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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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꼼짝 마! DNA는 형사 콜롬보

강력사건 해결 위한 ‘유전자 자료은행’ 필요 … 관리대상 제한 등 안전장치 갖춰야

  • 한면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검색실장 생물공학박사 hmyunsoo@nisi.go.kr

    입력2002-12-18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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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꼼짝 마! DNA는 형사 콜롬보

    서울대 의대 법의학연구소 연구원들이 구강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다.

    유전자 자료은행이란 강력범들의 DNA 프로필을 DNA 분석기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범죄사건의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 프로필이 확보될 경우 이를 검색해 신원을 확인하는 국가 차원의 과학수사 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범죄자 등의 DNA형을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전산자료로 기록·관리하여 범죄수사 및 신원확인 등의 자료로 활용하는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대검찰청 등 수사당국에서는 ‘재범을 방지하고, 과학수사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유전자 자료은행을 설립할 것을 주장해왔다. 유전자 자료은행의 자료가 수사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에 사건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2년 2월 서울 성북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강도 강간 살인사건 수사 때 담배꽁초와 피해자의 몸 등에서 서로 다른 3명의 DNA 프로필을 확보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DNA 프로필을 이용해 미제 사건을 검색, 2002년 1월부터 2개월에 걸쳐 발생한 성북경찰서 내 또 다른 강간사건과 남부경찰서, 안양경찰서, 청주서부경찰서의 강간사건도 이들의 소행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제 사건 해결 얼마든 가능

    10여년 전에 일어났던 화성경찰서 9차 및 10차 연쇄 강간 살인사건의 용의자 DNA형과 대전·충청 일원에서 다수의 여성을 강간한 강간범, 용산경찰서의 10여명의 강간 용의자 DNA 프로필 등이 모두 확보되어 있어 이들 사건도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범죄 수사에서 DNA 프로필이 중요한 단서가 되자 체계적인 유전자 정보 관리를 위해 유전자 자료은행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 자료은행은 △사건현장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 프로필(검색자료) △전과자 등 법적 관리대상자의 DNA 프로필(검색 대상자) △무연고 변사자, 실종자, 미아 또는 이산가족 관련 DNA 프로필(신원확인 대상자) △수사관과 감정관의 DNA 프로필(수사용 참고자료)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수사자료로 활용하게 한다. 유전자 분석에 의한 범인 색출은 한 사람의 DNA 프로필이 신체 부위나 시간의 경과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이다.



    1994년 세계 최초로 유전자은행 근거법을 마련한 영국은 현재 200만건 이상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건현장에서 확보한 DNA 프로필로 약 6만8000명의 사건 용의자들을 확인했고, 한 사건현장에서 확보한 DNA 프로필과 다른 사건현장에서 확보한 DNA 프로필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는 등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효과가 예상보다도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성폭행범으로 제한했던 대상자를 살인, 강도나 차량절도 범행자들로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도 98년 모든 주에서 입법을 완료, 연방 차원의 유전자 정보은행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최초로 2000년 2월 정부 산하 연구소에 유전자 자료은행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고, 싱가포르에도 유전자 자료은행이 있다. 일본 경찰청 산하의 과학경찰연구소는 관련 입법을 완료해 2003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86년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유전자 분석기법을 도입하고, 연구 및 개발에 들어갔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부터 성폭력 범죄 및 강력사건의 범인 식별 등 범죄수사와 대형재난·재해사건의 신원확인 등에 유전자 분석기법을 활용하게 되었다. 92년 3월 국내 최초로 의정부경찰서 미성년자 성폭행사건에 유전자 분석기법을 적용하였으며, 이후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97년 대한항공기 추락사건, 99년 씨랜드 화재사건, 2002년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및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등에도 첨단의 유전자분석 기법을 통해 범인 식별 및 신원확인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전과자의 재범에 대비하고, 강간 등의 범죄 감정물에서 혈흔·모발·정액 등이 채취되면 용의자의 신원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수사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돼 93년 5월 정부 행정쇄신위원회에 `유전자 자료은행의 설치를 제안했고, 94년 9월 ‘유전자 자료은행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 의원입법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별도 입법을 추진하던 법무부가 유전자 정보은행 설치법(안)을 제출하자 정부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94년 12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에 과학수사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음해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유전자 자료은행 대상기관으로 선정했으나 대검찰청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나 성폭력 사범 등의 유전자 정보를 보관하는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이 다시 추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검이 지난달 20일 여성부가 주관한 `‘성폭력 근절 심포지엄’에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사건 발생시 효과적인 범인 검거를 위해 관련 범죄자들의 유전자를 별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 그러나 인권·시민단체 등은 ‘인권침해’ 등의 이유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유전자 자료은행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이 인권침해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제도적으로 △DNA 프로필 관리 대상자를 법적으로 제한 △대상자의 비밀보호를 보장 △질병이나 장애 및 신체상의 특성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외한 정보만을 수록하도록 자료 제한 △수사기관은 범죄사건 수사, 검색 대상자 확인 및 검거에 관한 인적사항을 관리하고 감정연구기관이 DNA 감정, 입증 사항을 상호 연계 관리함으로써 특정 권력기관의 정보 독점을 지양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분석한 DNA와 감정시료 잔량의 보관관리 및 분석과정에 대한 엄격한 관리 △범인 식별에 필요한 유전자 정보만 분석해 자료로 관리 △민·관·학이 참여하는 연구 및 기술개발 자문기구의 운영 △대상자의 시료 채취를 채혈에서 구강 내 세포로 전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산관리에 있어 △유전자 자료 입력 및 조회자 제한 △사이버 테러를 대비한 국가전산망 수준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범죄 사건현장의 인체 감정물들은 보관상태만 양호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지 DNA 감정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증거물 보관관리를 의무화하면 언제라도 사건은 해결될 수 있다. 미제로 되어 있는 화성 연쇄 강간 살인사건의 감정물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과학수사를 위해 유전자 자료은행이 설립돼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유전자 분석기능과 유전자 자료은행이 동시에 운영돼야만 막대한 인력·예산 낭비 및 수사상 비능률을 방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에서 유전자 자료를 독점할 경우 타 기관과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못하고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유전자은행의 조속한 실행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이 부분을 심도 있게 검토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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