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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군대는 끊임없이 미래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분쟁에 대한 대처는 생명이나 안보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구촌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자본과 기술이 국경을 넘나드는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전쟁만큼 복잡한 현상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회에서 미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군사작전의 원칙은 없을까.
군대에서 미래에 대처하는 첫 번째 원칙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조금 필요할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의 군대는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며 큰 의미가 없다고 전제한다. 2000년 저서 ‘미래전’을 통해 ‘드론전쟁’에 대한 대처를 강조했던 제프리 바넷은 ‘전쟁은 미래 예측이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고 미래의 일에 대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군대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개념이나 문장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우발사태 목록을 만들어라
그 대신 군대는 다가올 상황을 상정한다. 군대는 특정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을 비교해 최악의 상황을 먼저 선정한다. 그런 연후에 몇 가지 다가올 상황을 추가로 상정한다. 처음부터 구체적이거나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나가면서 살을 붙이고 차차 미흡한 점을 보완하면 된다.
두 번째 원칙은 우발사태 목록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군에서 우발사태 목록이란 기본계획, 예비계획에서 상정되지 않은 사태들을 추려놓은 것이다. 즉 군대는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고 대처가 중요한 상황을 출발점으로 만든 기본계획과 채택되지 않았지만 그다음으로 우선순위가 높았던 것들로 이뤄진 예비계획 외의 것들을 정리해놓는데, 이들 가운데 하나가 우발사태 목록이다.
시간과 노력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것은 계획수준으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는다. 육하원칙으로 정리하거나, 도식해놓는 방법 등으로 간단히 목록화해 갖고 있다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꺼내서 참고한다.
세 번째 원칙은 ‘결심조건’을 사전에 명시하는 것이다. 결심조건이란 시간적, 공간적 혹은 심리적으로 특정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점이다. 군사작전에서 실시간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시성이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어도, 정보가 부족해도 지휘관은 종종 위험을 감수하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자신이 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지휘관이 결정적 국면에 사용하려고 아직 투입하지 않은 부대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고자 할 때 적이나 아군의 상황 변화, 부대들의 진출 위치, 남아 있는 부대들의 전투력이 어떤 상태여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놓는 것이다.
이런 군의 원칙들을 일상 업무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평소 업무를 수행할 때 우선순위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회사나 조직이 짜놓은 스케줄대로 혹은 그 나름의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가 ‘조급한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 업무에서 미래 대비하기
목표를 중심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성과를 달성하려면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우선순위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위에 있지 않은 일은 과감히 신경을 끊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이것이 습관화되면 회의 진행 능력이나, 협상 시 주도권을 잡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도 함께 쌓인다. 어떤 안건이 중요한지 조금이라도 먼저 아는 사람이 칼자루를 쥘 수 있다.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세워 그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업무관계로 만나는 정부 관료나 기업 임직원 중에는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시간단위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리고 보좌관이 있는 고위관료 또는 대기업 임원은 우발사태 목록을 갖고 있거나 이에 대처 가능한 인적자원이 뒷받침돼 있다. 수행 업무의 특성상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다루는 가치가 막중한 사람도 종종 우발사태 목록을 갖고 있다.
우발사태 목록을 만들어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리 잡아놓은 미팅, 서로 나누기로 한 안건, 저녁식사 약속 등을 기록한 후 그 각각의 예정이 취소됐을 때, 대화 중 생각해보지 않은 사안이 언급됐을 때를 상정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간단히 적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미리 생각해본 우발사태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더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해봄으로써 이전에 찾지 못한 해답을 얻거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상대적 역설인데, 상대로 하여금 미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 미래에 잘 대처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상대의 결심조건을 흔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게 협상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협상의 대가 허브 코헨에 의하면 우리 주변에서 이 방법을 가장 잘 쓰고 있는 것이 TV 홈쇼핑이다. “이번 방송에 한해서만 패키지를 내놓습니다, 10분 뒤면 방송이 종료됩니다. ○○○모델이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같은 진행자의 말과 자막은 방송을 보는 사람의 결심조건을 흔들어버린다. 이를테면 그 달의 지출 한계액이라든지, 낭비하지 않겠다는 배우자와의 약속 같은 것을 하얗게 잊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협상이나 경쟁 프레젠테이션처럼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상황이라면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상대가 예측하지 못했던 (의미 없는) 제안들을 끊임없이 던져보는 방법도 있다.
테러에 대비한 미국 국립과학원의 소위원회에서 나온 대화 가운데 한 토막이다.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백신을 다 비축해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난생처음 보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 군에는 ‘모든 것에 대비한 계획은 아무것에도 대비하지 않는 계획과 동일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속한 조직의 업무들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일도 어렵다. 위에 제시한 원칙들을 잘 활용한다면 부여받은 성과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일상의 대소사를 무난히 처리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