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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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그리고 서울

  • 김민경 holden@donga.com

    입력2009-03-27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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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그리고 서울

    종이 울리고, 꽃이 피는 3월 패션계에선 ‘서울의 찬가’가 울려퍼집니다. 패션위크를 찾는 외국 바이어가 더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우리도 한 벌씩 사야겠죠? 인기 디자이너 지춘희 씨의 지난 서울패션위크 장면(위)과 서울패션위크를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 이번에도 행사장에 시장이 방문할 계획이라네요.

    요즘 제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은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와 동아TV의 ‘워너비 패션디자이너’입니다. 둘 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출연해 일정 기간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매주 최하점을 받은 사람은 짐을 싸야 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요, 예쁜 것 좋아하는 사람 둘만 모이면 화제가 될 정도로 인기예요. 패션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비즈니스이자 예술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를 궁금해하는 한국판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와 ‘워너비 패션디자이너’의 결과가 3월26일부터 4월2일까지 열리는 ‘2009 서울패션위크’에서 공개된다고 해요. 서울패션위크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다음 시즌의 ‘신상’을 미리 보여주고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으며 패션전문가들의 반응도 살피는 패션쇼입니다. 현재 서울에서 열리는 2대 패션쇼는 서울패션위크와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회)인데요, 올해 SFAA는 3월19~21일 먼저 진행됐어요(두 단체는 서로 우호적이진 않아요). 패션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현장에서도 느껴진답니다. 10~20분에 불과한 쇼를 보기 위해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행사장 밖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거든요. 매번 가설무대가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정도죠.

    패션의 속성이 ‘환상’이지만, 서울패션위크와 SFAA만큼 ‘환상’적인 이벤트도 없을 것 같아요. 겉보기엔 화려한데 속은 엄청 굶주려 있거든요. 세계 4대 도시의 ‘패션위크’는 치열한 비즈니스가 벌어지는 ‘마켓’입니다. 전 세계 패션바이어들이 몰려들어 북적북적 옷 주문도 하고 디자이너와 계약도 맺죠. 전 세계의 쇼퍼홀릭들이 쇼핑하러 몰려가는 기간이 아니고요(아니, 그럴지도!). 그런데 서울의 패션쇼에서는 전 세계는커녕 국내 바이어들도 찾아보기 힘들어 장소 임대비며 조명비, 모델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제가 다 아득해집니다. 올해도 서울패션위크에 해외 바이어가 ‘달랑’ 85명 참석합니다. 그럼에도 지난해부터 형편이 ‘팍’ 좋아진 건 패션에 애정이 많은 멋쟁이 서울시장의 배려로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이라네요.

    서울패션위크는 조직위원장부터 참여 디자이너들까지 한목소리로 “비즈니스, 또 비즈니스!”를 외치고 있고, 저도 마음 같아선 바이어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프레젠테이션룸에 들어가 “여기부터 저기까지 걸린 옷 다 싸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뜻을 같이하는 분은 후원사인 롯데닷컴(www.lotte.com)에 접속해 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의 옷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모처럼 대형 백화점이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하긴 했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은 정말 백화점에 맺힌 게 많아요. 백화점이 마진도 많이 떼어가고, 골라서 주문해가면서도 업체에 반품을 떠넘기기 때문에-손 안 대고 코 푸는 데 1등이죠-보통 디자이너들은 백화점에서 옷을 팔 엄두를 못 내죠. 외국의 경우 숍 바이어들이 고객에 맞게 옷을 사가고 있어요. 안 팔린 옷은 폭탄세일을 하든, 직원끼리 나눠 입든 알아서 한답니다(그 대신 디자이너에게 고객의 취향에 맞게 수정을 요구해요. 마케팅 전략이 철저하달까요).



    ‘프로젝트 런웨이’의 한국판과 미국판에 나오는 ‘미션’ 수행을 비교해볼 때 한국 디자이너들이 주눅 들어 보이는 건 ‘환상’이 증발된 현실에서 시작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정은 딱하지만 비싼 디자이너의 옷을 비싸서 어떻게 입느냐고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골라보세요. 누가 알아요, 그가 샤넬이 될지, 마크 제이콥스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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