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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영웅, 이랜드의 구세주 될까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덕장, 만년 하위팀으로 프로 리그 도전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9-12-06 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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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자상을 수상한 정정용 FIFA U-20 
월드컵 감독. [동아DB]

    10월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자상을 수상한 정정용 FIFA U-20 월드컵 감독. [동아DB]

    정정용 감독의 축구 인생 통틀어 최고 한 해가 아닐까.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값진 2위를 만들어낸 그는 이를 동력 삼아 무섭게 치고 나갔다. 최근에는 서울 이랜드FC 수장으로 프로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정 올해의 남자 감독상까지 집어삼켰다.
     
    가장 최근 정 감독과 대면한 건 지난달이다. 충북 제천에서 열린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였다. 아마추어 축구 현장에서 그를 봐온 지는 꽤 오래됐다. 그 역시 그럴 것이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오랫동안 유·청소년을 담당해왔고, 연령별 대표팀까지 맡아 선수 개개인의 상태를 점검해왔기 때문이다. 축구 유망주를 오랫동안 쫓아온 필자와 동선이 꽤 겹쳐 이런저런 축구 얘기를 나누곤 했다. 

    이번에는 전에 없던 묘한 기류가 흘렀다. 대회 자체는 별다를 게 없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고등 축구리그 상위팀을 대상으로 최고 팀을 가리는 왕중왕전을 연 1~2회 개최해왔다. 관찰자 입장에선 우수팀을 한데 모아놓은 것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검은 마스크로 중무장한 정 감독도 참가 선수들의 프로필을 들고 여러 구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거취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가 심상찮았다. U-20 대표팀 감독이 아닌 다른 명함을 쓰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박수칠 때 떠난 셈

    K리그2 서울 이랜드FC의 두아르테(왼쪽)가 10월 1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산무궁화축구단과의 안방 경기에서 남희철과 공을 다투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2 서울 이랜드FC의 두아르테(왼쪽)가 10월 1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산무궁화축구단과의 안방 경기에서 남희철과 공을 다투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정 감독의 주가는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국내외 통틀어 여러 팀의 하마평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다만 정 감독은 이미 발이 묶인 상태였다. 폴란드에서 U-20 월드컵을 마무리하고 돌아와 대한축구협회와 ‘U-20 월드컵 감독직 전속계약’을 맺어버렸다. 정말이지 계약서 잉크가 바짝 마르기도 전 프로구단으로 옮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도의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문서에 명시된 약속을 멋대로 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10월부터 또다시 소문이 튀어나왔다. 모 정보원은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 구체적인 액션이 따르고 있다”며 특정 축구클럽을 콕 집었다.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서울 이랜드. 최근 2년 연속 2부 리그 꼴찌에 그친 팀이다. 정 감독과 얽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6월 U-20 월드컵 여운이 전국을 휘감았을 당시 수뇌부가 “정정용 감독 선임을 시도해보자”는 말을 꺼낸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시즌 말미가 됐다. 서울 이랜드의 정 감독 구애설은 11월 들어 더욱 심화됐다. 특유의 대구 사투리로 “에이, 제가 축구협회 사람인 거 잘 아시면서”라고 말한 그였지만, 대한축구협회와 서울 이랜드가 접촉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이어 급물살을 타면서 “다음에도 (아마추어 축구) 운동장에서 봅시다”라고 웃던 그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수습이…. 따로 연락드릴게요’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관련 사안이 보도자료로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빗발쳤을 테다. 



    정 감독도 도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서 더 올라설 곳이 얼마나 됐을까 싶다. U-20 연령대에서 정점을 찍은 마당에 그다음 타깃은 U-23 대표팀, 그리고 국가대표뿐이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고된 길이 펼쳐지고, 지도력은 물론이거니와 대외적 압박 속에서 생존할 특별함도 필요했다. 풀뿌리 지도자로 아시아경기 금메달이라는 성과 뒤 올림픽 대표팀으로 옮겨간 고(故) 이광종 감독의 선례가 지금까지도 굉장히 드문 이유다. 이런 풍토에서 프로 무대를 탐하는 게 지도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간 U-20, U-23 코칭스태프에서 이탈해 프로 지도자직을 맡은 이가 꽤 됐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고정 하위권 팀, 덕장이 되살리나

    우성용 서울 이랜드FC 감독대행. [한국프로축구연맹]

    우성용 서울 이랜드FC 감독대행. [한국프로축구연맹]

    정 감독의 서울 이랜드행 발표가 나오자마자 후끈 달아올랐다. “왜 하필 그 팀이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란에 묻어나는 여론을 쉬이 지나칠 수 없는 노릇. 아무래도 서울 이랜드를 향한 큰 기대가 실망과 불신으로 바뀐 탓이었다. 식어버린 팬심의 시발점은 창단 당시 공언한 목표였다. 

    “2020년에는 평균 관중 4만 명 돌파와 K리그 및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으나, 2년 연속 꼴찌라는 성적표는 되레 조롱에 조롱을 불렀다. 냉정히 말해 2부 리그에서도 강등이 가능했다면 3부 리그로 강등될 뻔했다. 오히려 서울 이랜드를 떠나 잘 풀린다는 현상을 놓고 ‘탈(脫)랜드 효과’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서울 이랜드에서 석연찮게 사임한 뒤 강원FC 약진을 이끈 김병수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다. 

    축구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직접 뛰는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지도하며 운영하는 일 또한 사람의 손을 타야 한다. 그렇다 보니 개개인이 자아내는 ‘기운’이라는 게 작용한다. 무형의 무언가가 존재하며, 이렇게 형성된 무의식으로부터 강하게 지배받는다는 느낌도 든다. 패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실감할 때가 많다.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라운드에 나서지만, 하위권 팀은 이상하리만치 꼬이고 꼬여 또 져버린다. 올해 우성용 감독대행 체제에서 기적의 3연승을 연출한 뒤 12경기 내리 승리가 없었던 서울 이랜드가 딱 그렇다. “안 될 팀은 안 된다”는 게 세간의 평가. 어떤 명장도 이 흐름을 뒤집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서울 이랜드는 그래서 더더욱 정 감독에게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선수 시절 이랜드에서 뛰었던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외부에서 관찰한 이 팀은 ‘상처받은 선수들을 어떻게 다독여 다시 뛰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기로에 선 구단 측은 엄격한 규율로 힘을 짜내는 유형보다 부드러운 유형의 덕장을 택하는 처방을 내렸다. U-20 월드컵 당시 “선수가 아닌 내 잘못이다. 나를 탓해달라”거나, 최근 한 토론회에서 “지도자는 절대 선수 탓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그의 소신이 주눅 든 현 선수단과 맞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지도자가 선수단과의 심리 게임을 장악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끌려가는 게 아니라 따라오게 하는 게 먼저다. 모르긴 몰라도 동계훈련을 시작할 다음 달 초부터 내부 기 싸움이 엄청날 것이다.

    전문 분야인 육성, 기다릴 시간이 없다

    또 다른 키워드는 ‘육성’이다. 서울 이랜드는 정 감독에게 구단 방향을 제시하면서 장기적인 선수 육성을 화두로 던졌다는 후문이다. 정 감독이 지금까지 해온 게 선수 육성이라는 점에선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서울 이랜드는 지난 5년간 성인 선수를 데려와 팀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구단이었다. 유스 시스템을 차근차근 잘 갖춰왔으나, 프로팀부터 탄력받지 못한다면 유망주와 관련해 아무리 파격적이고도 진취적인 시도를 한다 해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시간이 절실한 대목인데, 한 경기 승패에 이리저리 휘둘릴 프로팀이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육성이 중요하다”고 말한 팀 가운데 견고한 철학으로 꿋꿋이 버틴 팀은 극소수다. 

    분명 흥미로운 조합이다. 그간 축적한 인고의 세월을 전 세계에 펼쳐 보인 지도자, 그리고 자칫하면 만년 꼴찌로 전락할 구단이 손을 맞잡았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대승적 차원의 축구 발전”이라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을 만큼 이목이 쏠리는 일이었다. 지도자와 구단이 합심해 보란 듯이 일어서는 모습도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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