래 16대 대통령직인수위 국방전문위원,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2007년 공직을 접고 외교안보 전문지 ‘D&D포커스’를 창간해 현재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