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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왁자지껄 그곳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강화장 예찬

왁자지껄 그곳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왁자지껄 그곳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강화장에 나온 할머니의 좌판 물건.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모습에서 인품이 느껴진다.

인천 강화도에 가면 풍물시장이 있다. 2, 7일에 서는 오일장이지만 장날이 아닌 날에도 건물 안 상설시장은 문을 연다. 장날에는 건물 밖 야외에 많은 장꾼이 모인다. 강화의 할머니 농민들이 채소 조금, 곡물 조금 쌓아놓고 파는데 하나같이 탐나는 물건이다.

내 경험으로는 강화도 농산물은 무엇이든 맛있다. 같은 품종의 쌀이라도 강화도 것이 더 차지고, 검정콩은 밤처럼 달며, 인삼은 단단하면서도 향이 짙다. 땅이 좋은 데다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 더 맛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조금 신비화하자면, 강화도는 기운이 다르다. 조상들도 이런 기운을 알았는지 강화도를 특별한 땅으로 여겼다. 강화도 복판에 우뚝 솟은 마니산을 옛 사람들은 마리산이라 했다. 머리산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려니 마니산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산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을 두고 천제를 지낸 역사는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강화도에는 뭔지 모를 좋은 기운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고양시 일산에 살다 보니 강화장까지는 다리 하나 건너면 금방이다. 이것저것 장 볼 일이 있다 싶으면 그냥 강화도로 내달린다. 시장 건물 2층에서 밴댕이비빔밥 한 그릇 먹고 슬슬 구경에 나서는데, 찬찬히 보면 두어 시간 걸린다. 도심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싱싱하고 싼 농수산물이 널렸다. 무엇보다 물건의 불규칙한 진열이 장보기의 흥미를 돋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다 예측할 수 있어 장보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이런 재래시장에서는 의외의 물건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마늘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과 품질을 일일이 따져가며 시장 한 바퀴 돌고 선택하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대형마트였다면 단 10초 만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장보기의 즐거움을 모르면 이 같은 재래시장 순례를 시간 낭비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하는 이런 행동을 정신 건강에 좋은 여가 활동이라 여기면 된다.

생산자가 직접 진열한 좌판을 보면 주인의 인품이 드러난다. 대충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물건은 확실히 질이 떨어진다. 말끔히 정리해놓은 좌판을 볼 때면 그 물건을 사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화장에 나온 어느 할머니의 물건을 살펴봤다. 오른쪽 끝의 버섯은 운지인 듯싶었고, 그 곁의 가느다란 줄기는 말린 고구마줄기였다. 그 위는 오가피 열매와 수피, 그 아래는 수박껍질 말린 것이고. 말린 수박껍질은 처음 봤는데, 차로 마신다고 했다. 그 왼쪽에는 호박고지와 말린 옥수수수염이 있었고, 제일 왼쪽에는 푸성귀가 놓여 있었다. 다 산에서 뜯어온 것이라 했다. 단아한 분위기의 좌판에 넋을 놓고 있다가 할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얼굴은 안 나오게 할 것이라 말씀 드렸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편하게 찍으라는 뜻으로 읽혔다.



할머니가 진열해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한식당의 상차림을 떠올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차림 모양새만으로도 겉멋 잔뜩 든 음식, 열정 가득한 음식, 게으른 음식, 속이려 드는 음식, 소박한 음식, 정직한 음식을 알아낼 수 있다.

한식 요리사는 상차림에 대해 무척 많이 고민한다. 반찬 때깔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많은 탓이다. 이런 때는 음식의 원재료가 깔려 있는 재래시장에 가보면 큰 도움이 된다. 생산자를 만나보고 ‘자연의 배치’에 대한 고민도 하다 보면 혜안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에만 있으면 안 보인다. 수도권이라면 강화장을 적극 추천한다.



주간동아 2011.08.16 800호 (p62~62)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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