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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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걸린 이주노조 판결 대법원이 사법 불신 조장

‘신중한 재판’과 ‘늑장 재판’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8-31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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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걸린 이주노조 판결 대법원이 사법 불신 조장
    ‘때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오래된 서양 법언(法諺)이 있다. 송사가 벌어진 후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는 당사자의 심경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당연한 얘기다. 금세 잊혔지만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으로 6월에서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결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설립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소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국사건’의 판결이 지연된 배경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대법원은 늘 방대한 사건기록과 사안의 중요성을 말하며 면책을 시도한다. 대법관 업무가 과중하다는 볼멘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 가운데 당사자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란 없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신중하게 사건을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정도가 심한 경우가 있다.

    2005년 5월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 91명은 서울지방노동청(현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냈다. 노동관계법상 설립 신고의 필수요건에 외국인등록번호 등이 포함되지 않는데도 당국이 대표가 불법체류자라며 접수를 거절하자 같은 해 6월 소송을 냈다. 1심에선 노동자들이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라고 인정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7년 2월 일이다. 2심 선고까지 1년 9개월이 걸렸다.

    다시 노동청의 상고로 확정이 미뤄졌고, 대법원은 8년 4개월간 침묵한 끝에 올해 6월 원심을 확정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설립하려던 외국인들은 결국 소송을 낸 지 만 10년이 넘어서야 확정 판결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우리 사법부는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을 소비했다. 그사이 소송을 냈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속속 강제 출국됐고, 끝내 최종 판결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 사건에서 절실히 드러난 바처럼, 판결이 지나치게 늦어지면 당사자들은 원하던 판결을 받고도 권리구제의 적기를 놓쳐 당초 얻으려던 권리나 이익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예로부터 ‘때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사건 처리 능력이 긴요해 난다 긴다 하는 ‘정통 법관’ 위주로 뽑아 구성됐다는 우리 대법원은 왜 이렇게 심리를 질질 끌었을까. 법조계에선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노동계의 민감한 쟁점인 만큼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인데도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었다.

    불법체류 중인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의 지위와 관련되는 일이니 명석하고 정의로운 판단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 법리적 쟁점도 일반 사건에 비해 유달리 복잡한 것도 아니다. 대법원이 밝힌 것처럼 미국,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연합 국가에선 불법체류자의 고용 제한이나 강제퇴거 등 행정적 조치는 취하면서도 노동조합 활동을 포함한 근로자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이미 확립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걸 확인하는 데 8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결론에 반대한 대법관도 단 1명(민일영)뿐이었다.

    재판이 오래 걸린다고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건을 면밀하게 판단하려는 게 아니라 정권과 사회의 반응이 두려워 판결을 미룬다면 이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진다. 대법원이 ‘신중한 재판’과 ‘늑장 재판’의 차이를, 그리고 그 엄중한 책임에 대해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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