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신원식 전 합참 차장

“남북 군사합의는 신체 포기 각서 쓴 꼴”

“손발 묶고 눈 가리는 군사합의 이행되면 착한 사람도 나쁜 맘 먹게 될 것”

  • 입력2018-10-02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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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청와대는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기 위한 실천적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군사 분야 합의서’에는 판문점 선언 이행에 요구되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 지침을 담았다. 6개조 22개 항목으로 구성된 포괄적인 군사합의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북핵 폐기 등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체결한 군사 분야 남북 합의서가 부메랑이 돼 우리 안보에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군사분계선 1km 이내 감시초소를 없애고, 5km 이내에서 사격 훈련을 중지하며, 서부전선은 20km, 동부전선은 40km까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크다. 남북 군사 대치를 끝내는 평화적 조치로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최전방 군사 대비 태세를 약화시켜 유사시 수도권 방어 등 대응 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에겐 불리, 북한엔 유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 교환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 교환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지낸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9월 19일 평양에서 체결된 군사 분야 합의서를 두고 ‘우리 군의 손발을 묶고 눈을 가린 신체 포기 각서나 다름없다’고 혹평했다. 그를 9월 26일 오후 서울 옥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상 간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은 물론 군사 분야 합의서까지 채택됐다. 

    “우리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중대한 사건이다. 비핵화나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를 중시한 정부가 사실상 우리 군을 무장 해제한 것이다. 사격과 기동훈련 등 군사훈련을 중지시켜 우리 군의 손발을 묶었고, 비행금지구역까지 설정해 감시의 눈까지 가리게 했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군사적 방어 능력만 크게 약화됐다. 한마디로 북한에만 유리한 조치다.” 

    우리뿐 아니라 북한도 함께 훈련을 중지하고 비행을 하지 않는다. 



    “북한은 우리보다 2~3배 많은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군의 70% 가까운 전력이 우리 수도권을 향해 전개돼 있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방사포 수백 문도 전방의 터널 속에 배치돼 있다. 북한군의 이 같은 양적 우위를 우리 군의 정보 감시와 정밀타격 능력 등 질적으로 우수한 핵심 수단으로 상쇄해왔다. 그런데 이번 군사합의로 우리의 핵심 전략자산이 상당 부분 무력화할 위기에 처했다. 군사분계선에서 20~40km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면 북이 전방에 전개한 장사정포 등 북한군 주력의 동향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없고 근접 정밀타격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신 전 차장은 “이번 군사합의로 무엇보다 우리 군이 우위를 갖고 있던 영상정보 수집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두와 금강, RF-16 정찰기 등 현재 군이 운용 중인 대북 정찰 수단이 제 기능을 못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실제로 올해와 내년 각각 2대씩 도입할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와 2020년 이후 공군에 전력화할 예정이던 중고도무인정찰기 KUS-15 등 우리 군의 ‘눈’ 역할을 할 항공정찰기 운용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군비통제는 상호 신뢰가 기본이다. 이를 위해 공격용 무기를 줄이는 대신 감시정찰 무기는 늘린다. 약속대로 공격용 무기를 줄였는지, 공격 의사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신뢰가 생긴다. 냉전이 해체된 이후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이 그렇게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 캐나다 등 북미 국가와 서유럽 국가,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까지 34개국이 오픈 스카이 조약에 합의했다. 창공을 열어 서로 통보만 하면 언제든 수시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했나. 남북이 군사 대치를 끝내겠다면서 오히려 광범위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이번 군사합의로 북한군에는 감시가 없는 안전한 성역을 보장한 대신 수도권은 북한의 기습에 취약하게 됐다.”

    합의서에 담긴 북한식 표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9월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함께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9월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함께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남북 군사합의를 이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북한과는 대화를 통한 평화가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두 가지 경우에 각각 대비해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잘 분석해서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올해 4월 판문점 선언 이전까지 크고 작은 회담을 655회 열었고, 이 가운데 245회는 서명까지 했지만 북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는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떠한 경우에도 플랜B는 마련해둬야 한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남북 군사합의대로라면 북한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신 전 차장은 “작전과 군비통제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군사합의는 나올 수 없다”며 “국방부에서 검토하거나, 군비통제와 핵 비확산 협의 경험이 있는 국립외교원 등에서 충분히 따져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군사합의서에 우리 군에서 사용하지 않는 군사용어가 쓰였다고 지적했다. 군사합의서 1조 1항 중간 대목에 ‘무력 증강’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 군이 아닌 북한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 

    “우리 군은 무력 증강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군사력 증강이라고 하거나 방위력 증강이라고 한다. 합의서 초안을 우리가 만들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문구다. 북한식 표현이 그대로 합의서에 담긴 게 무얼 의미하는가. 우리의 필요라기보다는 북한이 요구해 이뤄진 군사합의일 가능성이 더 크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를 직접 언급했다. 비핵화에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016년 7월 북한 정부가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핵 없는 세상,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얘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늘 해오던 얘기다. 온 세상에 핵이 없어지면 자신들도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논리인데, 3대째 똑같은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번 신곡이 발표된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이 교묘한 게 아니라 우리가 아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상대로 연설하고 백두산 천지에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북한 주민들은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미국의 CNN 기자는 ‘어느 나라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냐’고 하더라.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연설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대신 ‘남쪽의 지도자’로 소개됐다. 또 백두산은 백두혈통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우리 민족끼리가 강조되는 사이 북한 핵 문제는 뒤로 밀렸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장 폐쇄, 그리고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용의를 밝히는 등 비핵화에 진전이 아주 없다고 볼 순 없다. 

    “일견 진전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전체 핵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더욱이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핵 프로그램 리스트 신고와 비핵화 로드맵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국민에게 위협이 될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등 북한의 기존 핵 감축 내용은 빠져 있다. 용도가 끝난 시설을 폐기하는 것을 엄청난 비핵화 조치 이행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쨌든 북한이 이번 기회에 핵을 내려놓고 개혁 · 개방으로 나서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핵은 북한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핵을 내려놓도록 하려면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핵이 보검이 아니라 독배라는 인식이 생겨야 비로소 핵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비핵화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다면 우리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군사합의는 비핵화와 상관없이 줘서는 안 되는 것을 먼저 내준 것이다. 만약 북한에 핵이 없어져도 장사정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더구나 핵이 있는 상황에서 재래식 도발에 대한 대비를 왜 우리가 먼저 내려놓나. 비핵화에 따른 외교적 보상, 경제적 보상 그다음에 안보적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일을 먼저 한 것이다. 비핵화와 상관없이 우리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소중한 안보 자산만 날렸다.”

    모험은 하되, 도박은 말아야

    북 · 미 사이에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중재하기 위해 남북이 먼저 군사적 신뢰를 구축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이 우리와 같은 정상국가라면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공격할 의지가 없다면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약속을 번번이 어겨온 사람의 ‘개과천선하겠다’는 한마디 말만 믿고 마을 사람들이 담을 허물고 현관문을 열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착하게 살려던 사람도 나쁜 마음이 들지 않겠나. 김정은이 약속을 이행토록 하는 것은 한미동맹과 우리의 확고한 안보 대비 태세다.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해야 변심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다.” 

    한미동맹으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유엔사령관 입장에서는 좋지만, 연합사령관 입장에서는 우려된다’고 말했다. 동맹국이 맺은 군사합의를 ‘우려’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남북이 맺은 군사합의는 평시에 정전 상황을 관리해온 유엔사가 주도해 체결해야 할 사안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안보와 군사적 조치를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워 지나치게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 

    신 전 차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막의 여우’로 유명한 롬멜 장군의 ‘모험을 시도하라. 그러나 도박은 하지 말라’는 명언을 새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모험은 철저한 계산에 따라 하게 된다. 만약 계획이 실패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예비돼 있는 것이 모험이다. 그에 비해 도박은 아무 대비가 없는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시도하는 것이 도박이다. 지금은 도박을 해야 할 때가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철저한 계산에 따라 북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모험에 나설 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군사적 합의는 북한의 선의 외에는 아무런 대비책이 없는 도박과 같다.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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