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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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쑤욱, 머리엔 쏘옥… ‘명랑과학’아 놀자!

놀이·연극 등과 접목 딱딱한 이미지 탈피 … TV에서도 소개 ‘인기 짱’

  • <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 dream@donga.com

    입력2004-10-15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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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는 쑤욱, 머리엔 쏘옥… ‘명랑과학’아 놀자!
    3월25일 서울대 화학과 1학년 강의시간. 신입생들에게 일반화학을 가르치는 김희준 교수는 한 학생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종이로 만든 커다란 왕관을 씌웠다. 왕관 정면에는 별이 달려 있었고, 바로 밑에는 네온(Ne)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별을 중심으로 양쪽 방향으로 탄소 질소 산소 불소 등 여러 원소 이름이 왕관을 장식했다. 왕관을 쓴 학생은 어리둥절해했고, 강의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네온은 가장 안정적인 원소여서 ‘귀족 가스’(noble gas)라 불렸습니다. 모든 원자는 귀족이 되고 싶어합니다. 왼쪽에 있는 리튬은 전자 하나를 주고, 오른쪽 불소는 전자 하나를 받아 귀족이 됩니다. 그래서 리튬이 양이온이 되고, 불소는 음이온이 되는 것입니다.”

    김교수의 강의시간에는 늘 재미있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 그리고 그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을 이용해 원자, 원자핵, 양성자, 쿼크(소립자)로 이어지는 원자의 구조를 설명한다. 학생과 돈을 주고받으며 화학 결합형태의 하나인 공유결합을 이해시킨다. 이처럼 재미있는 강의로 김교수는 2년 전 서울대 자연대에서 교육상을 받기도 했다.

    “외국 교수들은 고분자를 설명하기 위해 강의실에 길게 늘일 수 있는 껌 같은 물질을 갖고 오기도 합니다. 강의가 즐거워야 학생들도 흥미를 갖고 배우려고 하니까요.” 김교수의 말이다.

    웃고 떠들며 몸으로 과학을 즐기는 ‘명랑과학’이 뜨고 있다. 이전에는 ‘과학’ 하면 뭔가 어렵고 딱딱한 것이 떠올랐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도 ‘과학은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학교를 비롯해 전시장, 강연회, TV,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랑과학’이 인기를 모으며 과학 대중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재미는 쑤욱, 머리엔 쏘옥… ‘명랑과학’아 놀자!
    서울 여의도 LG쌍둥이빌딩에 있는 LG사이언스홀은 4월부터 ‘사이언스 드라마’라는 과학연극을 시작했다. ‘과연 성공할까’ 싶었던 과학연극은 전시관을 찾은 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고정 코너로 자리잡았다.

    40∼50명의 학생들이 연극이 펼쳐지는 방으로 들어가면 마법사나 찰리 채플린으로 변장한 연극배우들이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온다. 배우 앞에는 갖가지 실험 장비들이 놓여 있다. 배우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학생들의 머리에 자석을 떨어뜨리는 등 갖가지 실험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자석을 공중에 띄우는 실험. 마법사가 액체 질소로 냉각한 초전도자석을 네모난 판 위에 올려놓으면 자석이 공중에 붕 뜬다. 순간 학생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온다. 학생들은 “사진으로만 보던 초전도자석을 눈으로 보니 너무 신기하다”며 입을 모은다.

    재미는 쑤욱, 머리엔 쏘옥… ‘명랑과학’아 놀자!
    과학연극은 지난 3월 서울과학관에서 과학연극 전문회사인 ‘매드사이언스’가 ‘아슬아슬 실험놀이’라는 30분짜리 연극을 공연하면서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였다. 배우들이 바늘침대에 올라가 무거운 추를 던지며 ‘위험천만한’ 과학실험을 하는 동안, 관객들은 웃고 몸을 흔들며 과학을 마음껏 즐겼다. 이 공연은 보름 동안 1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올해는 한국물리학회 탄생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울대 자연계 수석은 인터뷰에서 으레 “물리학자가 꿈”이라며 물리학과를 선택했으나 지금은 우수 학생들이 대거 의대로 빠져나가고, 고등학교에서도 물리를 선택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위기’를 맞아 한국의 물리학자들이 마련한 방안 중 하나가 ‘즐거운 물리학’이다. 근엄할 것만 같은 물리학자들도 직접 명랑과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국물리학회 홍보간사인 포항공대 김승환 교수(물리학)는 “6월에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와 물리학’이라는 행사를 연다”며 “학생들과 물리학자들이 롤러코스터 등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물리학의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물리학 교수들은 지난 4월 부산과학고를 찾아 과학영재들과 만나면서 ‘권위적인’ 만남 대신 넥타이 풀어 젖히고 학생들과 어울려 서로의 고민과 꿈을 나누는 떠들썩한 모임을 갖기도 했다.

    재미는 쑤욱, 머리엔 쏘옥… ‘명랑과학’아 놀자!
    TV에서도 명랑과학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SBS ‘호기심 천국’의 성공을 계기로 교육방송(EBS)은 올 3월부터 과학과 영화, 퀴즈를 결합한 ‘씨네퀴즈 과학을 찾아라’를 시작했다. 이 방송에서는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을 보며 훌라후프의 원리를 퀴즈로 풀고, 온 가족이 나와 우선권을 두고 줄다리기로 승부를 겨룬다. 프로그램 진행도 개그맨이 맡아 딱딱한 과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KBS, MBC 등도 빵, 달걀 등 생활 속 소재에 숨어 있는 과학원리를 발견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EBS 홍보실의 임민효씨는 “씨네퀴즈는 EBS의 성인 프로그램 중 시청률 3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라며 “명랑과학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도 명랑과학 바람은 뜨겁다. 일부 수학 교사들은 ‘파이(π)의 날’인 3월14일, 수학시간에 학생들과 동그란 모양의 빵을 먹으며 π의 원리와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포항공대에서는 같은 날 ‘3.14…’로 끝없이 이어지는 π의 숫자들을 대학 학생회관 벽에 가득 붙이고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등과 일치하는 π의 숫자를 찾아오면 상품을 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경기 일산 백마중학교의 김영학 교사는 독특한 명랑과학 수업을 펼친다. 대표적인 것이 과학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예를 들어 가수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생물의 무성생식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바꿔 부른다. ‘암수 구별 없는 생식은 무성생식/ 무성생식에는 네 가지~ 있네~/ 이분법 출아법 포자~법, 영양생식~.’ 이런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동안 무성생식의 네 가지 종류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 ‘나는 산소입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있는 울창한 숲이었습니다’로 시작되는 과학동화를 학생들이 직접 쓰기도 한다. 김영학 교사는 “명랑과학을 즐기다 보면 학생들이 원리를 자기 것으로 이해하게 되고, 어려서부터 과학을 어려워하지 않고 즐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명랑과학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복잡한 과학원리를 이해하려면 괴롭고 힘든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명랑과학은 청소년과 성인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일깨워 과학에 한발짝 다가서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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