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6

..

고장 난 막후 채널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7-15 17: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평양의 돌연한 ‘폭로’로 세상이 깜짝 놀랐던 5월 남북 정상회담 비공개 논의는 최근 새로운 퍼즐 조각이 공개되면서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지난해 11월 남북관계 경색 문제를 논의하려고 국가정보원과 국가안전보위부 고위 당국자가 평양과 서울을 교차 방문했다는 소식 말입니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11월 논의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과 두 차례 정상회담 개최라는 잠정합의를 도출했고, 5월 청와대와 국방위원회의 비공개 접촉은 실무라인에서의 논의를 ‘상정’한 최고위 기관 간 만남이었다는 해석이죠.

    이렇게 정리하면 5월 접촉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앞 테이블의 논의를 다음 테이블로 물 흐르듯 연결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 5월 접촉에 참여한 국정원 홍창화 국장에게로 초점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대통령 비서관이 참석했으니 주도권을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 연결할 책임은 11월 논의를 담당했던 국정원의 대표가 맡아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홍 국장은 이전 정부에서 남북 접촉을 도맡았던 옛 국정원 대북전략국 멤버는 아니라고 알려졌습니다. 김보현-서영교-서훈으로 이어지는 대북전략국 라인은 2000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스타’로 떠올랐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 후계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았죠. 그러나 이명박 정권 출범 후 국정원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대부분 대북 업무에서 떠났습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은 “간첩을 잡아야 할 정보기관이 대화를 맡는 것은 문제”라고 했지만 ‘이전 정부의 부역자’라는 정서적 반감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장 난 막후 채널
    이렇게 해서 남북 막후접촉의 오랜 경험과 인간관계는 허공으로 사라졌고, 정상회담을 하려 해도 노하우를 가진 채널이 마땅치 않은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죠. ‘당장의 호불호로 긴 호흡을 놓치면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온다’는 고전적인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되든 다음 혹은 그다음 대통령은 이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