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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의 시대

고기가 진리라굽쇼? 100년쯤 뒤엔 육식이 야만의 징표가 될 수도

비건의 시대

2019년은 절대채식주의자 비건의 해가 될 것인가. 2018년 영국, 미국, 캐나다, 브라질 비건들의 육식 반대 시위에 등장한 다양한 모습들. [shutterstock, REX]

2019년은 절대채식주의자 비건의 해가 될 것인가. 2018년 영국, 미국, 캐나다, 브라질 비건들의 육식 반대 시위에 등장한 다양한 모습들. [shutterstock, REX]

‘2019년은 비건의 해가 될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연말 발표한 ‘이코노미스트 세계경제대전망 2019(The World in 2019)’에 담긴 전망 가운데 하나다. 남북평화를 열망하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비건’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착각해선 안 된다. 비건 대표의 영어철자는 Biegun이고 이코노미스트가 언급한 비건의 영어철자는 Vegan이다. 절대채식주의자 내지 채식근본주의자로 번역되는 단어다.


채식주의 5단계

채식주의(Vegetarian)의 역사는 깊다. 고대 인도의 불교도와 자이나교도들이 살생을 막고자 채식주의자가 됐다. 인도 최초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의 초대 왕인 찬드라굽타와 불교도가 된 3대 왕 아소카도 채식주의자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와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 ‘변신이야기’를 쓴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도 채식주의자였다. 

역사가 깊은 만큼 그 수준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낮은 단계에서 최고 단계까지 보통 5단계로 구별된다. 소나 돼지는 안 먹고 닭고기 같은 조류는 섭취하는 폴로(Pollo), 육상동물은 기피하되 물고기와 조개 같은 수상생물은 먹는 페스코(Pesco), 어패류도 피하되 달걀이나 우유, 꿀처럼 동물에서 추출된 음식은 허용하는 락토오보(Lacto-Ovo), 달걀은 빼고 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그리고 이 모두를 피하고 오로지 채식만 하는 단계가 비건이다. 

요즘에는 비건을 능가하는 채식주의자도 등장했다. 식물의 생명을 지키고자 뿌리와 잎은 먹지 않고 그 열매인 과일과 곡식만 섭취하는 프루테리언(Fruitarian)이다. 하지만 채식주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사람을 비건으로 통칭한다. 



비건이란 단어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다. 1944년 11월 유제품도 거부하자는 채식주의 계간지 ‘비건뉴스(The Vegan News)’가 창간되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당시 이 잡지를 창간한 도널드 왓슨은 Vegetarian 철자의 맨 앞 3자(Veg)와 맨 뒤 2자(an)를 결합해 이 단어를 만들었다. 잡지 창간과 거의 동시에 ‘채식주의협회’로부터 독립한 ‘비건협회’가 설립된다. 그래서 비건들은 11월 1일을 ‘세계 비건의 날’로 기념하고 11월 한 달 동안 비건주의(Veganism)를 널리 홍보한다. 

비건주의란 비건의 음식철학을 기반으로 어떤 형태로든 동물을 도살, 착취, 감금하는 것을 반대하는 강력한 동물보호주의를 뜻한다. ‘먹방의 나라’ 한국에선 비건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서지만 해외에선 비건주의가 하나의 사상으로서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사상가가 ‘동물 해방’(1975)을 펴낸 호주 출신 철학가 피터 싱어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인 그는 인간에 적용되는 윤리를 다른 생명체에 적용하지 않는 비윤리성을 파고들며 이를 ‘종차별’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의 사상은 윤리적 비건주의로 분류되는데, 이후 일체의 낚시와 사냥은 물론 축산업(특히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는 환경적 비건주의와 육식이 남성적 폭력의 산물이라는 시각에서 채식주의와 페미니즘을 연결하는 캐럴 F. 아담스 같은 페미니스트 비건주의로 분화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비건 급증

‘대체고기’ 스타트업 ‘비욘드 미트’의 버거 패티 ‘비욘드 버거’(왼쪽)와 닭고기맛 대용식품. [shutterstock]

‘대체고기’ 스타트업 ‘비욘드 미트’의 버거 패티 ‘비욘드 버거’(왼쪽)와 닭고기맛 대용식품. [shutterstock]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1992)은 이런 비건주의의 흐름을 토대로 출간됐다. 하지만 실제 비건의 수가 급증하는 현상은 2010년대 후반부터 발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의 3.4%가 채식주의자고, 그중 비건은 0.4%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8년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한 세대)의 25%가량이 채식 중심의 생활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2017년 실시한 다른 조사에서 자신이 비건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5%로 치솟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영어로 ‘비건주의’를 조회하는 수치가 2009년을 기점으로 ‘채식주의’ 조회수를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2013년부터는 프랑스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 됐다. 

식품업계는 이미 이런 현상에 발맞춰 비건용 제품을 내놓거나 개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식품분류용어로 비건을 사용하는 것을 2015년부터 의무화했다. 패스트푸드 대명사인 맥도날드는 2017년부터 유럽에서 고기나 치즈를 넣지 않은 ‘맥비건’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외식 프랜차이즈 T.G.I.프라이데이스도 채식 메뉴를 추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대체고기’ 개발이 비건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진짜 고기를 씹는 듯한 식감을 제공하는 식물성 단백질 제품의 개발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대체고기 매출은 17% 증가했고, 스타트업 ‘비욘드 미트(Beyond Meat)’가 개발한 버거 패티 ‘비욘드 버거’의 매출은 70%나 상승했다. 

그것이 일단 이념화되면 그 이념에 투철한 전투적인 행동주의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레닌주의, 환경주의에서 그린피스, 여성주의(페미니즘)에서 워마드가 출현한 것처럼 비건주의자 가운데서도 동물보호운동과 결합한 전투적인 행동주의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외신에서는 전투적 비건들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유럽 고급 스테이크 레스토랑 인근에 가축 도살 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틀어놓는다거나 관련 영상을 공공장소에 투사하며 “동물 살해를 멈추고 비건이 되라”는 기습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정육점 유리창을 깬다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로 비건주의 구호를 낙서하는 공격 행위도 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 곁에서 그 모습을 촬영하고 기록하며 침묵으로 항의하는 ‘돼지 감시(pig vigil)’ 시위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2018년 12월 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에서 ‘코트 한 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이라는 팻말 아래 동물보호단체 회원 수십 명이 벌거벗은 채 가짜 피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산부가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증가와 비건주의 확산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보신탕은 안 된다는 논리의 궁극은 결국 비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코웃음 치겠지만 100년쯤 뒤에는 ‘육식이 곧 야만의 징표’인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간동아 2019.01.04 1171호 (p8~9)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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