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이 든 20㎏ 안팎 캐디백을 운반하며 선수를 돕는 사람이 캐디다. 골프 캐디는 크게 ‘투어(Tour) 캐디’와 ‘하우스(House) 캐디’로 나뉜다. 골프장에 소속돼 일반 골퍼의 플레이를 돕는 사람이 하우스 캐디, 프로대회에서 선수를 돕는 사람이 투어 캐디다.
요즘은 ‘노 캐디 골프장’이 적잖지만 주말 골퍼도 골프장을 찾으면 캐디의 도움을 받게 된다. 캐디는 홀별 공략 방법을 귀띔하거나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때론 그린에서 라인을 봐주기도 한다.
오랜 시간 ‘귀족의 놀이’였던 골프에서 초창기 캐디 역할은 단순히 공을 찾아주고, 무거운 캐디백을 나르는 것에 머물렀다. 프로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금 규모가 커진 토너먼트 대회가 정착하면서 투어 캐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캐디의 역할과 비중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골프계의 오랜 화두다. 프로 골퍼 사이에서 캐디는 ‘로프(rope) 안에서 유일한 내 편’으로 불린다. 한 샷 한 샷에 희비가 엇갈리고, 우승을 가르는 결정적인 퍼트 하나에 돈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치열한 승부 세계에서 캐디는 단순히 조력자에 그치지 않는다. 때론 심리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전략적 조언을 건네는 코치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의견도 있다. 1980~1990년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십 등을 제패하고 일본 무대에서도 활약한 한국 여자골프계 한 레전드는 “요즘 선수들은 캐디 의존도가 너무 크다. 어떤 클럽을 써야 할지 캐디에게 묻는 선수들을 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캐디 의존도가 커지면 선수는 발전할 수 없다. 캐디는 그냥 캐디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어 캐디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파트너들이다. 우즈는 초기엔 스티브 윌리엄스와 호흡을 맞췄고, 2011년부터는 오랜 시간 조 라카바와 함께했다. 대개 대회별로 보수를 받는 여느 캐디와 달리 라카바는 연봉 계약을 통해 제법 많은 돈을 안정적으로 받았고,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챙겼다. 정확한 금액은 파악되지 않지만 라카바의 연봉 수준은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즈가 2021년 2월 교통사고 이후 출전 대회 수가 급격히 줄면서 두 사람은 올해 5월 헤어졌지만, 라카바는 우즈와 계약 기간에 우즈 허락 없이 다른 선수의 백을 메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국내 투어에도 라카바를 꿈꾸는 전문 캐디가 많다. KLPGA 투어만 해도 캐디를 직업으로 삼는 전문 캐디가 80명 안팎에 이른다.
최근 수년 사이 캐디 능력이 중요시되면서 흔히 ‘우승 캐디’로 불리는 상위 몇몇 캐디는 5000만 원 안팎 연봉에 인센티브 계약까지 맺는다. 대개 컷을 통과하면 선수가 받는 상금의 5%, 20~30위에 들 때는 상금의 5~7%, 우승을 포함해 톱10에 들 경우에는 상금의 7~10%를 인센티브로 받는다. 투어 총상금 규모가 증가해 선수들이 받는 상금도 늘면서 톱클래스 캐디는 ‘억대 수입’을 챙기기도 한다. 일회성으로 한 대회에 나서는 캐디도 일주일에 120만~150만 원을 받는다.
캐디에겐 ‘3Up’ 철칙이 있다. ‘시간을 잘 지킬 것(Show Up), 재빨리 선수를 따라 다음 샷을 준비할 것(Keep Up), 선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 것(Shut Up)’이 그것이다. 3Up을 지키지 않았을 때 선수와 캐디의 계약은 종료된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캐디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고, 당연히 ‘갑’은 선수다. ‘전문 캐디도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김해림은 2021년 7월 KLPGA 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에서 통산 7승을 달성했다. 3년 2개월 만의 우승 못지않게 주목을 끈 건 그가 캐디 없이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1라운드에 무선 조정이 가능한 전동 카트를 끌고 나온 김해림은 비가 내린 2, 3라운드에선 하우스 캐디를 고용했지만 공과 클럽을 닦고 캐디백을 옮겨주는 것 외에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당시 김해림은 “전담 캐디를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다. 돈만 밝히는 일부 캐디의 태도에도 화가 났다”며 “캐디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캐디피를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김해림의 실험은 극히 예외적이지만, 단순히 경제적 부담 때문이 아니라 필드에서 호흡, 심리적 안정 등을 위해 가족에게 캐디를 맡기는 선수도 제법 많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활약하는 양지호가 지난해 5월 KB금융 리브 챔피언십에서 데뷔 14년 만에 첫 승 기쁨을 누렸을 때 옆에 있던 캐디는 아내 김유정 씨였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양지호가 페어웨이우드로 세컨 샷을 하려다 김 씨의 “끊어 가자”는 만류에 아이언으로 바꿔 쳐 우승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전문 캐디였다면 할 수 없는 조언이지만 아내 캐디는 달랐다. 양지호가 올해 6월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2승을 수확했을 때 그를 옆에서 도운 이도 아내 김 씨였다.
올해 KLPGA 투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장타 퀸’ 방신실이 10월 15일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루키 중 가장 먼저 2승 고지를 밟을 때 그의 백을 멘 사람은 아버지 방효남 씨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딸의 경기 모습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지만 아버지 방 씨 역시 양지호의 아내처럼 선수 출신이 아니고, 전문 캐디와도 거리가 멀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캐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2승을 챙긴 뒤 방신실이 한 말에 정답이 있다. “아빠와 충분히 상의했지만, 아무래도 공은 선수가 치는 것이라서 최종 선택은 내가 했다.”
요즘은 ‘노 캐디 골프장’이 적잖지만 주말 골퍼도 골프장을 찾으면 캐디의 도움을 받게 된다. 캐디는 홀별 공략 방법을 귀띔하거나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때론 그린에서 라인을 봐주기도 한다.
전문 캐디 시대 열리다
방신실(오른쪽)이 10월 15일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 4라운드 1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뒤 캐디를 맡은 아버지 방효남 씨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KLPGA 제공]
캐디의 역할과 비중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골프계의 오랜 화두다. 프로 골퍼 사이에서 캐디는 ‘로프(rope) 안에서 유일한 내 편’으로 불린다. 한 샷 한 샷에 희비가 엇갈리고, 우승을 가르는 결정적인 퍼트 하나에 돈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치열한 승부 세계에서 캐디는 단순히 조력자에 그치지 않는다. 때론 심리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전략적 조언을 건네는 코치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의견도 있다. 1980~1990년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십 등을 제패하고 일본 무대에서도 활약한 한국 여자골프계 한 레전드는 “요즘 선수들은 캐디 의존도가 너무 크다. 어떤 클럽을 써야 할지 캐디에게 묻는 선수들을 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캐디 의존도가 커지면 선수는 발전할 수 없다. 캐디는 그냥 캐디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어 캐디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파트너들이다. 우즈는 초기엔 스티브 윌리엄스와 호흡을 맞췄고, 2011년부터는 오랜 시간 조 라카바와 함께했다. 대개 대회별로 보수를 받는 여느 캐디와 달리 라카바는 연봉 계약을 통해 제법 많은 돈을 안정적으로 받았고,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챙겼다. 정확한 금액은 파악되지 않지만 라카바의 연봉 수준은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즈가 2021년 2월 교통사고 이후 출전 대회 수가 급격히 줄면서 두 사람은 올해 5월 헤어졌지만, 라카바는 우즈와 계약 기간에 우즈 허락 없이 다른 선수의 백을 메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국내 투어에도 라카바를 꿈꾸는 전문 캐디가 많다. KLPGA 투어만 해도 캐디를 직업으로 삼는 전문 캐디가 80명 안팎에 이른다.
최근 수년 사이 캐디 능력이 중요시되면서 흔히 ‘우승 캐디’로 불리는 상위 몇몇 캐디는 5000만 원 안팎 연봉에 인센티브 계약까지 맺는다. 대개 컷을 통과하면 선수가 받는 상금의 5%, 20~30위에 들 때는 상금의 5~7%, 우승을 포함해 톱10에 들 경우에는 상금의 7~10%를 인센티브로 받는다. 투어 총상금 규모가 증가해 선수들이 받는 상금도 늘면서 톱클래스 캐디는 ‘억대 수입’을 챙기기도 한다. 일회성으로 한 대회에 나서는 캐디도 일주일에 120만~150만 원을 받는다.
캐디에겐 ‘3Up’ 철칙이 있다. ‘시간을 잘 지킬 것(Show Up), 재빨리 선수를 따라 다음 샷을 준비할 것(Keep Up), 선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 것(Shut Up)’이 그것이다. 3Up을 지키지 않았을 때 선수와 캐디의 계약은 종료된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캐디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고, 당연히 ‘갑’은 선수다. ‘전문 캐디도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최종 선택은 선수가”
한 해 수억 원 상금을 챙기는 상위권 선수야 큰 문제가 없지만,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 하위권 선수는 전담 캐디를 고용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동 경비 등 대회 출전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에 전담 캐디까지 고용하면 ‘마이너스’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김해림은 2021년 7월 KLPGA 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에서 통산 7승을 달성했다. 3년 2개월 만의 우승 못지않게 주목을 끈 건 그가 캐디 없이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1라운드에 무선 조정이 가능한 전동 카트를 끌고 나온 김해림은 비가 내린 2, 3라운드에선 하우스 캐디를 고용했지만 공과 클럽을 닦고 캐디백을 옮겨주는 것 외에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당시 김해림은 “전담 캐디를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다. 돈만 밝히는 일부 캐디의 태도에도 화가 났다”며 “캐디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캐디피를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김해림의 실험은 극히 예외적이지만, 단순히 경제적 부담 때문이 아니라 필드에서 호흡, 심리적 안정 등을 위해 가족에게 캐디를 맡기는 선수도 제법 많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활약하는 양지호가 지난해 5월 KB금융 리브 챔피언십에서 데뷔 14년 만에 첫 승 기쁨을 누렸을 때 옆에 있던 캐디는 아내 김유정 씨였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양지호가 페어웨이우드로 세컨 샷을 하려다 김 씨의 “끊어 가자”는 만류에 아이언으로 바꿔 쳐 우승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전문 캐디였다면 할 수 없는 조언이지만 아내 캐디는 달랐다. 양지호가 올해 6월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2승을 수확했을 때 그를 옆에서 도운 이도 아내 김 씨였다.
올해 KLPGA 투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장타 퀸’ 방신실이 10월 15일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루키 중 가장 먼저 2승 고지를 밟을 때 그의 백을 멘 사람은 아버지 방효남 씨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딸의 경기 모습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지만 아버지 방 씨 역시 양지호의 아내처럼 선수 출신이 아니고, 전문 캐디와도 거리가 멀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캐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2승을 챙긴 뒤 방신실이 한 말에 정답이 있다. “아빠와 충분히 상의했지만, 아무래도 공은 선수가 치는 것이라서 최종 선택은 내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