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 홀이 그린을 중복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한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세인트앤드루스에는 올드 코스 외에도 좌우로 뉴, 에덴, 스트래스타이럼, 주빌리, 밸고브 코스와 조금 떨어져서 캐슬 코스까지 총 7개 코스가 있다. 하지만 대표 코스는 올드 코스고, 18번 홀 그린 뒤엔 영국왕립골프협회(R·A) 본부가 있다. 이곳에서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골프 룰과 규칙, 브리티시오픈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골프 한 라운드에 18홀을 도는 형식도 바로 이 코스에서 정착됐다. 원래는 골프장마다 홀 수가 달랐다. 심지어 올드 코스마저 아웃, 인 코스 11개 홀씩 총 22개 홀을 라운드해야 했다. 그러다 1764년 18홀로 경로를 단순화하고 통합했다. 똑같은 코스를 두고 오가는 사람과 골퍼가 혼동되고 사고 우려도 생기면서 아웃과 인 코스 한 방향으로만 골프를 치도록 변경했다. 그리고 이후 코스 규격은 18홀로 정착해갔다.
그런데 18홀 중에서도 올드 코스만 가진 독특함이 있다. 1, 9, 17, 18번 홀만 별도 그린이 있을 뿐 3~16번까지는 모두 하나의 그린을 인, 아웃 코스가 공유한다는 것이다. 1번 홀 그린은 골프 아버지로 추앙받는 올드 톰 모리스가 1870년 신설했다. 그러면서 이후로는 인, 아웃 순서가 전체적으로 바뀌게 된다.
무슨 말이냐면 그가 리노베이션을 하기 전까지 골퍼들은 시계 방향으로 라운드를 했다. 즉 1번 티잉그라운드에서 현재의 17번 그린(1번 그린이 없었으니)을 공략했고, 홀아웃을 한 뒤엔 현재 18번 티에서 16번 그린을 향했다. 하지만 1번 홀에 그린이 신설되면서부터 현재의 홀 흐름처럼 반시계 방향으로 돌게 됐다.
오늘날의 라운드 흐름이 정착한 건 1970년대부터였다. 하지만 이때도 1년 중 비수기인 겨울철 한 달은 시계 방향으로 돌게 했다. 지금이야 아예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방식이 정착했고, 4월 1일 만우절을 전후해 며칠 정도는 예전처럼 시계 방향으로 라운드를 하는 이벤트를 연다.
‘코스를 거꾸로 돌 수 있다’는 혁신적 구조는 올드 코스가 가진 골프의 유연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올드 코스는 처음 마주하면 너른 평원에 불과하다. 캐디가 있어야 어디로 쳐야 할지 방향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요즘 코스 설계에서 흔히 말하는 ‘홀 간 독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넓고 평평한 들판에 군데군데 티마크와 그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원조가 가진 힘이다. 홀을 그냥 돌 수도, 거꾸로 돌 수도 있는 코스는 전 세계에서 올드 코스가 유일할 것이다.
올드 코스는 18홀이지만 크기만 놓고 보면 9홀 코스보다 약간 더 넓은 정도다. 14개 그린을 중복 사용하니 페어웨이만 추가로 있으면 된다. 그러면서 18홀의 재미를 준다. 국내에서도 이런 골프장이 등장하면 얼마나 재미날까. 그린을 모두 앞뒤로 오갈 수 있게 하고 별도로 그린 4개를 만들면 된다. 이렇게 하면 18홀을 조성하는 데 굳이 99만㎡가 필요하지 않고 절반만으로도 재미난 골프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