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이 만개한 5월의 골프장. [사진 제공 · 김맹녕]
초여름 골프코스의 풍경은 모든 골퍼를 시인 또는 철학자로 만든다. 존재하는 것이 기쁨이요, 생이 곧 법열이며, 여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해탈이라 모든 골퍼가 선남선녀가 된다. 소나무 숲과 참나무는 푸름을 자랑하고, 그 사이로 딱따구리의 우람찬 나무 쪼는 소리가 초여름 열정을 배가한다.
까투리를 부르는 장끼의 외침은 골퍼를 가끔 놀라게 하고, 미루나무 위에서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구성진 소리는 OB(Out of Bounds) 난 골퍼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대는 새들의 합창은 마치 교향곡을 듣는 것 같다. 골프코스 연못에서는 개구리와 맹꽁이가 앞다퉈 노래자랑을 하고, 울긋불긋한 비단잉어가 유영을 하며 수영 실력을 뽐낸다. 코스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에서는 금실 좋기로 유명한 원앙 한 쌍이 연신 물질을 해대고 있다.
미국 속담에 ‘하루만 행복해지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라. 1주일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해라. 1개월 정도라면 말을 사고, 1년이라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토록 행복해지려면 골프를 쳐라’는 말이 있다. 골프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다. 초여름 골프는 각박한 삶에 지친 골퍼에게 야외 나들이를 통해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 화사한 파노라마도 앞으로 3주만 지나면 장마 시즌으로 변하고, 이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지난해 이맘때 함께 라운드를 즐기던 골프 친구를 올해는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계절과 더불어 인생과 골프도 함께 구름처럼 흘러간다. 70세를 넘긴 시니어 골퍼로서 가끔 그린을 향해 걸으며 골프 라운드로 치면 지금 내 인생은 몇 번째 홀에 와 있을까 생각해본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홀들을 설계해본다. 골프는 굴곡이 많은 인생살이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 인생은 짧은 방문이나 다름없다. 서두르지 말고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으며 공 한 번 친 뒤에는 옆에 피어 있는 붉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최근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소천 뉴스로 가슴이 아팠다. 대기업 경영자로서 존경과 흠모를 받은 그는 취미로 골프를 즐겼다. 경기 곤지암골프클럽에서 10여 년 전 라운드할 때 영국 신사풍의 매너와 유머 넘치는 화술로 동반자를 유쾌하게 해주던 구 회장이 그립다. 에이지 슈터가 꿈이라고 했는데,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마음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 먹고 몸이 쇠하는 것에 순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골프는 건강을 지켜주고 삶의 여유와 흥미를 북돋우는 운동이기에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라운드를 하고 싶다. 앞으로 에이지 슈팅과 홀인원의 꿈도 실현하고 싶다.
능력이나 분수에 넘치는 과욕은 결국 실패와 파탄을 불러온다는 교훈은 골프나 인생이나 같다. 골프를 통해 얻은 교훈과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