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각되는 프렌드쇼어링
![세계화가 저무는 가운데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과 중국 중심의 경제 블록이 대두할 전망이다. [동아DB]](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5/49/f3/93/6549f393088fd2738276.jpg)
세계화가 저무는 가운데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과 중국 중심의 경제 블록이 대두할 전망이다. [동아DB]
‘경제 안보’가 부상하면서 각국의 경제 자립 움직임도 가시화될 수 있다. 공급망을 자국으로 회귀하거나, 우호국·동맹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약화되고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추진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블록경제’가 공존하는 형태가 가속화될 수 있다.
러-우 전쟁은 에너지 무기화를 잘 보여준 사례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통제로 에너지 안보에 위협을 받은 유럽연합(EU) 입장에서는 이전처럼 러시아에 상품을 수출하고 자원을 수입하는 무역 구조를 복원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보조금 등 산업정책을 통한 경쟁도 심화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 전 미국과 EU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 등을 비난했다. 지금은 저마다 경제 안보라는 명분하에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내놓으며 핵심 산업의 육성과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EU 역시 보조금 제도와 유럽반도체 법안 등을 내놓았다.
최근 무역제재 건수가 늘었다는 점도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정학이 세계화를 점차 압도하면서 각 나라는 자국 이익을 최대한 지키고자 할 것이다. 2020년 이후 기업 실적 발표 현장에서 리쇼어링 언급이 늘어난 점도 이를 드러낸다(그래프1 참조).


지정학적 요인 중요해져
WTO 체제가 약화하면서 동맹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될 전망이다. 공조체제에 속한 국가와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차별화가 심화될 수 있다. 기업 실적을 전망할 때도 글로벌 수요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공조체제 소속 여부가 주요 변수로 떠오를 것이다. 에너지, 광물, 식량, 제조품 등 실물경제에 기반한 자립경제 동맹 결성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특히 미국 주도의 경제 블록과 중국·러시아 주도의 경제 블록이 나타날 것이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들어 프렌드쇼어링 추세가 가시화됐다. 인접국 간 교역이 증가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효과는 미미했으나, 정치적 소속 관계에 따른 교역의 증감은 뚜렷해졌다. 중요 교역국 간 무역 집중화 현상이 늘어난 반면, 다각화는 후퇴한 셈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경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새롭게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 요인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말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봐야 한다. “경제 및 무역 정책에서 안보를 고려하겠다”는 것은 “세계화를 통해 얻었던 저비용과 효율성이 약화된다”는 의미다. 안보에 무게를 두고 고비용을 감수하는 탓에 이전보다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각국이 ‘공급 충격’에 취약해진 만큼 인플레이션 우려가 수시로 불붙을 수 있다.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국가·지역 간 성장 차별화도 불가피하다. 공조체제에 소속되거나 보조금 등 산업정책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과 국가는 투자 매력이 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무역분쟁과 보조금 경쟁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면 글로벌 후생 손실과 인플레이션 노출이 불가피하다. 향후 지역별·국가별 성장 차별화는 점차 심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