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2

2011.01.24

동네의 모습, 다시 보이다

‘한국 주거의 공간사’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1-24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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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의 모습, 다시 보이다

    전남일 지음/ 돌베개/ 456쪽/ 2만2000원

    ‘한국 주거의 공간사’(이하 공간사)를 읽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추억에도 잠겼다. 이 책은 1876년 개항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를 공간사적 관점에서 정리했다. 낯선 건축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어렵지 않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두꺼운 분량에 담긴 다양한 주거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았거나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 모두 담겨 있다.

    나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인근에 산다. 보문시장 근처에는 단층 한옥집이 모여 있다. 이곳에 이사 온 직후 좁은 길과 빼곡한 한옥집이 신기해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저 누빌 뿐 언제, 어떤 이유로 한옥집이 들어섰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보문동을 비롯한 돈암동, 안암동, 동선동 일대는 1936년 토지구획정리사업 때 만들어진 신주택지다. 토지 이용 효율을 높이려고 토지를 정형화했다. 전국이 이 표준에 따라 신시가지를 만들면서 실핏줄처럼 얽혀 있었던 전통 도시 모습이 무너졌다고 한다. 표준은 오늘날 일반 단독주택지의 기본 골격으로 남았다.

    내가 사는 주거 형태는 연립주택이다. 똑같은 모양의 주택 4채가 줄지어 서 있다. 도시 한옥에 있던 여유 공간인 마당이 사라지고 연립주택이 땅을 꽉 채웠다. 1980년대 후반 서울에는 법 허용 범위에서 토지를 최대한 이용하고 확장하는 붐이 일었다. 하지만 ‘과도한 겹집화’는 거주 환경의 질적 악화를 불렀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주차된 차로 골목은 늘 붐비며, 창문을 열면 맞은편 집 거실이 훤히 보인다. 공간의 ‘불편함’에도 역사가 있었다.

    한 채 남은 도시 한옥이 지난해 밀리더니 그 자리에 원룸 건물이 들어섰다. 주변 대학가 학생들을 겨냥한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요즘 젊은 세대는 공간의 질을 중시해 낙후한 연립주택은 피한다”고 말했다. 1~2인 가구의 증가는 원룸,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을 확산시켰다.

    도시 한옥 상가가 줄지어 있던 보문시장에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상복합 아파트는 넓은 현관 전실, 거실과 분리된 가족실 등 곳곳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공간이 있다. 한 세대 안에서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뚜렷하다. 가족 간에도 서로 만나기보다 각자의 생활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공간에 반영된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사는 동네가 새롭게 보이고, 한국 주거 공간사의 한 면이 읽혔다. 저자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는 전작 ‘사회사’와 ‘미시사’를 양세화 울산대 교수, 홍형옥 경희대 교수, 손세관 중앙대 교수 등과 함께 썼다. ‘공간사’는 전 교수 혼자 집필했다. 이 책은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에 이은 근현대 주거 역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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