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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관심법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 분열시키는 무형의 폭탄”

‘집 가진 자 vs 그렇지 못한 자’ 갈등 증폭 … 무력감, 슬픔, 분노 ‘우울증 사회’ 막아야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 분열시키는 무형의 폭탄”

[shutterstock]

[shutterstock]

최근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에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9  · 13 부동산종합대책’은 투기 수요를 차단해 집값을 안정화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면서 주택 공급도 늘리겠다는 게 목표다. 다주택자가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의 신규 주택 매입을 목적으로 대출받는 것을 막고, 종합부동산세도 인상했다. 정부의 집값 안정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시장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부동산 가격 급등은 매우 놀라울 정도다. 특히 서울 강남권 한 아파트는 3.3㎡당 1억 원에 계약이 체결됐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이다. 아파트 한 채에 30억 원이라면 평생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도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 적잖다. 그러니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박탈감, 허무, 비관, 우울,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 자신처럼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동질감이라도 느끼지만, 집을 가진 사람에 대해선 이질감과 더불어 부정적 감정이 출렁거린다. 

‘저 사람은 나보다 일찍 집을 샀을 뿐, 나도 언젠가는 집을 사면 돼’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상대적 박탈감이 무척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대방이 직장 동료이거나 친척이라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일어난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속 좁음에 스스로 실망해 자신을 한심한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경향도 생겨난다. 세상을 향한 원망과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진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아파트를 소유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이토록 크게 만들어도 합당한가.’ 

땀 흘리고 노력해 돈을 모은 것이 아니라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된 친구가 있으면 ‘억세게 운 좋은 얄미운 친구’이거나 ‘부동산 투자에만 열을 올리다 기회를 잡은 것일 뿐’이라며 폄훼한다. 형제자매 간에도 반목과 갈등의 마음가짐이 생겨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단기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저해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무형의 폭탄과도 같다.


“열심히 일해서 뭐하나”…  원망, 불신 커져

최근에 필자를 찾아온 환자가 생각난다. A씨는 지난해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사를 갔는데, 바로 그 아파트 값이 엄청나게 뛰어 무척 속상해했다. 특히 불면증이 심하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가 왜 그때 아파트를 팔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릴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안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 그리고 거의 2배로 뛴 집값에 웃고 있는 친구 등 수많은 상념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잠을 청할수록 정신이 더욱 명료해져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그다음 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일하려니 의욕과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급기야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뭐 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우울한 기분과 무력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비슷한 시기에 필자를 찾아온 B씨(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6개월 전 아파트 분양권을 팔아 상당한 이득을 봤다. 그런데 문제는 팔고 난 다음 가격이 더 올랐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팔면 2억 원을 더 벌 수 있는데, 너무 일찍 판 것이 억울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우울한 기분과 분노 외에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 식욕 부진, 소화 불량, 손 떨림, 어지러움 같은 신체 변화도 호소했다. 필자는 그에게 신체 증상이 동반된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부부가 함께 내원한 경우도 있다. 남편과 아내는 수개월 전부터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고 했다. 원래 부부 사이는 좋은 편이었지만 올봄 전세 기간이 만료되면서 사달이 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자”고 제안했다. 마침 집주인도 부부에게 구매 의향을 물어본 터였다. 그러나 남편은 대출을 꽤 받아야 한다는 점을 들어 “돈을 더 모은 다음 집을 사자”고 했다. 아내는 내심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싶었지만, 남편의 성실성을 믿기에 남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을 “세상 물정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남편은 아내를 “정신이 똑바로 박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부부는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남편은 “세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한 내가 과연 맞는 생각을 한 건가.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은 게 어리석었다. 세상을 헛살았다”며 술을 많이 마셨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내는 “그때 내가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어리석었다”며 자책했다. 결국 아내는 집안일을 게을리하게 됐고, 자녀들에게도 자주 짜증을 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내 어리석음을 알아차릴 것 같다’는 생각에 외출도 꺼렸다. 남편에게는 우울증과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이, 아내에게는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장애 진단이 내려졌다. 

현재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지 않아 앞으로도 이런 사례들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 무주택자에게는 집단 우울증이 생겨날 공산도 크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 및 정치적 대립보다 집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대립이 더 큰 사회적 갈등으로 대두될 수 있다. 부동산으로 막대한 이득을 본 자를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부러움을 넘어 질시의 감정으로 확산되고, 그것이 한 단계 더 변화해 미움이 되면 사회의 질서체계는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시장 기능에 맡기든, 정부가 개입하든 부동산 가격 안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형제자매나 사촌이 집을 사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증을 느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이 많이 생겨날 것 같다.




주간동아 2018.09.28 1157호 (p58~59)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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